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빠르면 2023년부터 발효될 다자간 국제조세 규범은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다국적 (디지털)플랫폼기업들이 지구촌 전체에서 거둔 매출에서 해당 국가의 매출기여분에 상응하는 과세권을 배분하는 개념의 첫번째 기둥(필라1)이다.
두번째 기둥(필라2)은 15%의 법인세 최저세율을 정해 해외계열사가 이에 못미치는 세금을 냈으면 나머지 세율 상댕 세액을 모(자)회사 소재국 국세청에 납부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두 개의 기둥은 논리적으로는 아니더라도 협약 이해당사자간 이해관계 및 역사적 맥락에서는 서로 의존관계가 있다. 당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구심이 돼 조세회피처 방지를 모색해오던 국제사회가 적절한 규칙을 정할 무렵, 지구촌 전역에서 돈을 벌면서도 모회사가 (주로) 소재한 미국에만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다국적디지털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각국의 문제제기가 있었다.
미국과 유럽 등의 선진국들이 주로 문제 삼았던 나라들이 이들 다죽적플랫폼기업들이 낮은 세율의 혜택을 한껏 누려온 나라라는 점은 두 개의 기둥이 공히 서야 지구촌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는 일종의 복선이었다.
두 개의 기둥이 똑같이 공평하게 자리 잡아 모든 국가들의 박수를 받으며 정착할지, 아직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해! 나 빼고 너희들만!”
트럼프 대통령 이후 미국이 파리협약 등 지구촌 보편적 규범으로 자리 잡은 국제협약을 줄줄이 탈퇴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무역통상 규범으로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세계무역기구(WTO)는 아예 노골적으로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8월2일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INF) Treaty)’도 일방적으로 공식 탈퇴했다.
최근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를 강조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역대 대통령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과 ‘대인지뢰금지협약’도 가입하지 않고 외면해왔다. 평화의 사도라며 주도했던 탄도미사일방어(ABM) 조약도 슬그머니 탈퇴했다. 자국 군사력에 도움이 안되면 무시하는 이 같은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의미할 뿐이라는 지적이 많다.
최근 발표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2022년판 미국 이기주의 법제다. 세계무역기구(WTO)은 물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도 위반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IRA에는 국제협약에 담긴 ‘차별 금지 조항’을 무시하는 조항이 버젓이 들어있다.
미국이 외교안보 정책의 기조로 천명한 ‘인도-태평양전략’은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미국은 정작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가입하지 않았다.
“글로벌 국제조세의 다자주의…국제조세의 우루과이라운드”
한국 정부는 다자간 국제조세 합의를 한국 세법,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에 반영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연구용역을 줬는데, 이 연구용역에 참여(필라1)한 김정홍 미국변호사(법무법인 광장)는 “이번 다자간 국제조세 규범인 디지털세를 계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사실상 세계조세기구(world tax organization)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각국의 조세주권을 민주적으로 조정하는 국제조세 문제는 지극히 정당한 시도다. 이번 다자간 국제조세 합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유엔(UN)이 나서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조항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의 구심인 유엔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정홍 변호사는 “개발도상국과 다국적기업, 선진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구도에서 이번 다자간 국제조세 합의에 대한 추가 협상이 부진하다면, 개도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UN모델 제12B조가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UN모델 제12B조는 자동화된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원천징수를 의미한다.
김 변호사는 이번 국제사회의 국제조세 합의는 “지구적 문제는 지구적으로 푼다!(Global problem requires global solution!)”는 점에서 ‘글로벌 국제조세의 다자주의’라고 표현한다. 다국적기업의 지구촌 가치사슬과 유해한 조세경쟁, 공격적 조세회피 계획 등이 지구적 문제이며, 과거 무역 분야 지구촌 협정이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의 국제조세 버전이 이번 다자간 국제조세 합의라는 것이다.
