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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산업용 전기료 미국이 더 싼데 왜?…상계관세 덫에 걸린 철강업계

— 11월 대선 앞둔 미, 자국 철강업계와 유권자 의식해 한국철강업체에 정치적 상계관세 부과
— 산자부, 현대제철과 미 상무부 부과 확정 직후인 2023년 10월초 미 국제무역법원에 제소
— 한국산 철강에 상계관세 최다부과국은 미국… 철강업계에 전기료 문제 삼은 건 역대 최초

 

(조세금융신문=이상현 기자)


한국의 값싼 전기요금이 사실상 정부 보조금에 해당하는 만큼 한국산 철강 제품에 상계관세(相計關稅, countervailing duties)를 부과한다는 미국 정부의 최종 판정이 나왔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특정 상품에 보조금 등의 혜택을 줘 수입국 제품의 경쟁력을 영향을 끼칠 때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수출국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다. 압력을 가해 외교・통상적 거래(Deal)를 이끌어내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특히 자국내 선거가 있으면 자국민과 자국 기업들의 표심을 구하고자 남용하는 ‘국내정치용’ 정책으로도 알려졌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인 1995년이래 상계관세를 활용한 적이 없는 반면, 상계관세 부과를 받은 건수는 무려 32건으로, 세계 4위다. 한국산 철강에 대해 가장 많은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가장 믿고 따르는 우방국가 미국이다. 그런데 국적은 한국인이면서 미국인의 눈과 귀로 이 문제를 다루는 학자와 언론인들이 의외로 많다.

 

최근 미국의 상계관세 조사기법과 강도가 진화하고 있다. 최근 상계관세 조사에서는 수출 규모가 작은 품목과 중소·중견 기업의 생산 품목까지 조사하는 등 조사 범위가 확대되고, 조사 대상 보조금 프로그램 수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정부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빠릿빠릿하게 대응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상계관세율 1.08% 중 전기료가 0.51%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3년 10월5일 “미국 상무부가 한달 전인 9월 관보를 통해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이 자국에 수출하는 후판(두께 6㎜ 이상 철판, cut-to-length carbon-quality steel plate)에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최종 판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000년 한국의 전기요금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기로 최초 결정했었다. 이후 우리 업계와 정부는 이 같은 미국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예비 판정이 유지됐다. 물론 그동안 상계관세율은 차츰 낮아졌다. 미국 상무부는 최종 판정을 내리기 전인 지난 8월께 한전에 실사팀을 보내 국내 전기요금의 원가 및 판매가격 동향 등을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23년이 지난 2023년 9월7일 한국산 철강 후판에 대한 상계관세율을 1.08%로 확정한 미국 정부 ‘최종 연례 재심 결과’를 관보에 게재했다.

 

당시 기획재정부 대외경제국 이재완 통상정책과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선미 의원의 관련 질의에 “과거 미국 상무부가 한국의 전기요금에 대하여 상계관세를 부과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미국 관보에 나타난 상계관세율 1.08%중 ‘저가 전기 사용 특혜’로 표시된 세율이 0.51%로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도표)

 

<미국 상무부가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상계관세를 부과하면서 제시한 항목별 세율>

 

미국, 철강업체 전기료 문제 삼지 않다가 2023년 9월 전격 결정

미 상무부는 2023년 9월 이전까지 한국산 철강제품에 관한 상계관세 조사에서 3단계 기준에 입각, 한전의 전기제공이 적정가격 이하에 해당하지 않아 철강업체에 혜택을 부여했다고 보지 않았다.

 

미 상무부의 상계관세규정에 따르면 상품 또는 서비스가 적정시장가격이하로 제공되면 보조금 등의 혜택을 준 것으로 본다. 적정가격을 판단하는 3단계 기준은 각각 국내시장가격(1단계)→세계시장가격(2단계)→시장원리기준(3단계)로 요약된다. 1단계에서 판단이 어려우면 2단계, 2단계도 어려우면 3단계를 적용하는 식이다.

 

미 상무부는 한국의 전기시장이 한국전력의 독과점 상황이라 1단계 기준인 시장결정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또 한국이 인접국가에 전기를 수출하거나 수입하지 않음을 고려, 2단계 기준인 세계시장가격 활용도 어렵다고 봤다. 결국 3단계 기준에 따라 전기료가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지를 봤다.

 

미 상무부의 평가는 담백했다. 한전이 한국 철강업계에 제공한 가격이 시장원리와 합치돼 적정하다고 본 것. 한국의 철강기업이 한전 전기를 구매한 다른 비교대상 기업이나 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게 대우받은 바가 없기 때문에 혜택을 받지 않았다고 봤다.

