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6 (토)

  • 맑음동두천 -3.8℃
  • 맑음강릉 3.7℃
  • 흐림서울 -0.8℃
  • 맑음대전 -5.1℃
  • 맑음대구 -4.7℃
  • 맑음울산 -1.7℃
  • 맑음광주 -3.1℃
  • 맑음부산 1.0℃
  • 맑음고창 -6.3℃
  • 구름많음제주 5.2℃
  • 구름많음강화 -0.4℃
  • 맑음보은 -7.6℃
  • 맑음금산 -7.8℃
  • 맑음강진군 -5.7℃
  • 맑음경주시 -6.3℃
  • 맑음거제 -2.5℃
기상청 제공

[김종봉의 좋은 稅上] 세라비’(c'est la vie)

(조세금융신문=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11여 년 전, 집식구 이름으로 조그맣게 텃밭용 땅을 샀다. 공직을 퇴직하고 받은 퇴직금과 로펌에서의 소득 등 이리저리 돈을 보탰다. 20년 넘게 묵묵히 내조해 준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표현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동산중개업을 한 이력이 있었고, 당시 경제학 석사였던 필자도 나름 물정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고 보니 맹지였다.

 

해당 토지는 지난해 3기 신도시 예정지구로 지정되어 연말에 토지보상 계약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정부시책에는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지정된 당일에 바로 계약까지 마쳤다. 그날 저녁, 11년 농사일을 마감하는 자축의 자리를 마련했다.

 

첫해와 그다음 해는 전 주인처럼 옥수수와 호박, 고구마를 심었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자신의 땅이 생기니 의욕을 보였다. 농사 초보자라 걱정은 됐다. 이랑과 고랑을 만드는 것도 육체노동과 경험이 필요하다. 잡초제거도 마찬가지다.

 

뽑고 또 뽑아도, 검은 비닐을 씌워도 질긴 생명력을 감당하기 어렵다. 필자는 소유자가 그녀임을 핑계로 엔간해서는 농사일을 거들지 않았다.

 

어느 해 3월경이었다. 잡초를 태우다가 불길이 바람과 함께 밭 전체로 번진 적이 있었다. ‘불이 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면서 전화가 왔다. 울음과 무서움에 뒤범벅되어 있었고, 외투를 벗어 불을 끄고 있다는 다급한 목소리는 파르르 떨고 있었다.

 

누군가가 119에 연락을 했고, 헬기까지 떴다. 다행히 불은 꺼졌다. 그날 밤, 불에 그을리고 탄 머리카락과 옷을 보여주면서 옆 밭의 비닐하우스까지 번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며 울다가 웃는다.

 

동네 텃세라는 것도 있다. 텃밭 주변은 대부분 미나리, 부추 등을 비닐하우스로 대량 재배하고 있었다. 유독 우리 텃밭이 물에 자주 잠겼다. 누군가가 대놓고 밭둑을 파서 물이 들어가도록 했다. 버려진 미나리나 부추와 농약병 등 갖은 쓰레기를 갖다 버리기도 했다.

 

농기구를 차에 싣고 다니는 것이 불편해서 농기구 보관시설용으로 작은 막을 설치한 후 그곳에 삽이며, 괭이, 호미, 낫, 장갑, 호박 묘종 등을 보관해 뒀는데, 그다음 날 가니 몽땅 사라졌단다.

 

그녀는 밭두렁 주변에 경계목으로 벚나무를 심기로 했다. 나무가 잘 자라니 보호목으로 적격이라면서. 이제는 농작물 대신 유실수를 심어야겠다고 했다. 농작물 경작은 힘만 들고 경제적 실익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선택한 것이 ‘매실나무’였다. 70여 주의 묘목을 샀다. 개중에 30여 주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심은 지 3~4년부터는 매실 수확이 가능해졌다. 5~6년차가 되면서 연간 220㎏ 정도를 수확했다. 그 이후에는 친환경 유기농 탓인지, 연간 100㎏ 정도로 줄었다.

