제비(鷰) 구암 구병대(1858〜1916) 三 月 來 時 木 向 榮 3월에 제비가 나무를 향하는 것은 영화를 위함이요 微 微 形 體 掬 難 盈 형체가 아주 작아서 한 움큼 쥐어도 차기 어렵네. 尋 主 簷 前 頻 賀 去 처마 발 앞 주인 찾아 빈번히 하례하고 떠나며 定 巢 樑 上 早 經 營 대들보 위에 보금자리 정하고 새벽부터 집짓네. 掠 飛 岸 草 遙 無 迹 풀 자란 언덕에 멀리 날아간 제비는 자취 없고 忽 到 庭 枝 更 有 聲 홀연히 도착해 정원 가지에서 다시 소리를 내네. 驃 疾 其 身 能 售 技 빠르게 나는 제비의 재주는 능히 팔만 하느니 輕 輕 林 下 蹴 殘 英 가볍게 날아 수풀 아래 밟은 잔영 남아 있구나 <精選 龜巖遺稿 詩에서> 역: 박수환(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서천군 한산면장)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우리 민족은 자연의 법칙을 음양과 오행의 규칙 속에서 시간과 방향에 순응하여 하루, 계절, 생애를 살면서 일과 풍속, 환경을 만들어 왔다.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은 살아 있는 하늘과 땅에 사람의 음양과 오행이 만나고, 이 속에서 평화적인 상생(相生)과 경쟁적인 상극(相克)의 관계로 생명이 탄생하고 번성한다. 세상은 하늘에 음양(달과 해)과 오행(수성, 목성, 화성, 토성, 금성)이 있고, 땅에 음양(강과 산)과 오행(물, 불, 나무, 금속, 흙)이 있다. 사람도 음양(여자와 남자)과 오행(심장, 폐장, 간장, 신장, 비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음양의 이치 속에서 곳곳에 오방위신신으로 오행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방위를 나타내는 오방위신 오방위신(五方位神)은 오방색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동방 청룡(靑龍, 청색), 서방 백호(白虎, 흰색), 남방 주작(朱雀, 붉은색), 북방 현무(玄武, 검은색), 중앙 황룡(黃龍, 노란색)이다. 사신도의 청룡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영물로 도깨비 모양이다. 백호는 넓은 혀와 호피무늬의 형상으로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 주작은 닭, 학, 꿩, 공작 등을 융합하여 바람과 역법을 주관한
봄을 시샘하는 봄 눈 - 구기동 갑작스런 추위에 많은 봄 눈이 내렸다. 첫 눈을 내밀던 나무에 겨울이 찾아왔다. 꽃을 틔운 생강나무는 아무 생각도 없다. 나무에 앉아 재잘대는 새소리만 한가롭다. 겨울이 오는 건지 나무만 혼란스럽다. 봄은 오는 듯 오지 않고 우리를 놀리지만 무심한 시간은 우리를 지나가고 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향토사학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역의 전통문화와 유물유적을 보전하고 보조하기 위하여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향토사학은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지방사 연구와 문화자원 개발로 지방사학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기관이 큰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박수환 위원은 공무원 신분으로 40여 년간 향토사학을 발굴하여 보존하는 한편, 신규 자료와 유물을 발굴하여 학계에 보고하면서 지방사학의 성립과정에 큰 기여를 하였다. 향토사료의 발굴과 보존으로 지방사학 발전 향토사학의 주요 연구는 지역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설립된 지방문화원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지방문화원은 최초 1947년 강화문화원을 설립하면서 지역 고유문화를 보존해 왔고, 현재 전국 231개 지방문화원이 운영되고 있다. 지역의 향토문화를 지키는 것은 물론 사라져가는 문화를 발굴하고 보존해 주민들의 문화 수준을 높이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경기 향토문화연구소에서 매년 각 지역의 향토사에 대해 연구, 조사하여 논문집 ‘경기향토사학’을 지난 2015년부터 발간하여 경기도 향토사의 저변 확대와 지역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서당은 16세기에 향촌의 민간교육을 담당하면서 특히 집성촌인 씨족 사회를 규율하고 세력을 규합하였다. 집성촌인 충남 서천군 문산면 은곡리(한실)는 400여 년 전에 대곡서당을 설치하여 지역인재를 육성하였고, 구한말 의병활동에도 참여하면서 민족정신을 실천하였다. 대곡출신의 구병대 선생은 민종식의 홍주의병에 대곡서당을 숙영지로 제공하였고, 강습생들을 의병에 참여시키면서 군수품 조달에 앞장섰다. 