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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빨리" 경쟁 주 7일 배송, 노동자 건강 담보 잡고 ‘쑥쑥’

택배노동자 건강권 침해 우려에도 도입 기업 속속 늘어
CJ대한통운 도입이 신호탄..이커머스 업체들도 대거 동참

 

(조세금융신문=손영남 기자) 최근 택배업계의 주 7일 배송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택배 근로자들의 건강과 근로 환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쿠팡을 비롯한 주요 택배사들이 당일 배송, 새벽 배송 등 빠른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도입한 주 7일 배송이 택배노동자들을 과열된 경쟁의 희생양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때 쿠팡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주 7일 배송은 올초 CJ대한통운이 이를 채택한 것을 기점으로 업계 전반으로 번져가고 있다. 최근 한진택배도 이를 채택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치면서 이제 주 7일 배송은 더 이상 특별할 것 없는 제도로 정착될 양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될 여지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이다. 택배노동자들의 과도한 업무량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개 같이 뛰다’ 유명을 달리한 쿠팡 배송기사 정슬기씨의 사례에서 보듯 배송업체들의 끝없는 경쟁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노동자 본인의 선택이라는 논리로 사태의 심각성을 낮추어 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배달 건수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택배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싫다고 마냥 뿌리칠 수 없는 게 그 이유다. 현재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결국은 또 다른 노동자들의 비극을 지켜봐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법한 대목이다

 

◆ 쿠팡 잡으려면 주7일 배송으로도 부족해
주 7일 배송의 전면적인 도입이 단지 택배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빠른 배송을 무기 삼으려는 이커머스 업체들 역시 7일 배송의 혜택을 얻고자 하는 때문이다. 속절없이 쿠팡의 기세를 지켜보기만 하던 기존 이커머스 업체들이 전가의 보도로 꺼내든 것이 바로 주 7일 배송이다.

 

11번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주문 시 하루 만에 배송해 주는 ‘주말 당일배송 서비스’를 도입해 ‘주 7일 배송’으로 배송 시스템을 확장했다. 지난 2월, 11번가 직매입 상품 등을 무료배송 하는 슈팅배송 상품을 대상으로 적용됐으며 서울 전역을 비롯해 경기·인천 지역 대부분에서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지마켓도 올해 도착보장 서비스인 ‘스타배송’에 사실상 주 7일 배송을 도입했다. 소비자들은 지마켓·옥션에서 스타배송 상품을 토요일에 주문하면 바로 다음 날인 일요일에 배송받을 수 있음이 그를 잘 보여준다.

 

컬리도 기존의 주 6일 운영해 온 하루배송을 주 7일로 확장하는가 하면 포털의 지배자 네이버 역시 ‘네이버배송(N배송)’ 도입으로 일주일 내내 배송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선택의 폭이 대거 확장된 것이니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택배 노동자들이다. 일할 수 있는 날이 늘어 소득 증대를 기대하는 이들도 있지만 현행 구조대로라면 오히려 수입이 줄 수밖에 없어 지금보다 더한 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때문이다.

 

◆ 건당 수수료 인상 없이는 장시간 근로 불가피해
일할 시간이 늘었는데 수입이 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를 이해하려면 주 7일 배송과 관련된 택배사들의 협약을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 1월 주 7일 배송을 도입한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 대리점연합회와 주 7일 배송을 도입하되 순환근무제를 실시하고 주 5일 근무제를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기본협약을 맺었다. 노동자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을 사전에 방지한다는 차원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지금껏 택배노동자들은 통상 주 6일 근무를 이어왔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이 체결한 기본협약대로라면 순환근무제와 주 5일 근무제 시행에 따라 노동자들의 근무 시간이 단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휴일 배송이나 타 구역 배송을 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계약갱신 거절, 계약 해지 등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해 강제성을 차단했고 ‘조합원의 업무일은 연속하여 7일을 초과할 수 없다’는 조항을 넣어 휴식권을 보장한 것은 결국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배려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거듭되는 택배노동자들의 비극을 지켜본 뒤이니만큼 이는 필연적인 조치에 다름아니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줄어들 지도 모르는 수입감소를 대하는 노동자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주5일 근무를 행하고 있는 택배기사 A씨는 “이전에 비해 수입이 준 것은 사실”이라며 “이직까지 고려할 정도로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수입 감소를 우려한 기사들 중 상당수는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원치 않는 노동자들이 울며겨자먹기로 작업에 투입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키 위한 정책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지운 꼴이지만 현실적인 사안을 고려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업무량이 줄었다고 수입이 감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그것. 그를 위해 필요한 건 건당 수수료 인상이다.

 

◆ 핑계 많은 무덤 탓에 요원해진 수수료 인상
택배사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택배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건당수수료는 800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J대한통운의 건당수수료(서울 시내 배송 시)는 800원이며 휴일 배송은 25% 가산된 1000원이다.

 

때문에 휴일 배송으로 수입 증대에 나서고자 하지만 주5일 근무 적용 시 이조차도 수월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기존 노동자들의 휴일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체 근로자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건당 1000원에 불과한 수수료로 대체인력을 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수월할 리 없다.

 

이에 택배노조는 휴일 건당수수료로 1500원을 제시하고 대체인력 수혈에 나서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인력수급에 실패한 대리점들이 기존 택배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불법 아닌 불법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다. 택배노조의 자유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XX동대리점에 000이라고 합니다. 저는 주7일 배송 시작하면서부터 한번도 쉬지 못하고 일하고 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일요일 배송을 거부하고 싶은데 노조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연락주세요.>

 

이런 일이 한두건에 국한되지 않음은 누구라도 알 일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소비자들의 편익을 극대화한다는 주 7일 배송은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편리함도 좋고 빠른 것도 좋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이들이 존재해선 안 된다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성공은 결코 떳떳하지 못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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