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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이슈체크] ‘운영의 묘’ 살리라는 금융당국…은행권 대출 딜레마

5대 은행, 당국 압박에 줄줄이 가산금리 인하
2월 가계대출 한 달 만에 증가세 전환
과거부터 정책 엇박자 나면 가계대출 급증 흐름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금융당국의 공개적인 압박에 최근 은행권이 잇따라 가산금리 인하 조치를 시작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는 가계대출 증가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즉각적으로 흘러나왔다.

 

정부는 부동산 경기 회복을 챙기면서도 가계대출 관리 기조를 이어 나가는 아슬아슬한 균형 맞추기를 하고 있다. 정책 엇박자로 인해 은행권과 금융소비자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팽배하다.

 

◇ 은행권 울상…“금리는 낮추고 대출은 관리하라니”

 

한국은행은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p 내린 연 2.75%로 결정했다. 이로써 2020년 10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기준금리가 연 2%대로 떨어졌다.

 

기준금리가 인하되자 금융당국의 은행권 압박이 본격화됐다.

 

공식 석상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제는 대출금리에 기준금리 인하를 반영할 때”라고 강조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그동안 금리 인하 효과가 경제 곳곳에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권대영 금융위 사무처장은 “은행권이 금리 인하에 시차를 가지고 우물쭈물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이같은 압박에 은행권은 대출 가산금리 인하를 속속 단행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10일부터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의 가산금리를 0.15%p 인하했다. 신한은행은 지난14일부터 주담대(금융채 5년물·10년물 한정)의 주택구입자금과 생활안정자금 가산금리를 각각 0.1%p 내렸다.

 

우리은행은 2월 28일부터 5년 변동(주기형) 주담대를 신규 신청하는 경우 가산금리를 0.25%p 인하했다. 이달 초부터는 ‘우리원(WON)갈아타기 직장인대출’ 금리를 0.20%p 내렸다.

 

NH농협은행은 지난 6일부터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0.3%p, 비대면 개인신용대출 금리를 0.3~0.4%p 낮췄다.

 

이처럼 은행권의 가산금리 인하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월 가계대출이 한 달 만에 증가세로 전환되며 가계대출 관리 강화 필요성을 일깨웠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 2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733조6588억원) 대비 3조931억원 늘어난 736조7519억원이었다. 1월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개월 만에 감소했으나, 한 달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셈이다.

 

서울시의 잠실·삼성·대치·청담동 등에 대한 토지거래허가제(이하 토허제) 해제로 집값이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금리 인하까지 맞물리며 가계부채 폭증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을 향해 가산금리를 낮추라는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은행권이 순차적으로 금리 인하 조치를 시행했다”며 “강남권 토허제 해제 시점과 맞물리면서 대출 수요가 늘고 있는데 가산금리 인하 메시지가 적절한 시기에 잘 나온 것이 맞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가산금리 인하 실시 이후 대출 수요가 늘고 있다. 가계부채는 부채대로 잡아야 하니 난감하다”고 말했다.

 

 

◇ 토허제 풀리며 대출 수요 몰려

 

실제 토허제 해제에다 신학기 이사 수요가 맞물리면서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3구 중심으로 집값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금융당국은 은행권을 향해 서둘러 가계부채 관리를 주문했다.

 

17일 권 사무처장은 가계부채 점검 회의를 열고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 움직임 등을 고려할 때 3월 이후 가계대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금융권 스스로 시장 상황에 관한 판단을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 추세 가운데 일부 지역에 대한 가계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실수요자 전반에 대한 자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각의 상황별로 ‘운용의 묘’를 살린 금융회사 스스로의 자율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일선 창구와 현장 중심으로 가계대출을 보다 적극적이고 세심하게 관리해 달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서울시의 토허제 해제 후 집값 상승세가 두드러지며 대출 수요가 증가했고, 금융권이 주담대 공급에 나서면서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은행권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산금리를 낮추면서 대출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졌지만, 금융당국은 은행권 스스로 판단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제한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3단계 DSR규제 앞두고 증가 불가피

 

가계부채 증가세가 꿈틀하자 이번에도 당국의 정책 엇박자가 그 원인인 것 아니냐는 시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 가계부채는 당국의 대출 정책이 삐걱거릴 때마다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

 

지난해 2월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대출 한도를 축소시키는 규제인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도입하자 잠시 가계대출 증가세가 주춤했으나, 같은 달 27조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대출 등 정책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규제 효과가 상쇄, 증가세로 전환됐다.

 

비슷한 시기 은행들이 대환대출 고객 유치를 위해 금리를 경쟁적으로 인하한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가 시행되면서 또 한 번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3월 가계대출이 4조9000억원 줄었다가 4월 4조1000억원 급증했다.

 

또한 지난해 6월 금융당국은 7월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갑자기 9월로 연기했다. 이 결정으로 7월과 8월 가계부채가 15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당국은 오는 7월부터 대출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3단계 스트레스 DSR을 시행할 예정인데, 지난해와 같이 규제 시행 직전 대출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경제 규모(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7%로 세계 44개국(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5위였다. 신흥시장 평균(49.1%)이나 주요 20개국(G20) 평균(61.2%), 조사국가 평균(61.9%)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를 낮추라고 하면서 동시에 대출 증가세를 잡으라는 것은 정책 간 엇박자라는 생각”이라며 “시장 상황을 모니터링 하면서 대출 금리와 총량 관리를 신중하게 진행할 것이지만 시장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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