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드라이브를 좋아한다. 그녀와의 소소한 대화는 이때 이루어진다. 아이들·친구들 동정, 가끔은 주변 사람이 궁금해한다는 세금 이야기며 동네 소식까지 다양하다. 어두운 밤에도 종종 시동을 건다. ‘캄캄해서 보이지도 않는데 뭐하러 나가냐’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면서. 웃으며 나갔다가 언성을 높이고 돌아오기 일쑤라도 그랬다.
“빈정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 들어봤죠?” “세상이 항상 옳고 그름에 따라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지난 30여 년과는 달리 앞으로 30년간은 내 뜻대로 살고 싶네요.” “….” 불편한 침묵으로 대화는 이어진다. 부부간 수준 높은 교양과 품위를 유지하면서 대화하기가 그리 쉬운가. 어느 주말의 오후,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더해진다. 그저 정면을 응시한 채 차는 속력을 높였다.
30년간의 중심축은 변함이 없었다. 하루의 시작과 멈춤, 가정일과 바깥일, 아이들 뒷바라지며 교육, 주말 일정, 가사노동, 역할분담 등에 있어서 내가 하지 않는 것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달리 반발도 없었다. 제대로 권력을 행사한 셈이다.
‘권력은 내가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움직이는 것’이며,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통제력을 행사하는 것’(로버트 그린의 <권력의 법칙>에서)이라고 믿었으니까. 지구상에 중력이 존재한다면 인간 세상사에 권력이 있다. 뉴턴의 사과나무 중력에서부터 블랙홀에 이르는 4차원 구조의 아인 슈타인 중력이 있는 것처럼 권력 또한 국가나 직장은 물론이고 작은 가정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실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라고 했다. 스멀스멀 사라져 갈 수도 있지만, 변화의 시류를 거스르게 되면 30년간 유지한 권력도 일순간 잃을 수 있다.
공직을 퇴사하고 새로운 직장을 얻으면서 가정에 경제적 여유가 생겼다. 경제적 여유는 삶의 여유를 가져왔다. 삶의 여유로 생각과 행동에 변화가 왔다. 호르몬의 영향인지 목소리와 행동은 당당해졌다. 활동반경도 넓어졌다. 변화의 시그널은 서서히 현실화되었다.
어릴 적부터 술을 싫어했다. 대학을 가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술을 마셨지만, 제한적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참다 못해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자 ‘음식인데 왜 가려야 하는지, 과음하는 것도 아닌데’라고 반문한다. 그렇게 싫어했지만 원하는 대로 가지 않았다. 지금은 냉장고 문을 열면 다양한 맥주가 눈에 들어온다.
가끔, 가정경제에 대해 물었다. 직업 특성상 대화가 길어지면 즉답이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어느 순간, “그러면 통장하고 다 줄 테니 애들 학비, 아파트 관리비, 이자비용 등 알아서 이체하고 당신이 살림 한번 해 볼래요?”라고 끝내버린다.
그 이후 몇 차례 유사한 일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금기어가 되었다.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렸지만, 지금은 함께하는 모임이 생겼다. 남편 퇴근시 전화만 받으면 집으로 간다고 동네에서 5분대기조라 놀렸던 분들은 사라졌다. 집 청소며 식사 후 예의범절(?)도 달라졌다. 예전 같으면, 식사가 끝나면 식탁에서 몸만 빠져 나왔다. 지금은 식사 후 빈 그릇을 세척기로 옮기고 식탁을 닦는다. 그리고 소파에 기대어 TV 시청하는 것이 매뉴얼이었다면 지금은 그 시간에 종종 청소기를 돌린다.
새해가 밝았다. 되돌아보니 지녀서 오히려 짐이 되었던 것을 내려놓고 보니 홀가분하다. 과거의 기형적 권력관계가 정상화되었음일까. 이후 대다수의 일이 순조로워졌다. 빈정이 세상을 지배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신은 나보다 나은 사람이야, 그리고 당신 곁에 있으면 나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영화 <The Family Man>에서).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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