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최근 담뱃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명목은 담배소비억제를 통한 건강 증진 및 건강보험료 진료비 축소인데, 언론에선 몇몇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담뱃값을 6천원, 1만원으로 ‘한 번에 인상’하자는 안부터 ‘매년 꾸준히 올리는’ 물가연동 또는 정액연동 방식들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담뱃세를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렸지만, 담배소비 억제란 목표는 최소한만 이뤄진 채 정부 담뱃세수와 담배회사 이익만 늘렸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엔 물가에 연동해 조금씩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나오고 있지만, 물가연동인상만 쓰자고 하는 건 매우 허황된 주장이다. 시장에서 가격에 대한 내성이 생겨 담배소비 억제효과는 제한적이고, 담배회사와 정부의 잇속만 챙겼던 2015년의 반복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담배는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이 좀처럼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품목이며, 부동산도 반영 안 하는 한국의 물가수치로는 뜨뜻미지근한 연간 3% 인상에 그친다는 것을 연구자들도 잘 안다.
거꾸로 말하자면, 담배소비 억제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담배회사와 정부가 잇속을 차리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한 번에 인상, 매년 꾸준히 인상이 아니라 이 둘을 같이 써야 가장 효과가 있다.
◇ 1. 담배 소비 억제, 즉효약은 ‘가격’
담배소비 억제 방법 중에는 담뱃갑 혐오그림 삽입, 금연 캠페인 등 비가격 방법이 있지만, 사실 별 효과는 없다.
가격인상의 경우, 효과가 뚜렷하다.
이는 통계적으로 입증되는데 2015년 정부는 2500원이었던 담뱃값을 80%(4500원까지) 인상했다. 그랬더니 매년 실제로 –7~-9억갑 정도 소비억제 효과가 발생했다.
연간 담배판매량은 담뱃값 인상 전 2007년 43.7억갑, 2008년 44.8억갑, 2009년 49.2억갑, 2010년 46.1억갑, 2011년 43.4억갑, 2012년 43.5억갑, 2013년 43.1억갑, 2014년 43.6억갑으로 약 43억갑 이상을 유지했다.
그런데 담뱃값 인상 후에는 2015년 33.3억갑, 2016년 36.6억갑, 2017년 35.2억갑, 2018년 34.7억갑, 2019년 34.5억갑, 2020년 35.9억갑, 2021년 35.9억갑, 2022년 36.3억갑, 2023년 36.1억갑, 2024년 35.3억갑으로 2015년 이후 34~36억갑 정도를 유지했다.
여기서 하나 봐야 할 지점은 2017년부터인데, 정부가 금연캠페인과 담뱃갑에 혐오그림을 삽입하는 등 비가격적인 방법을 사용했던 시점이기 때문이다. 2016년에 비해 판매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지만, 장기추세선에서보면, 꾸준히 캠페인과 혐오그림을 삽입했음에도 감소효과는 뚜렷하지 않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8월 18일 공개한 ‘개인의 행태 변화 유도를 위한 현금지원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담뱃갑에 혐오그림 삽입은 담배소비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가격 인상이 가장 효과적 소비억제방법임을 부정하는 연구보고서는 없다.
2024년 말 국회 예산정책처가 공개한 ‘우리나라 담배시장 변화에 따른 담배 과세체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에선 가격 1% 인상 시 궐련 담배소비 감소율은 0.34~0.49%라고 보고했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공개한 담배 ‘조세 정책 및 행정에 대한 테크니컬 매뉴얼’에서도 담배가격을 10% 인상하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담배 소비량이 4%, 중저소득 국가에서 5% 담배 소비량이 감소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담배가격을 100% 인상한다고 해서 정률적으로 담배 소비량이 40~50% 깎인다는 뜻은 아니다.
담배가격이 낮은 나라의 경우 두 배 인상해도 담배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수준이 아닐 수 있다. 담배가격이 높은 나라의 경우 어느 정도 돈을 잘 버는 사람들에게 담뱃값 두 배 인상은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담배 소비량을 깎기 위해선 120%, 150% 등 충분한 수준의 가격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
◇ 2. 담뱃값 인상과 잇속들
일단 정부 내에서는 담뱃값 인상을 고려하는 모양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7월 25일 인사청문회에서 ‘담배 가격 정책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 언론 보도들을 보면, 정부만이 아니라 담배회사들도 은근히 호의적이다. 다만, 너무 가격을 올리면 매출 등에 타격이 갈 수 있다며 신중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하나 이해해야 할 게 있는 데, 담뱃값 인상 후 담뱃세가 증가하면, 반드시 담배회사 매출과 이익도 같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담뱃값에서 담배회사 분은 그대로고 세금만 늘어나는 데 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이는 너무나 당연하다. 장사에서는 물건을 조금 팔아도 돈은 많이 버는 게 거 가장 좋은데, 만일 담배를 30억갑 팔아도 40억갑 팔던 시절 이상의 매출이 나온다면, 매출순이익과 유통마진이 안 오를 수가 없다.
실제 2015년 담뱃값 인상이 그랬는데, 위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 그래프에서 정부는 세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구간인 4500원을 골랐다.