서당은 교육적 기능과 사회활동을 위한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신교육에 밀려 사라지면서 보존해야 할 서당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도 소멸되고 있다. 16세기 사림파에 의한 서당의 확산 서당은 초등교육기관으로 설립에 필요한 기본재산이나 법률적 인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뜻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서당을 세워서 운영하거나 사정에 따라 해체할 수 있었다. 16세기 사림파가 지역에 유교적 질서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성리학 공부나 과거 응시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주로 지역 내 유력한 가문이나 씨족을 중심으로 몇 개의 자연 부락이 결합하여 서당을 설립하였다. 18세기 후반기에 서당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종손을 중심으로 종중에서 공동관리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유목민족은 초원지대에서 목축을 하면서 살았지만 혹독한 한파에 생존에 어려움이 부딪히면 농경민족을 약탈하거나 정복전쟁으로 식량을 확보하였다. 유목민족이 농경지대에 정착할 경우 서로 비슷한 비중으로 가축 사육이나 작물 재배의 반농반목 활동을 하였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러한 정착민족으로 선비족, 퉁구스족, 거란족과 여진족으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동아시아민족의 기원 동아시아 민족은 구석기 후기의 씨족(氏族) 집단으로 몽골인종의 아종(亞種)인 동아종족, 북아종족, 북극종족으로 분파되어 발전하였다. 이 중에서 북아종족은 원시 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면서 동아시아에 거주하였고, 언어적으로 북방계 알타이어족(주어+목적어+동사)은 이웃하는 남방계 티벳어족(주어+동사+목적어)과 분명하게 구분되고 있다. 알타이어계의 중심인 바이칼호(Lake Baikal)는 부리야트어로 ‘큰(바이) 물(칼)’의 의미인 깊이 1700m의 호수로 한강의 옛 이름인 ‘큰(한) 물(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부리야트족이나 만주의 부여족은 ‘바이’에서 파생되었고, 바이칼 이남의 흥안령(興安領)은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경계선이다.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불교의 세계는 인도를 중심으로 구산팔해(九山八海)로 이루어져 있다. 9산 8해는 1개의 3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구성하는 1수미세계(一須彌世界), 대지에 수미산(須彌山)을 포함한 아홉 대산(大山), 그 산들을 둘러싸고 있는 여덟 대해(大海)로 구성된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찰(寺刹)은 승려들이 모여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펴는 곳이다. 중국에서 승려들이 모여 사는 곳을 사원(寺院)이라고 하였다. 후대에 ‘사’는 절 전체를 가리키고 ‘원’은 ‘사’의 별사(別舍)로 사용하였으며, ‘암(庵)’은 산 속에 있는 작은 집 또는 토굴 등을 가리킨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을 중심으로 일반인들의 기도처인 사찰(寺刹), 국왕의 보호를 받는 왕찰(王刹), 사망한 국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로 구분한다. 진신사리와 적멸보궁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의 진신사리와 정골 100과를 가져와서 황룡사를 비롯한 사찰에 봉안했다. 우리나라에서 진신사리가 있는 적멸보궁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태백산 정암사 및 치악산 법흥사에 있다. 진신사리가 석가모니의 형체이기 때문에 불상을 대신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삼한시대에 각 읍락이 천신과 여러 부족의 지신을 함께 묶은 소도(蘇塗)로 통합되었다. 읍은 성으로 둘러쌓인 마을이고, 소도는 고대 유목민족의 신성한 지역을 상징했다. 사제인 천군(天君)이 소도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방울로 신을 호출하고 무아지경에서 제천의식을 집행했다. 주술과 제사가 태양과 자연을 지배하는 신령에게 풍요를 기원하면서 실시되었다. 이것이 문화와 종교의 특질을 갖는 제천 행사로 바뀌어서 국가의 안녕과 권위를 높였다. 