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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인터뷰]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 "서민 신탁 시대 온다"

부자들의 전유물에서 장애인 후견, 범죄피해자 지원
고객에게는 안전 관리, 금융사에는 탄탄한 고정 수익
발목 잡는 규제, 1호 개선안은 신탁 대리점 허용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사진=진민경 기자) 2018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 ‘평균 82.7세’. 긴 생애는 가족과 더 오래 있을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그렇지만 갑작스러운 장애와 치매 등 예기치 않은 위험을 마주할 가능성도 높였다. 개인이 혼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보다 한발 앞서 고령화 시대에 들어선 일본은 신탁에서 해법을 찾았다. 2004년 재산유형별로 묶인 신탁의 범위를 풀고, 2006년 새로운 상품개발을 위해 규제를 개선했다. 부자들의 자산관리 서비스였던 신탁이 치매노인의 재산관리나 미성년자의 후견을 위한 복지 시스템으로 거듭났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 센터장은 “한국에도 반드시 신탁의 시대가 온다”라고 강조했다. 웰리빙을 넘어 웰다잉까지 개인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신탁의 가능성을 들어봤다.

 

약자를 위한 구명조끼, 신탁

 

배정식 센터장은 금융권에서 매우 특별한 인물이다. 통상의 금융인이라면 높은 수익을 가져다주는 상품 판매에 주력하기 마련이다. 배정식 센터장은 후견인 신탁, 장애인신탁 등 상대적으로 금융사 수익이 낮은 상품의 성장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 마치 신탁이 보험처럼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 그러한 마음을 품게 된 동기가 궁금했다.

 

“2010년의 일이었다. 처음 신탁업을 맡을 때는 신탁은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때 부산의 한 30대 공무원이 우리 영업점을 찾았다. 갑자기 3개월 시한부판정을 받게 돼 아내와 7살, 5살 두 아들과 생이별하게 된 처지였다.

 

보험금 3억원과 2억원짜리 집이 있었는데 보험금은 아내에게 주더라도 집만은 자녀들에게 남겨주기를 원했다. 아내와는 사이가 좋은 듯했다. 다만,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어 했고, 우리는 보수와 상관없이 유지를 지켜드리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공무원분의 한 마디 질문에 일이 막히게 됐다.”

 

‘저 말고 전에 이런 걸 해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신탁이 막 출시되던 상황이라 과거 집행사례가 없었다. 본인 같은 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인지 의구심을 품었던 것 같다. 워낙 상황이 절박하다 보니 타인의 손에 맡기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결국, 계약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때 그분께 신탁이 꼭 필요할 수 있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못 쓰셨다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배정식 센터장은 ‘말하기 다소 힘든 사건이지만…’하며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2015년에 양부가 초등학생 6학년 양녀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보통 아빠가 자녀를 학대하면, 엄마도 따라 학대하는 경향이 있다. 양부가 법원에 공탁금을 2000만원 냈는데 엄마가 친권자란 이유로 그 돈을 찾으러 왔다.

 

법원에서 신탁 아니면 아이에게 돈을 줄 방법이 없다고 판단해 우리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를 위해서 신탁 외에 방법이 없었고 신탁을 맡았다. 그러면서 장애인 후견, 홀로 남은 미성년자 자녀 등 하나하나 일을 맡았다. 신탁이 부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여기게 됐다.”

 

애물단지였던 복지 신탁…복지의 지향점으로 부상하다

 

배정식 센터장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내용은 뜻 깊지만, 회사는 수익을 추구하는 곳이다. 서민 열 명의 고충을 해소해주는 것보다 부자 한 명을 잘 만나는 것이 훨씬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조심스레 예단하자면 서민 신탁의 저수익을 부자 신탁으로 얻은 고수익으로 메꿨을 수도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뜻밖에 “맞다”며 흔쾌히 즉답했다.

 

“우리 센터가 신탁업계에서 사회복지 신탁을 좀 일찍 시작하다 보니 이런저런 수익성 관련 지적을 받기도 했다. 사회복지 신탁은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비해 수익률이 낮다. 그러다 보니 자산가들과 맺은 신탁계약으로 수익률을 맞췄던 측면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 사정이 폈다. 2015년 우리 리빙트러스트센터가 출범했는데 올해 독립조직으로 확대되는 등 수익성에서 상당한 개선이 이뤄졌다. 최근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제법 받는다.”

