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미국 기술벤처를 주요 고객으로 한 특화 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하면서 국내 금융권도 긴장 태세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SVB 파산이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 적일 것이라 관측하면서도,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향후 상황을 예의주시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전했다.
SVB는 기술 산업 관련 투자회사와 기술 산업 스타트업 기업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온 특화은행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점이 있으며 30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상업은행으로, 자산규모는 2989억 달러(한화 기준 약 390조원) 수준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사유로 SVB를 폐쇄하면서 SVB 사태가 촉발됐다. SVB 파산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문을 닫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미국 SVB발(發) 공포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 측 관측과 같은 맥락에서 국내 금융업계에는 ‘관망론’이 우세하다. 일단은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봐도 될 것이란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현재의 상황에서 체크해야 하는 요소는 크게 세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 정부가 국내 은행권 과점 체제를 완화하기 위해 밀었던 신규 은행 투입, 특화 은행 도입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 SVB와 같이 금리를 올려 예금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시중 자금을 끌어모은 국내 저축은행엔 위험 요소가 없는가 ▲ SVB 파산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등이다.
순서대로 살펴본다.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 과점 체제를 완화하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했던 금융 개혁 시도가 미국 SVB 파산으로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신규 은행 투입을 위한 연구 과정에서 해외 벤치마크 모델로 SVB를 꼽으며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은 바 있다.
그런데 SVB가 파산하면서 국내 은행 과점 체제 해소 방안으로 떠올랐던 ‘특화은행’ 설립 구상에 사실상 큰 변수가 발생한 상황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1차 회의’에서 국내 5대 시중은행 과점체제를 허물기 위해 은행 업무 범위를 세분화한 특화은행 설립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선 특화은행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SVB가 거론됐다. 미국 내 16위이자 실리콘밸리 내 1위 은행으로써 경영 역량은 부족하지만 기술력이 있는 벤처기업에 각종 컨설팅과 보고서 작성 등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성공한 벤처기업 특화 은행이란 평가였다.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이 높게 평가한 SVB의 사례를 토대로, 국내 과학기술 벤처기업이 모여 있는 대덕밸리에 기반을 둔 충청권 지역은행 설립이 SVB 모델을 토대로 한 것이란 해석도 제기됐다.
하지만 SVB 파산으로 특화 은행 설립 추진 자체의 동력이 약화된 상황이다.
게다가 SVB 파산은 급격한 금리 인상이 원인이 된 상황에서 대외 경제 환경 변화에 즉각 영향을 받는 국내 금융시장에 SVB와 유사한 특화은행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금융위 실무작업반 논의에서도 “특정 여신 부분에만 집중하는 은행은 해당 부문의 자산건전성 충격을 다른 부문의 여신을 통해 흡수하기 어려워 더 높은 수준의 자본적정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SVB 사태가 은행권 과점 논의와는 별개라면서도, 시장 우려를 적극 반영해 대안을 모색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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