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맑음동두천 -11.0℃
  • 맑음강릉 -4.1℃
  • 맑음서울 -10.6℃
  • 맑음대전 -6.7℃
  • 맑음대구 -5.4℃
  • 맑음울산 -4.3℃
  • 광주 -4.2℃
  • 맑음부산 -2.6℃
  • 흐림고창 -6.6℃
  • 제주 2.1℃
  • 맑음강화 -10.7℃
  • 맑음보은 -7.6℃
  • 구름많음금산 -6.4℃
  • 구름많음강진군 -3.4℃
  • 맑음경주시 -5.4℃
  • -거제 -1.6℃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70년대 아이유' 혜은이, "남편 빚 200억...비참했다"

 

(조세금융신문=고은선 기자) 70년대 아이유 가수 혜은이의 가슴 절절한 인생사가 공개됐다.

 

혜은이는 1956년생으로 올해 나이 64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빚 때문에 가장노릇을 해야 했고 재혼해서는 남편 김동현의 빚으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혜은이는 지난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데뷔했다. 당시 폭발적인 가창력과 미모로 가요계를 주름잡았지만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후배 보증을 서주셨다가 잘못돼서 길에 쫓겨났다"면서 이에 대한 방책으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한 남편 김동현과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두 사람은 MBC에서 처음 만나 서로 호감을 갖고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당시 이혼의 아픔을 한번 겪었던 혜은이는 김동현의 끝없는 구애로 마음을 열었다.

 

그러나 혜은이 김동현 부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 김동현의 사업 실패로 모든 재산을 탕진하며 빚만 200억이 넘었다. 혜은이는 "돈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돈 주는 데면 제가 싫은 데 가서라도 했다. 당시 방송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면서 빚을 갚기 위해 고생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어 혜은이는 빚으로 인해 죽을 생각까지 했다면서 "너무 비참했다"고 당시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김동현은 자신의 잘못으로 지난 10년간 뼈 빠지게 고생해야 했던 혜은이에게 진심어린 사과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동현은 "지금까지 아내가 나를 위해 내조를 했다면 이제는 내가 당신을 외조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혜은이는 '당신은 모르실 거야' '진짜 진짜 좋아해' '당신만을 사랑해' '감수광' '제3한강교' '철새' '바람이 지나간 자리' 등 수많은 히트곡을 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