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송두한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 정책위원장) ‘재난지원’의 경제학<上>에서 이어집니다.
2. 포스트 코로나 경제는 ‘정책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지금의 경제운영 시스템은 관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새로운 시장질서를 이식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기존의 공급자 주도 정책을 확대·재생산하는 접근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경제 위기에 대응할 수 없으며, 이번 2차 재난지원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는 정책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재정정책은 관리에서 운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고도성장이나 고성장 시대의 재정정책은 재정관리를 위한 수단 정도이다. 고성장 경제에서는 세수 등의 재정 유입이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 지출만 잘 관리하면 된다. 즉, 곳간이 넘치는 시기에는 ‘재정운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성은 불필요한 개념이다. 대부분의 정부 정책이 재정관리에 사상적 뿌리를 두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경제는 들어오는 세수를 관리하는 ‘곳간지기’보다는 새로운 경제 질서를 재편하는 ‘재정운영 전문가’를 요구하고 있다. 재정관리가 정책의 고유 목적이라면 재정건전성에 매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부채 비율의 분자인 정부부채만 관리하면 된다는 과거의 균형으로는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 분모인 ‘GDP’를 늘려 재정건전성을 관리하는 전문 역량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포스트 코로나 경제는 어려울 때 과감하게 곳간을 풀어 민생을 지원하고, 경제를 살려내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 역량을 요구하고 있다. 2차 재난지원 추진 과정에서도 재정건전성이 주요 현안으로 부상함에 따라, 경제적 효과 등 정부부채 이외의 경제 현안들은 주변 변수로 밀려나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선진국의 재정운영 정책을 비교, 분석해 그 차이가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부채는 크게 정부부채와 민간부채(가계 및 기업)로 구성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재정운영 방향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채를 늘려 경기 부양에 나섰고, 가계와 기업은 오히려 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흐름을 보였다.
특히, 경기침체 국면에서 선진국 경제는 정부가 부채를 늘려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흡수하는 재정운영 원칙을 높게 세우고 과감한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재정관리에 치중하면, 정책 수요자인 가계와 기업이 부채 충격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재정운영을 강조하는 선진국경제와 재정관리를 강조하는 한국경제와의 차이다.
정부가 경기침체 국면에서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 그 충격이 가계 및 기업건전성 악화로 전가되는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정부가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재정건전성 지표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 안에 주권자인 국민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발 경기충격의 파고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부채를 늘려 가계와 기업을 부채함정(debt trap)에서 구하는 정책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바람직한 방향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형 경제로 나아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 사상인 것이다.
정말 그러한지 수치로 확인해 보도록 하자. 선진국은 보편적으로 100% 내외의 정부부채 비율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함께 커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선진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2008년 76.5%에서 2019년 109.3%로 32.8%p 증가했으며, 신흥국은 31.0%에서 52.1%로 21.1%p 증가했다. 미국의 수치 역시 2008년 71.7%에서 2019년 103.9%로 32.2%p 증가했다. 선진국 경제는 정부부채의 증가 속도나 수준면에서 신흥국보다 높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부부채는 2008년 22.9%에서 2019년 39.6%, 2020년 43.9%등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경제를 ‘5030클럽’(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3만불 이상)에 가입한 선진국형 신흥국으로 평가한다면, 정부부채의 증가 속도나 수준면에서 안정적인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 정도의 건전성이면 민생정책보다 재정건전성에 초점을 두고 국가살림을 운영할 정도는 아니다. 즉, 재난지원 등과 같은 경기활성화 정책은 오로지 경제 상황에 따라 결정할 사안이지, 재정건전성을 기준으로 평가하거나 결정할 사안은 아니라는 의미다.
더욱 큰 문제는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맬수록 가계부채와 기업부채가 팽창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가 경제 현안으로 부상할 정도로 ‘양적 팽창·질적 저하’ 문제가 심각하다. 2019년 기준 가계부채는 GDP에 견줘 96% 정도인데, 이는 OECD 뿐만 아니라 선진국 평균에 비해서도 단연 최고 수준이다. 정부가 재정건전성 목표를 엄격하게 세우고 경직적으로 운영하는 사이, 가계의 부채 의존도가 급증하는 부작용을 초래한 것이다.
따라서 재정정책이 과거의 경제 균형에서 재정정책이 정부부채로 협소하게 규정되었다면, 포스트 코로나 경제에서는 그 범주를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로 확대해야 한다. 즉, 재정운영의 방점을 정부부채가 아니라 민간부채 운영에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적 논리가 결여되면 경제정책이 아니다.