풍년 기원의 제천행사 천군이 흙이나 나무로 성(城)이나 책(柵)을 쌓고 소도를 지배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상태에서 행해졌기 때문에 정치권력이 확고하지 못한 상태였다. 마한 54국 중에는 신소도국(臣蘇塗國)도 있었고,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에 소도를 편입했다. 제정일치의 사회였던 고조선(古朝鮮)도 군장(軍將)이 천군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다. 일본의 신도(神道)도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 무속과 자연 신앙에 기초하여 성립되었다. 소도와 신도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면서 인간과 부구분하고 하늘에 제천행사를 주관하는 지역이었다. 제천행사는 흉노족의 정월 춘제, 5월제, 그리고 가을제가 있었고,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유라시아는 아시아와 유럽이 연결된 거대한 지역으로 중위도 지역에 유럽대평원에서 시베리아평원에 이르는 거대한 초원(Steppe)을 형성하면서 유목문화의 발상지가 되었다. 초원지역은 서부(흑해 초원), 중부(카자흐 초원), 동부(신강, 몽골, 만주, 시베리아)로 구분된다. 초원문화, 유목문화, 수렵문화, 농경문화의 단일 구조 속에 서로 융합된 복합문화를 형성해 왔다. 흑해 초원의 지배자, 스키타이 흑해 초원(Pontic Steppe)은 몰도바,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에 이르는 지역으로 고대 문명에서 스키타이(Skythai)의 활동무대였다. 스키타이는 사슴을 의미하는 스콜로토이(Skolotoi)에서 유래하며, 그리스인들은 ‘시메리안’ 또는 ‘스키타이’로 불렀다. 헤로도투스는 “정주하지 않고 수레로 자신의 집을 갖고 다닌다. 수렵생활을 하면서 가축을 치며 활을 쏘는데 능하다”고 기록했다. 소규모의 농경도 했지만 주변의 농경민들을 약탈하거나 공납으로 착취하면서 무사 정신, 전쟁 승리, 그리고 형제 관계를 중시했다. 스키타이는 농경 스키타이, 상공 스키타이, 유목 스키타이, 그리고 로열 스키타이의 4개 집단으로 사회를 구성했다. 스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시자(尸子)는 태(太)라는 원초적인 혼돈 상태에서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우(宇)’라 하고, 새롭게 오는 것을 ‘주(宙)’라 하여 추상적인 관념에서 우주(宇宙)가 탄생했다. 우주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는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되었고, 여기에 음양오행과 방위가 규칙을 부여하면서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동아시인들은 만물의 질서를 천원지방과 오행방위로 측정하고 사물을 인식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의 탄생, 우주와 천원지방 우주는 시간의 변화량을 측정할 때 근원적인 단위이며 물리적인 법칙이 존재하는 원자를 기본단위로 한다. 원자는 연속적이고 지수함수적인 비트(bit) 단위의 전자(electron)와 불연속적이고 다항함수적인 큐비트(cubit) 단위의 양자(quantum)를 포함하고 있다. 가장 가벼운 원자인 수소에서 헬륨, 헬륨에서 탄소로 변하는 핵융합에서 다양한 물질이 생성된다. 별은 수소 원자에서 시작하여 자체 핵융합으로 점점 커져서 적색 거성이 되고, 내부의 핵연료를 소모하면서 응축되어 성운(planetary nebula)으로 변한다. 성운의 원자핵이 서로 부딪치고 외곽이 전자로 덮이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플리트비체(Plitvička jezera)는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곳으로 수많은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석회암 지대로 지형의 침식이 이루어지면서 호수가 생성되어 물에 포함된 광물, 무기물과 유기물의 성분과 양에 따라 하늘색, 밝은 초록색, 청록색, 진한 파란색, 또는 회색을 띠고 있다. 삼척 미인폭포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지질학적 특성과 석회암이 혼합된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석회질 물이 높이 30m에서 내려오면서 신비로운 비취색의 물빛을 띠고 있다. 특히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 석회수의 장대한 물기둥과 물안개가 장관을 이루면서 최고의 풍경을 제공한다. 