 

다른 농작물 관리보다 수월했지만, 전지작업과 잡초제거, 그리고 수확도 만만치 않았다. 언젠가는 그녀 혼자 전지작업을 하고 있으니, 이웃 주인이 “아니 그 집 아저씨는 뭐하시고 매번 혼자 나와서 고생하시냐”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러는 사이 동네 사람들과의 친분도 한겹 한겹 쌓여갔다.

 

결실의 계절이 되면 동네 지인들과 수확의 기쁨을 나누었다. 알고 지낸 지 20년이 넘은 태준이네‧혁주네, 사루‧재금이 언니, 진숙씨 등이 단골 멤버였다. ‘세라비’(c'est la vie)라고 했던가. 풍요로운 해도 있었지만, 벌레들이 기성을 부려 제대로 된 매실을 구경하기조차 힘든 시기도 있었다. 매실을 잘 다듬어서 20ℓ짜리 유리병에 설탕과 다져 넣은 후 1년을 묵혔다. 액기스는 친척들과 지인들에게도 나누어도 주고,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먹고도 있다.

 

한껏 분위기가 오르고 그녀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갈 즈음,

“그런데 보상금 나오면 세금은 어떻게 되는 거야?” “어? 그거, 당신이 8년 자경했으니 세금은 안 나올걸?” “…” “묘목, 농기구 등 구입한 증빙 있지? 사진 찍어 둔 것도 있지?” “뭐야, 세금을 내야 한다는 거야, 안 내도 된다는 거야?”

 

“당신이 자경했다는 명백한 증거인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웅다웅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프로필]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3기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낚시와 K-관세행정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어린 시절, 여름이면 시골 도랑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다. 맨발로 물살을 가르며 미꾸라지와 붕어를 잡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허름한 양동이에 물고기를 담아 집에 가져가면 어머니는 늘 “고생했다”라며 따뜻한 잡탕을 끓여주셨다. 돌과 수초가 얽힌 물속을 들여다보며 ‘물고기가 머무는 자리’를 찾던 그 경험은 훗날 관세행정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물가에서는 마음이 늘 편안했다. 장인어른께서 선물해 주신 낚싯대를 들고 개천을 찾으며 업무의 무게를 내려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낚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다시 낚싯대를 잡기까지 20년이 흘렀다. 놀랍게도 다시 시작하자 시간의 공백은 금세 사라졌다. 물가의 고요함은 여전히 나를 비워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낚시는 계절을 타지 않는다. 영하의 겨울에도 두툼한 외투를 챙겨 입고 손난로를 넣은 채 저수지로 향한다. 찬바람이 스쳐도 찌가 흔들리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진다. 몇 해 전에는 붕어 낚시에서 나아가 워킹 배스 낚시를 시작했다. 장비도 간편하고 운동 효과도 좋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걸어 다니며 포인트를 찾는
[초대석] 세무법인 와이즈앤택스 최시헌 회장, 김선명 대표 "변화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최고의 세무서비스"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사진=이학명 기자) 지난 2023년에 이어 2025년에 치러진 한국세무사회 제33대와 제34대 임원 선거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돼 3년째 주요 회직을 수행해 온 최시헌 부회장과 김선명 부회장이 올해 1월 세무법인 와이즈앤택스를 설립하고 최고의 세무 컨설팅과 세무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꿈을 안고 본격 출범한 지 1년 가까이 됐다.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국세공무원을 마감한 최시헌 세무사가 회장직을 맡았고, 세무 고시 출신의 김선명 세무사는 대표세무사로서 법인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김준성, 김민식, 박정준, 민규태 세무사 등 4명의 젊은 세무사가 합류해 분당 본점과 분당 서현, 경기 광주, 서울 용산 등을 거점으로 하여 활발한 업무를 전개하고 있다. 낙엽이 거리를 뒤덮고 있던 11월 중순, 분당 본점에서 최시헌 부회장과 김선명 세무사를 만나 와이즈앤택스의 설립 과정을 돌아보고, 향후 법인을 어떻게 이끌어 갈 예정인지 알아봤다. Q. 우선 성공적인 법인 설립을 축하합니다. 올해 1월 각자 활동하시던 세무사사무소를 합쳐서 새로운 세무법인을 설립하셨는데요.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최시헌 회장) 저는 20년 연말 대구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공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