 

미국 국제무역법원(United States Court of International Trade, USCIT)과 연방항소법원은 제소한 미국 철강기업의 이의제기에 대해 “상무부는 한국전력의 원가 회복 여부도 종합 판단, 최종 판정결과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었다.

 

갑자기 돌변한 상무부…“한전이 늦게 제출한 자료, 석연찮다”

하지만 2023년 9월 미 상무부는 돌연 입장을 바꿨다.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한 상계관세 조사에서 “한국전역의 전기제공이 적정가격보다 낮은 대가로 이뤄졌으므로 보조금”이라고 판단한 것.

 

상무부는 “한국 정부가 제출기간 내 2021년 한전의 가격결정과 관련된 자료를 제출하지 않다가 막판에 수정가능성이 있는 불완전한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불리한 가용정보(Adverse Facts Available, AFA)’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외교안보팀 정민정 입법조사관은 지난 1월12일 진선미 의원실에 제출한 ‘상계관세 관련 입법조사’ 보고서에서 “최근 들어 미 상무부가 자료 응답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료 제출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거나 자료의 적합성 등을 문제 삼아 AFA를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따라서 CIT 소송에서 상무부의 AFA 적용 타당성 여부 등을 문제 삼아 법정에서 다퉈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기업 포스코는 미국 상무부의 상계관세 판정에서 AFA 적용이 부당하다는 CIT 판결을 받아낸 적이 있다.

 

한국의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미 상무부 상계관세 부과 확정 후 한달여 지난 2023년 10월5일 “미국의 상계관세 판정에 대응, 미국국제무역법원(US Court of International Trade, CIT) 제소 등을 통해 전기요금 보조금 쟁점을 적극 방어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산자부는 이 계획대로 곧바로 제소가 이뤄졌다. 산업자원통상부 통상법무기획과 이동주 사무관은 지난 3월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2023년 10월 CIT에 제소를 했다”고 밝혔다. 원고는 현대제철이지만, 상계관세 특성상 정부(산자부)도 당연히 소송에 참여한다.

 

한미 산업용전기료 비교 아닌 ‘한국내 타업종과의 전기료 비교’가 핵심

미국 상무부가 한국 철강업체 현대제철 등에 상계관세를 부과한 정확한 취지는 한국 철강업체와 미국 철강업체가 각각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절대금액을 비교한 게 아니다.

 

한국 정부가 한국 철강업체들에 제공하는 산업용 전기의 요금이 다른 업종에 제공하는 전기요금보다 낮기 때문에, 타산업에 제공하는 요금과의 차이만큼 정부보조금을 준 것이라는 논리다.

 

다년간 통상 관련 국제기구에 근무한 한 중앙 정부부처 고위공무원 A씨는 익명을 요청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상계관세는 한국전력이 다른 산업에는 전기요금 100원을 받으면서 철강업체에는 왜 50원만 받느냐. 이건 다른 이유 없이 철강만 보조해준 거 아니냐 라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국제통상 규칙에 따라 “왜 한국의 전기사업자가 철강업계에만 다른 업종보다 싼 전기를 제공해서 미국 철강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느냐”며 상계관세 부과를 강행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한국전력이 고압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업계에 타업종에 견줘 싼 공급단가를 적용하는 게 문제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원가가 싼 제품(고압전력)을 대량구매하는 고객(철강업체)에게 에누리를 해주는 것은 매출정책의 문제이지, 외국 경쟁업체에 대한 경쟁우위전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도 산업용 전기가 사고 기술적으로 한국과 비슷할 텐데, 굳이 통상마찰을 빚는 상계관세를 물린 이유가 궁금하다는 지적이 많다. A씨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 요금보다 싼 것은 지구촌 모든 나라에 공통된 추세로, 한국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으로부터 배워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의 눈으로 얼핏 보고 무책임하게 논평…학계와 언론의 호도

한국의 학자나 중앙 언론도 전기료 상계관세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잘못된 정보와 철저하게 미국식 프레임에서 나온 서사(narrative)를 그대로 수용, 한국의 국익과는 전반대의 인식을 퍼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혜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지난 3월11일 아침 <YTN> 생방송에 출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6%에 이르는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싸기 때문에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진선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미국의 산업용전기 단가가 한국보다 훨씬 싸다.

 

이처럼 미국은 한국보다 산업용전기요금이 절대적으로 싸다. 미국의 주택용 전기요금 대비 전기요금의 배율도 한국보다 크다. 미국은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할 수 없으니까 유가 인상압력이 어무리 커도 국가정책적으로 싸게 유지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은 최근 셰일가스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다. 산유국이 되면서 전기요금은 더 싸졌다. 미국 철강업계도 경쟁관계인 한국 철강업계보다 훨씬 싼 전기요금으로 철강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유혜미 교수는 “정부가 철강업계, 특히 이런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우려나 지적들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의 맥락이다. 한국 철강제품이 한국 타업종보다 싼 전기요금을 적용받았다고 문제 삼는 것이 전기료 상계관세 문제의 핵심임을 모르는 것이다.

