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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영기가 투병중인 '크론병'...젊은층에서 주로 발생하는 이유?

 

(조세금융신문=고은선 기자) 개그맨 영기가 '미스터트롯'에서 '크론병' 투병 소식을 전한 가운데 크론병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영기는 TV조선 '미스터트롯'에 출연해 본인의 노래인 '한잔해'로 넘치는 끼와 재능을 선보이며 올하트를 받아 본선에 직행했다. 그는 무대 후 "얼마 전에 크론병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했다. 예전처럼 체력이 안 돌아와서 올하트는 둘째 치고 2분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다"며 안타까운 사연을 공개했다.

 

영기가 언급한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어느 부위든지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장 질환이다. 궤양성 대장염과 달리 염증이 장의 모든 층을 침범하며, 대장과 소장이 연결되는 부위인 회맹부에 발병하는 경우가 가장 흔하고, 그 다음으로 대장, 회장 말단부, 소장 등에서 흔히 발생한다.

 

크론병의 원인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젊은 층에서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학계에서는 마이코박테리아 감염, 홍역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요인이나, 소화관 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세균에 대한 우리 몸의 과도한 면역반응 때문에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크론병은 유전성 영향과 환경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크론병은 흡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흡연이 질병의 발생을 촉진하며, 흡연자의 경우 수술을 받은 후에도 재발률이 높고 증상이 더욱 악화된다.

 

한편, 영기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많은 분들이 크론병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신다며 팬들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또한 잘 회복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해 팬들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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