전 세계적으로 중국 구채구, 트뤼키예 카파도키아,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등에서 볼 수 있는 애매랄드 폭포수를 다시 보려면 보수 공사가 끝나는 2026년 3월 초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세한 사항은 삼척시 폐광지역사업단, 도계읍에 연락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초기 백제는 낙랑군과 대방군에서 문화를 받아들이다가 낙랑과 대방의 소멸로 동진(東晉)에서 남조의 문화를 전수받았다. 중국식 무덤인 전축분(벽돌무덤)은 고대 중국에서 유행하였고, 낙랑에서도 2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평양 토성리와 황해도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은 덮개 돌 아래에 돌기둥을 세우고 봉분을 얹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발전했다. 횡혈식석실분(돌방무덤)은 흙으로 봉분을 만들고 중앙에 석관이나 석곽을 배치하는 구조로 백제 중기부터 주요한 묘제로 정착하였다. 전축분 무령왕릉의 남조문화 전축분인 공주 송산리 6호분은 사신도, 해와 달, 별을 그렸고, 두 장의 벽돌을 맞대서 한 쌍이 되도록 쌓았다. 7호분(무령왕릉)은 배수로 공사 중에 도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하였다(1971년 7월 5일). 묘지석으로 축조 시기(525년)와 무덤의 주인(무령왕)을 알 수 있다. 진묘수가 무덤방으로 가는 널길 가운데에서 입구 쪽을 노려보는 자세로 외부 침입자로부터 무덤을 보호했다. 머리에 뿔이 한 개 달려 있는 진묘수는 죽은 자의 영혼을 서왕모(西王母)에게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한다. 보통 널방 입구에 한 쌍을 바깥을 향해 배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의 가요는 남녀간 사랑,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 영농 활동의 노동요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읍사(井邑詞)’, ‘선운산가(禪雲山歌)’, ‘무등산가(無等山歌)’, ‘지리산가(智異山歌)’ 등이 있다(고려사). 또한, 노동요인 ‘산유화가’가 백제의 멸망과 함께 서천과 부여 일대의 노동요로 불려졌다. 일반 백성들의 애환과 농사에서 오는 고된 삶을 진솔한 가사와 가락으로 표현했다. 백제 여인의 기다림을 담은 백제 가요들 정읍사는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남편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근처 산 바위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비는 노래이며, 백제의 가요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고 있다. 정읍사는 정읍(井邑) 또는 빗가락 정읍(橫指井邑)으로 불렀다(고려사, 악학궤범). 왕이나 왕세자가 이동할 때 위엄을 보여주기 위하여 연주했다. 조선 말기에 가사인 ‘정읍사’는 사라지고, 연주곡인 ‘수제천’만 남아서 처용무(處容舞)의 반주로 연주한다. 전곡은 4장으로 1,2,3장은 6장단, 4장은 2장단이다. 2장은 1장의 반복이고, 3장은 1장과 2장보다 4도 위로 조옮김을 하였고, 4장은 원래의 조로 되돌아간 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불상과 보살이 사찰의 불전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백제의 불상들은 모든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모습이다. 불상(佛像)은 불법을 쉽게 보여주고 터득할 수 있는 신앙의 매개체다. 기도의 대상인 불상은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약사불‧비로자나불 등이다. 보살은 성불(成佛)의 뜻으로 부처를 도와서 보살행(菩薩行)을 하는 사람이다. 백제의 불상은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관세음보살을 표현하면서 인간의 생로병사와 구제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인도의 보리수 아래서 새로병사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불상으로 인간의 고뇌를 초월하게 한다.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 설법하다가 성불하여 3회 설법으로 272억명을 교화시킨다. 관세음보살은 극락에서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고, 이승에서 죽은 자를 극락으로 인도한다. 불전의 석가모니불과 봉주 보살상 불전은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인 부처나 보살 등의 불상을 모신 불교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주요한 행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선종(禪宗)의 사찰에서 법당, 교종(敎宗)의 사찰에서 강당으로 불린다. 