 

더 황당한 경우도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 2023년 10월5일치 인터넷판 보도에서 “상계관세가 1%대로 낮은 편이어서 미국 정부의 이번 결정으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가 매우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A씨는 “시장가격은 아주 한계적(marginal)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상계관세 부과 자체가 경쟁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A씨는 특히 “제조업 기업 세후순이익은 보통 3~4%인데, 이게 은행 이자율 수준이며, 특별한 기업 빼고 세후 마진을 잡고 나서 은행 이자를 갚아야 된다”면서 “세후순이익율 3~4%에서 1% 세율의 상계관세를 납부하려면 고스란히 판매가격에 전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료 상계관세 강행한 미국의 진짜 속내는?

한국 지난 수년간 중국 반제품을 수입해 수준 높은 제철 기술로 가공, 부가가치를 높여 미국에 수출해 높은 수익을 거둬왔다. 이런 방식의 철강제품 무역이 한국 경제성장률 꽤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지구촌 고부가가치 상품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이 가속화 되면서 미국이 이런 방식에 본격 어깃장을 놓기 시작한다.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에는 중국을 러시아와 이란, 북한과 엮어 이른 바 ‘외국우려실체(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로 법적 차별을 시작했다. 원재료나 부품, 심지어 물류상 이들 나라를 거치면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노골적인 차별을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에 명시,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철강산업에는 대상국 정부 산업정책이 비용구조를 왜곡해 자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인위적으로 지원했는지를 따지는 ‘상계관세’를 동원했다. 실제 바이든 정부 이전부터 미국은 자국산업보호를 명분으로 반덤핑, 상계관세 조사 빈도를 크게 늘렸다. 미 상무부는 특히 한국 철강 수입규제를 위해 △중국산 열연 수입으로 비용 왜곡 △한국 정부 생산 보조금 △한국 기업 간의 전략적 제휴로 비용 왜곡 △한국 정부의 에너지 가격 통제 등을 문제 삼았다.

 

통상 전문가들은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들 자체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없이는 특정 산업이 일정한 발전 궤도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가령 산업용전기 가격이 주택용보다 싼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고, 특히 한국도 선진국으로부터 배운 정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미국은 중국과 한국 간 탈동조화(디커플링)를 유도하고 반도체, 2차전지 공급망을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도록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의 하나로 전기료 상계관세를 활용하고 있다는 추론이 한층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상계관세는 돈과 패권의 상징…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무역제도”

미국은 전 세계에서 상계관세 조치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국가다. 돈과 패권이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상계관세 조사는 상대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자료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껏 돈과 패권이 많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이용해온 것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기업들은 해외에서 상당 건의 상계관세 조사를 받고 있다. 수출시장 규모가 큰 나라, 한국 기업들이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한국에 ‘상계관세’를 많이 부과한다. 2023년 8월 1일 기준 한국에 대한 상계관세 건수는 11건에 이른다. 모두 철강·금속 수출업체에 부과된 건들이다. 국가별로 한국에 대한 상계관세를 가장 많이 부과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 9개 철강 품목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 중이고, 1개 금속 품목에 대해 신규조사 중이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A씨는 “상계관세는 산업보호 측면도 있지만, 그 자체로 정치적인 성격이 짙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법리 적용이 힘들어 상계관세 부과가 불가능하면 비관세 장벽을 활용해 공격, 괴롭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무역통관을 지연시키는 등의 치졸한 수법. 세관이든 검역이든 통과를 안 시켜주면 그 자체로 ‘비관세 장벽’이 된다.

 

A씨는 “미국 철강업체들은 경쟁사인 현대제철의 제품가격을 높이고 싶을 때 미 상무부에 ‘상계관세’ 부과를 요청한다”며 “관세 앞에 상계, 반덤핑, 계절, 시장안정 등 다양한 이름을 붙이지만 결국 본질은 동일하며, 미국 철강업체 입맛에 맞게 가격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는 전가의 보도로 ‘상계관세’를 남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는 “미국 민주당 집권 정부가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그간 쌓아뒀던 업계나 기업의 민원 해결에 나서는 제스처 측면이 강하다”며 “보조금이 시장불공정을 유발했다는 걸 입증해야 되는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굉장히 정치적인 것인데, 이것을 제소해서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국민과 기업에 보여주는 것은 득표에 큰 도움이 되지만, 수년이 걸리는 다툼 기간 동안 제소 기업이 망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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