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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석열 대통령, 헌정사상 최초 현직체포 ‘불명예’

15일 10시33분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민주화 이후 6번째 피의자 신분 조사 대통령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5일 내란 수괴 등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현직 대통령이 수사기관에 체포된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날 공수처는 “오전 10시 33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이 집행된지 약 5시간 20분 만이다.

 

이날 공수처와 경찰은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정부과천청사에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로 출발해 오전 4시를 넘어 관저 인근에 도착했다. 이들은 오전 5시10분께 관저 앞에서 변호인단에게 체포 및 수색영장을 제시했고 영장 집행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대통령경호처는 1차 집행이 있었던 지난 3일과 달리 이번에는 길을 터주는 형태로 수사관들에게 사실상 협조했다.

 

전직 대통령까지 통틀어 윤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6번째로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기관에서 조사받은 대통령이 됐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던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시중은행에 4000억원의 비자금을 예치해 가지고 있다는 폭로가 나온 이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고 내란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 추징 2628억원이 확정됐다.

 

다음으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검찰 소환을 통보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함께 12‧12 군사쿠테타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내린 및 내란 목적 살인 혐의 등을 받았다.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12월 3일 구속기소됐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 2205억원 추징이 확정됐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 조사 과정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도 출석을 통보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자 자택에서 조사를 실시했다. 최 전 대통령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뇌물 수수 혐의로 퇴임 후인 2009년 4월 대검찰청에 출석해 중앙수사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2008년 2월부터 조사를 받았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은 특별검사팀으로부터 BBK 주가조작‧횡령 의혹, 도곡동 땅 차명 보유 의혹 등에 관한 조사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5년 후인 2018년 구속기소됐으며 2020년 10월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원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2022년 말 사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정점으로 지목되며 직권남용 등 13개 혐의로 2017년 3월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구속기소 돼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21년 말 사면됐다.

 

윤 대통령은 6번째로 수사기관에 체포 및 조사를 받는 대통령이 됐다. 현직으로 체포된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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