우리나라는 선종 중심의 사찰이 많기 때문에 주요 법당으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산업화(industrialization)는 개인의 건강, 질병, 그리고 죽음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장기간에 걸친 의료화(medicalization)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환경이나 사회적 과정보다 의사에 의존하는 치료 중심으로 변했다. 의대 입학 후부터 난해한 의학 지식으로 일반인의 접근을 통제하면서 집단적 응집력과 폐쇄적 구조를 형성했다. 우리나라는 1999년 의약분업 사태를 시발점으로 의사들이 의대입학 정원의 동결을 배경으로 배출 인원과 자연 감소에 의한 의료 인력을 관리하고, 인구의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의 증가로 의료비용이 증가해 왔다. 건강보험제도 실시 따른 의료 수요 확대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일탈을 제거하는 문화적 가치와 규범의 수행자로 개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환자는 아프면 빨리 회복하기 위해 의사의 지시를 적극적으로 따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는 생물학적 기술뿐만 아니라 권위를 가지는 집단으로 변모됐다. 의사는 자신의 노동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면서 의료 내 다른 직군과 환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 됐다. 의사들은 의료 기술을 기반으로 제도적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조성원 순례자는 한화그룹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오로지 한 곳에서 40여년간 청춘을 불사르고 재경 분야 임원까지 올랐다가 용인경전철 대표를 마지막으로 퇴직했다. 퇴직에 즈음해서 2018년 지구의 둘레인 4만여 킬로미터에 해당되는 거리를 걷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매일 2만보씩 걸었다. 그 목표가 완성되어 가면서 마지막 피날레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프랑스 길, 산티아고 4대 순례길의 하이라이트! 산티아고 순례길은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십자군 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지를 갈 수 없게 되자 순례의 대체지로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 객들이 오면서 시작됐다. 그가 걸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여러 개의 경로가 있는데 ‘프랑스 길’은 투르의 길, 리모주의 길, 르 퓌의 길, 툴루즈의 길에서 각각 시작해 생 장 피에드포르에 합류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한 다음에 바스크 주, 아라곤 주, 나바라 주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야고보의 순교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가는 순례길이다. 또 다른 순례길로 ‘스페인 길’은 출발지인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아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는 신령의 보호를 받는 마을 안과 보호받지 못하는 마을 밖을 연결하는 영역이었다. 마을의 뒷산이나 부근의 산은 우주를 관장하는 상당신(上堂神, 산신당)을 모시고, 마을의 입구는 장승, 솟대(짐대), 돌탑, 선돌 등으로 하당신(下堂神, 서나당)을 세웠다. 마을 변의 거석은 하늘과 태양에 이르는 매개체로 초자연적인 숭배의 대상이면서 제단으로 사용했다. 거석문화는 선돌(menhir), 돌멘(dolmen), 스톤서클(stone circle), 스톤어라인먼트(stone alignment) 등으로 인류 문명과 함께 해오고 있다. 마을의 하당신, 돌무더기와 선돌 돌무더기는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로 일정한 장소에 돌을 모으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돌을 쌓으면서 안전과 소망을 기원하는 정령 신앙의 표현이면서 대상이었다. 주로 냇가의 돌이나 산의 돌을 이용하여 둥근 형태로 쌓아 올린 후 정상부에 길쭉한 신줏돌을 세운다. 