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소리 없는 기술 유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 해외 유출은 대기업, 중소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세계에서 반도체 시장에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핵심 기술이 빠져나갈 경우 한순간에 우리나라 경제적 근간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다.
비단 기술 유출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글로벌 기술 패권 속에서 그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해외 경쟁사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개발을 위해 5배의 연봉에 자녀의 국제학교까지 보장하는 인센티브를 내걸고 핵심 인물을 포섭하고 있다.
한국에 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엔지니어를 고용해 필요한 설계 기술을 가져가기도 한다. 공동연구를 내세워 대학이나 연구소에 자국의 연구원을 파견해 핵심 기술 자료를 유출하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산업기술 해외 유출 적발 사례는 총 96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 등이다. 업종별로 보면 반도체에서 가장 많은 총 38건의 산업기술이 해외로 유출됐고, 디스플레이가 16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 중 기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은 국가 핵심기술은 5년 동안 총 33건이 유출됐다. 반도체가 10건으로 가장 많았고, 디스플레이와 자동차 각각 5건, 전기·전자 4건 등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술은 주로 중국으로 유출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임원을 지냈던 A씨는 삼성전자 영업비밀인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빼돌린 후 중국에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그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온도·압력 등 삼성전자 공정 기술을 중국에 넘긴 혐의도 있다. 다행히 투자 유치 불발로 공장 건설에 실패했으나 계획대로 이뤄졌을 경우 삼성전자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A씨가 이용한 삼성전자 관련 자료는 최소 3000억원대에서 최대 수조원의 가치를 가진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단 삼성전자 뿐만 아니다. 특화된 기술력은 큰 인센티브를 부여해 인재를 영입하거나 이미 다른 나라로 기술이 이전 돼 중요한 핵심 기술이 퍼져나갔을 경우도 다분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최종 의결한 양형기준 역시 엄벌 기조를 적용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국가가 정한 핵심기술(국가핵심기술)을 국외로 빼돌렸을 경우 법원은 최대 징역 18년을 선고할 수 있게 했다.
일반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했을 경우는 최대 권고형량이 9년에 그쳤으나 최대 15년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양형 기준 상향 조정이 기술 유출 범죄를 막는 근본적인 해결이 될지는 의문이 남는다.
유출 사범을 적발했다고 하더라도 법원에서 뒤집힌 사례를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양형 기준을 적용하려면 피해액이 나와야 하지만 이를 산정하기란 쉽지 않다.
유출된 곳이 해외일 경우 그 나라에서 협조할 가능성도 희박하다. 해당 기술이 실제 타국에서 경쟁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는 것도 입증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회는 최근 첨단기술 유출범 처벌 강화 내용을 담은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을 올해 추진할 계획이다. 벌금 상한을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늘리며, 브로커도 처벌 가능토록 바꿀 예정이다. 무엇보다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한도 역시 현행 3배에서 5배로 확대 할 방침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반도체, 이차전지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법이 정한 '전문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개선할 방침이다.
관세청 역시 사전 기술 유출 단속을 위해 지난 1월 경제 안보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총력 대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된다면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사전 차단, 중간 관리, 사후 처벌 체계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는 앞서 ▲청소년시절부터 윤리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기업과 개인간 윤리 의식 고찰 ▲핵심 기술을 가진 인재들을 잡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다각화된 인센티브 부여 등 더욱더 많은 혜택과 정책 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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