“재정 상황을 고려해 경제정책을 설계하였다”, “재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대책을 마련하였다”, “재정건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정부가 어떤 경제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가장 흔하게 듣는 말들이다. 즉, 재정건전성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에서 경제 현안에 대한 대책이나 방안을 마련한다는 의미인데, 엄밀히 따지면, 이는 경제정책이 아니다. 경제정책이라면, 경제적 영향과 파급효과 등 효과성 분석에 기초해 정책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경우 재정건전성은 사후적으로 관련 정책의 스케일을 조율하는 조절변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과 철학은 이러한 경제 원칙과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재정 교본과도 같은 ‘GDP 대비 40%’는 국민들에게 마치 “내가 퇴사하면 회사가 망한다.”와 유사한 각인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국민들이 이 비율을 지키지 못하면 국가재정이 파탄에 빠질 수 있다고 믿어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실증적 근거나 이론적 토대가 빈약한 내규나 다짐 정도에 불과한 기준이다.
물론, ‘GDP 대비 40%’는 이미 사장된 거나 다름없는 재정건전성 기준이다. 2020년 정부부채 비율은 44%까지 증가했으나 OECD 국가, G20, 선진국 등 어떤 지표로 비교해도 여전히 최고 수준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GDP 대비 40%‘의 또 다른 버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20년 들어 정부부채가 꾸준히 증가하며 이전의 허들을 넘어섬에 따라, 재정건전성 관리를 위한 재정 준칙(fiscal rules)을 검토하고 있다. 재정목표를 정량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정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역시 경제정책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재정관리 방편일 뿐, 재정운영, 즉 경제운영에 대한 비전과 철학은 여전히 과거 시점에 머물러 있다.
아마도 EU의 재정 준칙인 ‘안정·성장협약’이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인 ‘GDP 대비 정부부채 60%·재정적자 3%’ 수준에서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이 기준을 지키는 EU 회원국들은 거의 없다. 코로나발 경기충격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상황에서 재정관리에 집착하게 되면 그 피해가 결국 가계부채 채널을 통해 국민들에게 돌아기기 때문이다. GDP 대비 ‘40%’이든 ‘60%’ 이든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한국경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재정관리를 위한 준칙이 아니라, 재정운영을 위한 준칙이다. 일례로, 정부가 준비하는 재정준칙이 채무비율을 ‘-3%’로 제한한다면, 2020년 약 61조원의 채무를 덜어내야 한다. 2020년 재정적자는 –118.6조원으로 채무비율 –3% 수준(–57.6조원)을 넘어선 상태다. 즉, 재정준칙에 따라 약 61조원의 적자를 줄여야 하는 셈이다. 재정관리 준칙의 관점에서 보면, 증세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결국, 증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재정준칙은 포스트 코로나 경제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배치된다.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재정 및 통화팽창’정책이 글로벌 경제 전반에 걸친 보편적인 현상이다. 코로나발 경기충격이 주도하는 역성장의 위험을 넘기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대응할 수밖에 없다. 2020년 미국의 재정적자는 GDP에 견줘 –16%를 초과한 상태다. 재정준칙으로 보면, 미국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부실 국가일 것이나, 재정운영의 경기대응성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재정운영 역량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세계경제는 글로벌 생산 협업체제가 와해되면서 통합에서 균열로, 공유에서 고립으로 경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는 전시 상황에서 우리 경제는 재정준칙이 현안으로 부상하는 암울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재정준칙의 도입이 전쟁 중에 실탄의 총량을 관리하고 회수하는 자기모순의 중심에 있는 이유다. 개발경제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재정준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일부 유럽국가에서 시행했던 재정준칙도 사실상 폐기된 거나 다름이 없다. 시대역행적인 재정준칙 도입을 중단하고, 포스트 코로나 경제에 부합하는 ‘재정운영의 경제 원칙’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 안에 담을 경제 원칙은 선진적이며 단순 명료해야 한다. 재정운영의 목적이 ‘재정건전성의 분모(GDP)를 늘려 분자(부채)를 줄이는 경제정책 지원’에 있음을 명시하면 될 일이다.
다음 편에, ‘재난지원’의 경제학<下>편이 이어집니다.
<본고는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본사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프로필] 송두한 백석예술대학교 초빙교수
• 민주금융발전네트워크 정책위원장
• KDI 경제전문가 자문위원
•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 전) Visiting Assistant Professor (Otterbein University, Columbus, Ohio)
※ 저술: 서브프라임 버블진단과 향후 파급효과 진단(2007), 가계 대출행태 분석을 통한 주택버블주기 진단과 시사점(2012)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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