산길이나 들길에 돌을 쌓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안내 표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몽골의 돌무더기인 ‘어워(Овоо)’는 광활한 초원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정표이면서 주변을 돌면서 안전을 기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태양숭배는 긴 일조량과 따뜻한 기후를 소망하면서 나타났다. 태양이 계절의 순환을 만들면서 농작물의 경작을 결정했다. 태양을 상징하는 곡옥, 동검과 동경이 주술적인 목적의 도구나 위세품으로 사용되었고, 무덤에 부장품으로 함께 묻었다. 옥(玉)은 가장 정결하고 순수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태양 속에 사는 삼족오(三足烏)는 세발 달린 까마귀로 태양과 땅에 살면서 하늘, 사람과 땅을 연결하였다. 태양의 상징인 위세품, 곡옥과 동경 곡옥은 왕권 혹은 지배계급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품이다. 홍산문화는 옥의 소유를 특별한 지위의 상징물로 여겨서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했다. 곡옥은 머리부분에서 크고 굵으며 꼬리 부분으로 가늘게 꼬부라져 있다. 크기는 1센티미터부터 10센티미터 내외까지 대부분 옥으로 만들어졌다. 곡옥은 힘의 상징이나 장신구, 호부(護符)나 주술적 의식용구, 초승달 숭배로 반달장식이라는 가설이 있다. 곡옥은 반월형에서 두툼한 초승달 모양으로 점차 변화되었다. 옥이 시신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힘을 가졌다고 믿고, 시신에 옥을 부장하기도 했다. 합옥은 부활, 색옥은 육체의 정기, 옥돈은 내세의 양식을 상징했다. 동경은 태양을 상징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지식은 원리를 통해서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지식의 특수성과 유사성을 인정하면서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지식은 과거를 말하는 철학, 미래를 이야기하는 과학, 그리고 인간의 본능과 경험(실험, 관찰 등) 등을 합쳐서 이루어진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은 대학에서 지식을 창출하고 전파하면서 국가의 발전과 산업의 성장에 활용하고 있다. 지식의 생성: 불확실성과 확률의 탄생 지식은 오랜 기간의 유물, 유적과 사건들의 빅데이터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자료가 많을수록 그 원인이나 현상을 빨리 찾을 수 있지만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도 존재할 수 있어 근본적인 실체를 찾기는 어렵다. 초기 값이 지식을 결정할 수 있는 출발점이지만 첫 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지식을 정의하기 어렵다. 확률(probability)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특징을 반복적으로 측정해서 얻는다. 베르누이(Bernoulli)는 반복 실험에서 얻은 경험 확률로 미지의 기대 값과 확률을 계산했다. 베이즈(Bayes)는 이론 확률(사전 확률)에 추가 정보를 반영하여 새로운 확률(사후 확률)을 계산했다. 베르누이 확률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조공은 중심국(종주국)인 중국에 대하여 제후국(번국)인 속국의 충성을 나타내는 위계 구조였다. 황제는 제후국의 조공을 통하여 상징적인 통치권을 인정받았고, 제후국은 지배 영역의 종주권에 대한 중원의 확인을 받았다. 동아시아는 조공과 책봉으로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면서 각 국가가 독자적인 통치를 수행하였다. 조공에 따른 책봉의 역사 최초 책봉의 기록으로 근초고왕이 동진(東晉)에서 진동장군령낙랑태수(鎭東將軍領樂浪太守)를 받았다. 송(宋)은 전지왕에게 책봉하면서 진동대장군(鎭東大將軍)으로 한단계 승격시켰다. 백제의 관료로 신하였던 부여례가 관군장군부마도위불사후장사(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를 받고, 장무가 용양장군대방태수사마(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를 받았다(472년). 양나라는 무령왕에게 사지절도독백제제군사영동대장군백제왕(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寧東大將軍百濟王, 521년), 성왕에게 지절백제제군사수동장군백제왕(持節百濟諸軍事綏東將軍百濟王, 524년)을 수여했다. 성왕이 양나라에 시경(詩經) 전문가를 요청했고, 양무제는 예학의 권위자인 육후(陸詡)를 보냈다. 위덕왕은 동제에서 사지절시중거기대장군대방군공백제왕(使持節侍中車騎大將軍帶方郡公百濟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