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미국과 이란의 2주 휴전 합의로 국제 유가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국내 정유업계의 시선은 여전히 국회 재정기획위원회 조세소위에 쏠려 있다. 정유공정에 투입되는 ‘원료용 중유’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는 현행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법안이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업계는 10년 넘게 같은 요구를 반복해 왔다. 국제 유가 급등이나 중동 리스크 같은 외부 변수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만 원료용 중유에 세금을 매기는 구조 자체가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라는 주장이다.
원유는 면세, 중유는 과세
이번 논란의 핵심은 세법 체계의 불균형이다. 현행 개별소비세법은 휘발유·경유·등유·중유를 단일 항목으로 묶어 과세하지만, 실제로는 원유에는 개별소비세가 부과되지 않는 반면 원료 대체재인 중유에는 리터당 17원의 세금이 붙는다.
정유업계는 특히 원료용 중유가 최종소비재가 아니라 석유제품 생산을 위한 중간 원료라는 점을 강조한다. 석유정제 공정에 투입된 뒤 나프타, 아스팔트, 항공유 같은 비과세 제품이 생산되면, 이미 낸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5년 법안 발의 당시 국회 기재위 검토보고서도 이 점을 인정했다. 보고서는 원료용 중유가 최종 소비자가 아니라 정유사·석유화학기업의 생산원가에 직접 영향을 주는 만큼, 소비행위에 과세한다는 개별소비세의 취지와 어긋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최근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석유업계 간담회를 통해 석유업계 '최고가격제' 도입에 따른 손실보전 방안과 중유 개별소비세 면제 방안 등을 두고 업계 의견을 적극 반영할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업계, “원료용 중유에 소비세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 뿐"
업계와 경제단체는 국제 비교에서도 한국 제도가 예외적이라고 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OECD와 EU, 아시아 주요 66개국 가운데 원료용 중유에 소비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한국과 중국뿐이라고 주장하며, 그중 중국도 석유정제 공정 원료로 쓰는 경우에는 면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원료용 중유가 원유보다 가격이 낮아 정유사들이 정제마진을 보완하고 공급망을 분산하는 데 필요한 대체 원료라고 본다. 그런데도 세금이 붙으면서 국내 기업만 원료 선택에서 불리해지고, 결과적으로 생산단가와 수출 경쟁력까지 흔들린다는 설명이다.
정유업계에서는 특히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릴 때 원료용 중유 투입이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단순한 감세 요구가 아니라, 정제 원료 다변화를 통해 위기 대응력을 높이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2013년쯤 시설 투자가 완공되면서 중유를 원료로 투입하기 시작했는데, 제도가 정유업계의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료용 중유가 석유제품 생산 공정에 들어가는 중간재임에도, 세법은 여전히 이를 단순 연료와 같은 틀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개별소비세법 안에는 의약품이나 비료처럼 석유류가 재료 원료로 쓰일 때 면제되는 조항이 이미 있다”며 “원료로 쓰이는 중유도 같은 맥락에서 봐 달라는 요구를 계속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료용으로 투입됐을 때 환급이 안 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석유협회는 2013년 이후 정제마진 방어와 원료 다변화를 위해 중유 투입이 본격화됐지만 세제는 이를 따라 가지 못했다고 본다. 결국 원가 부담은 국내 정유사와 석유화학사에 그대로 쌓이고 이는 수출 경쟁력 악화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에도 여야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했고, 매년 세법 개정 국면마다 이 문제가 논의된다”며 “올해는 원유 도입이 쉽지 않고 중동 유가도 높아진 만큼, 원료용 중유 면세가 업계에 더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부, 세수감소, '정유사 이익 귀결' 우려도
반면 정부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재정경제부(2025년 당시 기획재정부)는 개별소비세 과세대상 물품이 다른 물품의 생산원료로 사용되더라도 과세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또 면세를 하더라도 국제 시장가격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좌우하기 때문에 소비자 가격 인하로 직결되기보다 정유사 이익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세수 감소도 부담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원료용 중유에 대한 면세가 시행되면 2026년 328억원, 2026년 이후 5년간 총 1,640억 원의 세입 감소가 예상된다. 개별소비세 감소분뿐 아니라 교육세와 부가가치세까지 함께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재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만 당시 재경위 검토보고서는 과거 코로나19 시기 한시적 면세 특례가 이미 시행된 전례도 언급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정유업계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상 면세 특례가 적용된 만큼, 이번 논의 역시 완전한 신설이라기보다 기존 예외를 상시화할지 여부도 관건이다.
현재 국회에는 성격이 다른 세 건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태호 의원안은 아예 개별소비세법 과세대상에서 원료용 중유를 제외하는 방식이고,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안은 조건부 면세 대상에 넣는 방식이다.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안은 조세특례제한법에 한시적 면세 특례를 신설하는 절충형이다.
법률 효과도 다르다. 과세대상 제외는 처음부터 신고·납세의무가 없지만, 조건부 면세나 한시특례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면세가 가능해 사후 관리가 뒤따른다. 결국 국회가 선택해야 할 방향은 “원칙적으로 아예 과세하지 않을 것인가”, “관리 가능한 범위에서 한시적으로 면제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재경위 검토보고서는 세법 원칙과 산업 현실을 모두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한다. 보고서는 원료용 중유에 세금을 매기는 구조가 형평성 논란을 낳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세수 감소와 과세 형평, 정책 효과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세수와 부작용을, 업계는 형평성과 경쟁력을, 국회는 제도 정합성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정부도 세제의 구조적 모순 자체는 일정 부분 인정하지만, 세수 부족과 가격 인하 효과의 불확실성을 들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중동 정세처럼 외부 변수가 반복될수록 원료 다변화와 공급 안정성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원료용 중유 과세 논쟁은 단기 감세 문제가 아니라 한국 석유산업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문제로도 읽힌다.
현재 이들 세 개 법안은 정부가 내년도 정부예산안 반영 과정에서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유 개별소비세의 영구 제외와 조건부 면세, 한시 특례 사이의 절충점이 만들어질지도 주목된다. 10년 넘게 이어진 논란이 더는 임시방편에 머물지 않고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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