 

사회복지 신탁 확대와 관련 이용료 부담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배정식 센터장은 일정 이상 보수를 받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신탁이나 서민들을 위한 신탁은 초기 보수를 일정 이상 넘지 않는다든지 상황에 맞게끔 조정할 필요가 있다.”

 

회사입장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 않은가 하고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은행은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계속 거래를 해줘야 하는 구조다. 시설장이 장애인 근로자의 월급을 유용하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었다. 서울시 사회복지 공익법센터에서 우리 측에 ‘지킴이 신탁’ 만들자는 제안을 해줘서 진행했다.

 

한 사람당 적으면 1000만원 많으면 5000만원 정도다. 들어가는 품에 비해 수익성이 낮지만, 장애인의 재산을 신탁이 지켜준다는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면서 장애인 단체들이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등록장애인 수가 260만명이 넘는다. 발달장애인 부모 협의체, 발달장애인, 장애인 사랑 협회 등 장애인 단체들에서 관심을 두고 있고, 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 같다.”

 

역으로 고객에게 원금손실이 날 가능성을 물어보니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장애인 후견 금전신탁 같은 경우 안전성이 최우선이기에 시중은행에 정기예금을 두는 식으로 운용한다. 투자상품에 돈을 쓰지 않는다.”

 

배정식 센터장이 지휘하는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의 장래성을 물어보자 조 단위 사업을 발전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10년 정도 하다 보니 지금은 총 건수가 10만 건이 넘는다. 그 중 금전신탁으로 깔린 게 5000~6000억 정도 된다. 기본적으로 금융사 입장에서는 0.3~0.4% 고정수익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처음 계약자를 모으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10년 지나니까 인건비도 나오고, 수익도 나온다. 규모의 경제다.

 

그래서 대기업이 나서서 해줘야 하는 신‘ 뢰성의 비즈니스’이자 ‘티끌모아 태산’이 맞다. 지금 1조 4000억인데 10조원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이 비즈니스는 사망할 때까지 평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은 물론 자녀들까지 잠재고객이 된다.”

 

“플랫폼 사업과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첫 구축이 어렵지 한번 눈 덩어리를 굴리면 가속도가 붙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정태 회장님께서 신탁을 두고 ‘삶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만물상자’라고 표현한 것도 같은 취지다. 신탁을 통해 가업 승계 같은 것도 잘 해줘야 하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해줘야 생활 속의 신탁이 될 수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사회복지 신탁의 성장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앞으로 사회복지 신탁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신호가 또 있다. 고령화 사회일수록 사회복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진다. 실제 일본의 경우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누구나 신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지키고 있다. 일본은 이를 위해 2004년, 2006년 법을 바꾸었는데 2019년 9월 기준 일본의 신탁규모는 한국 돈으로 1경 3308조원(1224조 1000억엔)에 달한다.”

 

“한국이 고령화 정점에 달하는 것이 2025~26년께인데 이때면 사회복지 수요가 최대에 달한다. 반면 현재 한국의 신탁규모는 1000조원 남짓하다. 역설적으로 보면 신탁 사회로 변화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서민 외에도 업계 역시 유언대용, 후견인 등 관리형 신탁에 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차 떼고 포 떼고…규제에 막힌 신탁

 

신탁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미래로 나아가는데 여러 제약도 있다. 신탁 제도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탁은 홍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보험 계약이나 증권투자도 비대면으로 이뤄지지만 신탁은 대면 판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판매처도 신탁업자로만 제한하고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신탁업계가 광고에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탁은 금전신탁과 실물신탁(재산신탁)이 있다. 상속 목적의 실물신탁이라면 금융투자협회에 신고하고 광고를 낼 수 있다. 이전보다 조금 완화되긴 했다. 그런데 금전신탁은 고객이 신탁사에 운용지시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어떤 식으로 운용한다고 밝히는 것은 특정 신탁의 성격에 맞지 않지 않다. 은행, 증권에서 금전신탁 중심으로 발달해왔는데 특정 신탁이 대부분이다 보니 광고가 잘 안 된다는 위축된 심리가 있다.”