“법인세 말고도 공평하고 합리적인 디지털세도 가능”
전중훤 글로벌기업 조세재무임원협회(TEI) 회장은 “필라2를 어떻게 적용할 것이냐에 대해 유럽연합(EU)과 미국, 영국 등이 저마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도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에 녹여내고 이를 법인세로 규정한다고 보면, 법인세의 경우 결국 조세조약의 적용을 받게 될 것”이라거 내다봤다. 그는 이어 “조세조약의 문제는 결국 다자간협의를 통해 이해상충 문제를 조율해나가는 점을 고려하면 조세조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는 간접세를 통해 다국적기업에게 추가적인 세수를 추징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밝혔다.
전 회장은 “필라1, 필라2의 출발점은 디지털세(Digital tax)”라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영국의 우회적 이윤세(Diverted Profit Tax)가 법인세에 해당하는지는 접어두고도, 이미 여러 국가는 조세조약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도내에서 자체적인 디지털세(Digital tax)를 입법, 적용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각국 정부와 다국적기업들이 상생하기 위해 국제조세환경의 변화・발전은 계속 여러 각도에서 모색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국제조세 규범을 통해 기업경영의 최종목표가 ‘이윤극대화’를 넘어선 환경・사회・거버넌스(ESG)라는 점에서도 지역사회에 대한 성실한 조세부담의 중요성이 새삼 중요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저한세 계산 놓고 국가간 조세분쟁 불가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2년 정부 세법개정안’은 내년 3월 각 세법 시행령까지 봐야 구체적인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는 진단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세무전문대학원)는 “이번 기재부 세법개정안을 보면 보통의 세법과 달리 번역투 및 영문부기가 많고, 국제회계기준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임을 예고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박 교수는 “외국에서는 OECD 모델규정을 별도의 법률로 만들어 국제적 정합성을 높힌 뒤 그걸 토대로 국내법을 만들자는 논의도 있다”고 외국 정부 동향을 소개했다.
박교수에 따르면, 추가 세부담을 대상조세에 포함시키는 필라1과 달리 필라2에 따라 추가부담하는 세금은 외국납부세액공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종전 국내 거주자 또는 내국법인이 해외에 설립한 해외투자법인으로, 지분 50% 이상을 갖고 사실상 통제하고 있는 특정외국법인(Controlled Foreign Company, CFC)을 통한 세부담은 대상조세에 포함된다.
현행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 제11조제1항에 따른 국가별 보고서에서 작성된 자료가 활용될 가능성 높다.
박 교수는 “최저한세 계산을 놓고 국가간 분쟁에 따른 분쟁해결절차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관련국의 과세권 확대쪽의 해석사례 때문에 국제적 이중과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행정적으로는 과세정보 확보를 위한 추가적인 자료요청 등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박 교수는 “신고 이후 세무조사 등 검증방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조세회피 방지 위한 글로브 규칙에 애먹는 다국적 기업들
환율 등락으로 글로벌 최저한세 대상이 되던 기업이 빠질 수도, 빠졌던 기업이 포함될 수도 있는 불확실성 문제에 대해 이 분야 전문가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실효세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봤다.
박윤준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전 국세청 차장)은 “환율 등락과 같은 외생변수가 실효세율을 다시 계산할 필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면서도 “필라2 최저한세 작용 대상 여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고문은 다만 “적용대상 여부는 4개 연도 수치를 고려하므로 부분적으로 치유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필라2 시행을 위해 ‘글로벌 세원잠식 방지(GloBE) 규칙’이 요구하는 자료로 ▲납부세액 ▲적정소득 ▲실체적 투자 데이터 ▲특정 국가 신용 및 인센티브와 기타 적정 데이터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계열사 소재국별로 다른 결산기, 세금 납부기한 등에 따라 법인세 산정이 어렵다는 재계의 고충도 관심거리다.
박윤준 고문은 이와 관련, “법인세 미확정 문제는 통상의 법인세 신고는 이루어진 뒤이고, 세무조사는 안 된 상황일 것이므로 크게 문제가 안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GloBE 정보보고서 제출기한(15개월)과 추가세액 신고납부 기한이 동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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