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 183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관세기구(WCO, World Customs Organization)는 전세계 세관직원들의 능력배양(capacity building)을 위하여 전문적 관세기법(customs techniques)인 HS 품목분류(classification), 세관신고 가격평가(customs valuation), 불법자금세탁 방지 수사기법(Anti-Money Laundering Investigation Technique), 수사정보분석기법(Intelligence Analysis), 고위험 선택과 집중 기법(Risk Management)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 프로그램, 세미나등을 개최하고 있다.
교육은 WCO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랏셀에 집합해서 하기 보다는 각 세관직원들의 편의등을 고려해 6대주 각 지역별로 나누어 개최하는 것이 관례이다.
1988년 봄, 태국 방콕에서 WCO 가 주관한 세관조사 정보분석 기법 교육이 일주일간 실시되었다. 강의는 호주 관세청 조사국 정보분석과장이 맡았고, 태국·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인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세관의 간부급 직원들이 참석해 사례 분석, 발표(case study, presentation) 및 토론 위주의 교육을 받았다.
한국관세청에서는 마약 밀수정보분석 담당자인 필자가 참석했다. 교육 장소 제공 및 운영은 태국관세청에서 담당했는데, 태국관세청은 각국 세관에서 온 간부교육생들을 위해 메콩강에 세관감시정을 띄워 놓고 선상 바베큐파티를 열어 주는 등 극진한 환대를 했고, 마지막 날에는 태국관세청장이 방콕의 메콩강변에 있는 샹그릴라 호텔의 중국식당으로 저녁 만찬에 초대하였다.
식당에는 3개 테이블로 나뉘어 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각국 세관 간부들이 만찬과 환담을 즐기었다. 나는 태국의 유력 영자지 편집국장과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은 그 해 가을에 개최되는 88 서울 올림픽에 대하여 운을 떼더니, “ 한국이 1964년 아시안 게임을 돈이 없어 못하겠다 하고 반납하여, 태국이 그 해 아시안 게임을 대신 개최해준 사실을 아느냐 ?, 20여년전에 재정 사정으로 아시안 게임을 반납한 한국이 금년 가을에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가능하냐? ” 라고 나에게 물어 보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성심성의껏 능숙한 영어는 아니지만 설명해 줄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
“ 27여년 전에 박정희라는 육군 소장이 권력을 잡은 후, 국민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개발에 진력해 이제는 올림픽 대회도 치룰 수 있을 정도로 국가 경제를 발전 시켜 놨다. 그러나 그는 지금 독재자라고 반대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라고 단순하게 설명해 줬다.
그가 던진 다음 질문은 “ 군인들의 쿠데타는 우리 태국에서 자주 일어난다. 또 권력을 잡은 장군은 독재자가 되어 나라를 이끈다. 그런데 너희는 20여년 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는데, 우리 태국은 현재 올림픽을 개최할 국력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나? ”
그 질문에 나는 답변할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생각해 본적이 없거니와 그 복잡한 설명을 하기에는 영어도 짧았다. 또 설명을 하다 보면 독재자라고 비난받던 박정희를 칭송하는 내용이 나올 것 같아 주저되었다.
한국에 민주화 열기가 가득했던 1988년 봄, 그 당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칭송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면, 국내에 있던 많은 민주화 시민들의 노선에서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선뜻 설명하기 어렵고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 때 그분에게 답변을 제대로 못하고 머뭇머뭇 더듬다 말았지만, 단체버스로 만찬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면서 태국 방콕 현지에서 느낀 점등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근대화, 경제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던 환경으로,
일제 36년간의 지배, 6.25 전쟁등을 거치면서 조선왕조 세력, 친일파 등 개혁에 반대할만한 기득권세력들의 힘이 빠져 있었고, 민주화를 우선시했던 정치세력도 4.19 이후 야기했던 사회혼란 때문에 명분과 저항력이 약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태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1826년 이웃나라 미얀마의 꼰바웅 왕조가 동인도회사의 관할구역이던 동벵골에서 해적질과 납치를 일삼다가 오히려 영국군의 공격을 받아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과정을 보게 된 태국은 눈을 바짝 뜨고 유럽 제국주의에 대응하는 벅찬 과제에 전력을 기울이게 된다.
1826년 영국과 맺은 친선·통상 조약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로서는 최초로 서양 열강의 등장을 인정했다.
1833년에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 후 태국의 현명한 왕들은 서양 열강과 친선 관계를 굳게 다졌다. 태국 국민들은 이들 왕들의 능력 있는 외교력과 태국 정부의 근대화 개혁 때문에 태국이 남아시아·동남아시아를 통틀어 식민지화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 유일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그 당시에 조선은 어떠했는가?
1885년 3. 1일 그 당시 세계 최강국가 영국은 군함 세척을 보내어 여수 앞바다의 거문도를 무력으로 점령하고 1887년 2. 5일 까지 2년간 주둔했다.
거문도에 상륙한 영국 해군은 주민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공사에 동원할 경우 근로 대가도 충분히 제공하는 등 우호적인 태도로 일관해 조선 관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동방의 예의지국이자 국제정세에는 무지한 조선은 이 기회를 활용해 세계 최강국 영국과 친해 질 수 있던 기회를 자신도 모르게 놓쳐 버렸다. 그저 고약한 서양 오랑캐인 영국과의 관계를 청나라에 기대어 문제해결하려고 하다가 차츰 국제사회의 동네북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 최중경,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 212-214쪽 참조)
서울올림픽 개최의 해 1988년 봄, 방콕 메콩강변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나에게 던진 태국 오피니언 리더의 질문은 그날 밤 나에게 많은 상념을 갖게 해 주었었다.
이대복 한국 FTA 원산지연구회 이사장은 경영학박사로 31년간 관세행정에 봉직하였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세계관세기구(WCO) 등에서 자금세탁방지론(Anti-Money Laundering)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세관의 역사(2009년, 동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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