 

상품의 특성상 홍보 방법들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홍보나 광고에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치매에 걸렸을 때 지급 청구인 대리 신청을 해서 돈이 지급되는 금전신탁을 원하는 고객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걸 원하는 노인들이 늘어난다고 가정해보면 운용 상품 관련 설명을 할 때 어려움이 있다. 노후 관련 신탁은 관리 목적, 관리 방법 등을 부각하면 되는 거지, 특정 신탁이니 운용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광고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노후상품들은 홍보 방법들을 완화할 필요 있다.”

 

복지 신탁에 한해 제한적으로 합동운용을 허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관리형 상품은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일본은 우리보다 고령화가 심화, 치매목적의 상품들이 많다. 일본의 경우 특정금전신탁으로 들어오면, 합동 운용을 허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업권 간 문제 등으로 합동 운용은 금기시해왔다. 그런데 복지 신탁 상품은 투자형이 아니라 정기 예금을 통해 관리 목적으로 한다.

 

그런 고객을 위해 조금이라도 금리를 높게 드릴 수 있다. 같은 성격의 상품을 모으면 운용규모가 늘어나기에 예금을 받은 금융사를 대상으로 구매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안전한 예금 상품이기에 일본의 경우 원본 보존까지 해준다. 금융위에서도 일본 사례를 이미 많이 알고 있다. 합동 운용을 금기시할 게 아니라 자산운용사는 투자 영역이니 그대로 두고, 관리 목적은 합동 운용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서 안전하면서 금리가 높은 상품을 고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신탁 영역에서는 전문성 제고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신탁개편안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수탁자가 아닌 제3의 섹터, 전문요양병원, 법무법인 등 신뢰성 있는 곳들을 수탁자로 선정할 수 있게 한다. 그 사람들이 쉽게 신탁 업무를 활용하되 백업에는 기존 시스템이 있는 금융기관과 재신탁을 할 수 있게 해서 신탁 업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행에서도 전문적인 기관과 협업해 할 수도 있다.”

 

“B라는 증권사가 신탁업도 하면서 운용을 잘하면, 이것을 우리가 재신탁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하기에는 부동산 영역이 좁은데 재신탁 영역에서 신축은 너희가 해달라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서로 전문 영역에 있는 업자들끼리 신탁이 일어나면서 수탁자가 전체적인 컨트롤 타워가 될 수도 있는 특성이 있다.”

 

신탁대리점, 신탁 활성화의 필수요건

 

신탁대리점 문제는 꼭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재신탁보다도 신탁대리점 제도가 꼭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신탁을 신탁업자만 팔 수 있게 하고 있어 다수의 사람이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일본은 2016년도 신탁법을 개정하면서 신탁대리점 제도가 도입됐다. 재신탁 문제는 좀 무겁고, 신탁 대리점 제도가 도입하기에 간편하고, 효과도 더 크다. 예를 들어 신탁회사가 새마을금고와 제휴해서 대리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대면 측면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필요하다. 현재 예적금은 물론 주식투자와 펀드는 비대면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 신탁 역시 반드시 대면판매를 해야 한다는 합당한 근거가 부족하다.”

 

신탁 대리점에 대한 접근은 필요하지만, 안전에 대한 부분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상품을 잘못 공급하면 고객 피해를 일으키고 신탁에 대한 신뢰에 악영향을 미친다. 안전 판매가 전제된다는 것 하에 신탁 접근성을 높여야 하기에 반드시 고려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한다.

보험은 다수가 가입하여 위험부담을 공동이 나눠서 진다. 반면 신탁은 월 납입금을 내는 보험과 달리 일시에 자산이나 자금을 위탁하고 수수료를 낸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보장이란 특성은 같다. 보험과 비교할 때 개인 사정에 맞는 설계를 통해 밀착형 성‘ 실한 집사’의 역할을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신탁이 보험 못지않게 사회 안전판으로써 훌륭한 잠재 가능성을 가졌다고 강조했다.

 

“신탁은 금전이든 전 재산이든 내 삶의 필요한 모든 걸 구현해줄 수 있는 도구이다. 상속에 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혹 문제가 생겼을 때 액수와 관계없이 나의 의사대로 자산을 배분하는 안전장치다. 기존에는 웰빙, 웰리빙에만 신경 썼지만, 수명이 길어지면서 웰다잉의 가치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존엄한 삶을 지켜주는 안전띠로써 신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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