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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신탁 속 세상] 노인 열 중 한 명이 치매…효자 노릇하는 신탁

재산 형태에 묶인 치매신탁…금융위 개선작업 착수
치매 전문 특화 신탁사 도입 검토

보험이 대량 생산된 캐쥬얼이라면, 신탁은 개인형 맞춤옷과 비슷하다. 둘 다 위험을 주제로 한 상품이지만, 신탁 속에는 더욱 다앙햔 개인의 삶과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 신탁이기에 장애인·미성년자·범죄 피해자 후견 문제, 고령자가 노후나 치매 대비도 ‘맞춤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초고령화, 저출산 사회에 근접할수록 신탁은 개인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컨설턴트로도 변화하고 있다.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로부터 실제 경험한 사례를 제공받아 신탁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봤다. /편집자 주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치매는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9’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환자로 추정되는 인원은 75만488명에 달한다.

 

치매 유병률은 10.16%, 노인 열 명 중 한 명꼴인 셈이다.

 

치매 환자 수는 2024년에 100만명, 2039년 200만명, 2050년 300만명을 각각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게 되면 전 인구의 5~6%가량이 치매인구가 되는 셈이다.

 

65세 이상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042만원으로 추정되며, 국가치매관리비용은 약 15조 3000억원으로 GDP의 약 0.8%에 달했다.

 

정부가 치매 관련된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개인이 손을 아예 놓을 수준까지는 아니다. 이제는 잘 죽을 수 있는 것도 복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80대 초반의 A씨는 막내딸이 자기 현금카드에서 수시로 돈을 빼서 쓰거나, 명품가방을 사는 일을 발견했다.

 

카드를 빼앗고 타일르기는 했다. 그런데 막내 딸은 어느 순간엔가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나가 돈을 빼 쓰거나 신용카드로 명품을 샀다.

 

놀라운 건 막내딸의 대답이었다.

 

 

◇ “엄마가 쓰라고 해서 쓴 건데?” 후견인 필요하다

 

막내 딸은 돈 문제로 엄마가 다그치긴 해도 다시 카드나 통장을 주면서 쓰라고 허가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그러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순간 치매가 무서워졌다. 진료를 받아보니 ‘초기 치매’ 진단이 나왔다.

 

A씨와 A씨의 두 딸은 이대로 막내딸이 엄마의 상태를 이용해 엄마의 노후자금을 탕진하는 것이 두려웠다.

 

다행히 해외에 사는 두 딸은 미국에서 이런 경우 흔히 신탁을 이용한다는 것을 떠올리고 한국에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찾았다.

 

다행히 A씨는 매우 정신이 또렷했고, 제 때 신탁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재산 관련해 생애노후자금을 위한 계획을 짰다. 사후 세 딸에 대한 분배방식도 정했다.

 

A씨가 만일 치매가 악화된다고 해도 A씨의 재산은 A씨를 위해 쓰이게 됐다.

 

당시 A씨 업무를 맡았던 신탁업자는 A씨 경우는 치매 초기라서 다행이었지만, 상당히 치매가 진행된 경우였다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의사 결정에도 시간이 걸린다. 실제 중증 치매였던 B씨는 생전 자기 재산은 자신의 병원비나 생계비로 쓰고 나중에 유산분배가 이뤄지길 바랐다.

 

반면 B씨의 자녀들은 사업 명목으로 생전 분배를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자칫 생계가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B씨는 망설이다가 신탁을 맺지 못했다. 이후 마음을 되돌려 재차 상담에 나섰으나 그때는 치매가 너무 진전돼 자기 의사대로 계약을 맺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B씨처럼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발생하지만,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치매 관련된 신탁을 문의하는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요 시중은행권에서는 자산관리 후 상속 대행, 세제혜택을 위한 투자 후 증여, 상조서비스 비용까지 연계한 상품 등 다양한 유형의 서비스가 나오고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치매신탁 등의 경우 위탁자 형편에 따라 맡기는 재산이 금전, 유가증권, 부동산 등 혼합돼 있다. 따라서 재산별로 나누기 보다는 주도적으로 종합적인 관리해야 신탁 효과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국내 금융사들은 금전, 부동산 등 신탁재산 형태에 따라 회계관리 영역을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맡기는 재산에 따라 제각각 관리하는 셈이다.

 

일본은 2004년 신탁법 개정을 통해 포괄신탁을 허용하자 신탁업자들이 적극적으로 포괄시탁, 종합신탁 수요를 받아들인 결과 신탁규모가 우리 돈으로 1경원으로 급성장했다.

 

정부 당국에서도 종합신탁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30일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발표하면서 치매신탁이 채무 등 소극재산과 담보권도 수탁할 수 있게끔 제도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신탁회사가 채무까지 관리할 수 있게 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진입규제를 개선해 치매신탁 전문 특화신탁사 허용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은 “복지 영역에서 신탁의 비중이 커지고, 치매신탁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면서 "신탁업계도 이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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