그 결과, 담뱃세수는 2014년 6.9조원에서 2015년 10.5조원, 2016년에는 12.4조원으로 담뱃값 인상 전(2014년)의 79.7%까지 늘었다. 담뱃세 인상율 80%가 세수증가율(80%)에 최대한 녹아드는 지점이 4500원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연간 담뱃세수는 12조원 정도가 유지되고 있다.
담배회사들도 쾌재를 불렀다. 전체 담배판매량이 2014년 43억갑에서 2015년 33억갑으로 줄었음에도 2015년 KT&G의 순매출과 유통마진은 26%나 개선됐다. 8~9만원대인 KT&G 주가도 10만원대를 돌파했다.
여기서 질문이 하나 나올 수 있다.
담배회사들과 정부의 담뱃세수가 늘어나긴 했지만, 담배소비량 역시 연간 8~9억갑 정도 줄었으니 결국 국민 건강에 좋은 정책 아니었느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떤 제품을 소비하면, 그 제품의 구매가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기도 하지만, 거꾸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있다. 후자를 경제학에선 외부불경제라고 하는데, 담배는 아주 대표적인 외부불경제 제품이다.
스스로 폐암에 걸려서 자신의 건강을 망치는 것 만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려 배수구를 막아 물난리를 일으키게 하거나, 심지어 산에서 담배 피우다 큰 산불을 내게 하고, 가족들이나 사람들 많은 곳에서 담배를 피워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자를 대거 양산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담배를 규제하는 이유는 바로 이 담배 소비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장소, 연령 등에서 규제를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담배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가시적인 지표로는 첫 번째, 폐암 발생자 수가 잘 안 줄어든다. 폐암 발생자 수는 2015년 2만4267명에서 2022년 3만2313명으로 늘었다. 다양한 폐암 원인을 감안해도 폐암의 주된 원인은 담배다.
두 번째, 건강보험 부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발간하는 건강보험 2023년 10월호 ‘담배소송 그 후 10년 공단이 담배소송을 제기한 이유는?’에 따르면, 흡연 관련 질환 총진료비는 2011년 1조6914억원에서 2021년 기준 약 3조5000억원으로 거의 두 배 늘었다. 흡연 관련 질환도 같은 기간 35개에서 45개로 늘었다.
세 번째, 한국의 흡연자 수가 줄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흡연자 수를 볼 때 사용하는 통계가 흡연율인데, 연도별 흡연율은 2014년 24.2%에서 2015년 22.6%, 2017년 22.3%, 2018년 22.4%. 2019년 21.5%, 2022년 17.7%, 2023년 19.6%로 얼핏 낮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제시했던 연간 담배판매량 통계를 보면 알겠지만, 판매량 자체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 갑 피던 사람이 두 갑 피게 됐을 수도 있지만, 변동량이 크다고 짐작할 연구는 확인하지 못했다.
거꾸로 흡연율 통계가 보고를 믿기 어렵다는 연구는 있다. 한국이 OECD에 제출하는 흡연율은 OECD 평균과 비슷한 수치지만, 흡연율 조사 방법이 문제다. 흡연율은 소변‧혈액 검사가 아니라 질문조사인데, 도덕 관념 때문인지 여성들이 흡연율 조사에 솔직하게 답변하지 않는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선 7.1%였던 여성 흡연율이 소변 검사 후엔 18.2%로 급증했다(김춘배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Does South Korea have hidden female smokers: discrepancies in smoking rates between self-reports and urinary cotinine level, BMC Women's Health 2014-12.).
흡연율 하락만 믿고 적당선에서 가격인상을 하면, 정책에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 3. 가장 좋은 방법: 한 번에 올리고, 이어서 꾸준히 인상
2015년 담뱃세 인상으로 소비억제를 하긴 했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소비억제와 사회복리 증진이란 목표를 달성하려면, 담뱃세수 희생 없이 어렵다.
최근 1~2년 사이 언론을 타고 보도되는 연구들은 크게 두 가지 가격 인상 방법을 제시한다.
4500원에서 6000원 인상(33.3% 인상) 또는 1만원까지 인상(122% 인상) 등 ‘한 번에 인상’안.
물가 또는 정액으로 ‘매년 조금씩 인상’안.
한 번에 인상안 중 33% 인상(6000원 인상)은 소비억제에 큰 효과를 주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인당 명목소득이 3423만원인데 2024년엔 5012만원으로 46.4% 정도 증가했다.
122% 인상(1만원 인상)은 33%보다 낫겠지만, 그 역시 억제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이유는 2026년에 담뱃값을 1만원으로 올려도 최저임금소득자가 한 시간 일해서 한 갑 필 수 있는 구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시간당 최저임금은 2015년 5580원(담뱃값을 인상한 해)에서 2026년 10320원으로 올랐다.
‘한 번에 인상’은 어느 정도면 적당할까.
2014년 6월 조세재정연구원은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를 담뱃값을 2500원에서 8382원까지 올릴 경우 담배소비가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추정했다.
위 그래프는 가격대비 소비감소량 그래프인데, 4000원대부터 소비량이 크게 줄기 시작해 8000원에서 감소세가 완화되는데(인상률 60~220%), 8382원에서 담배소비량이 거의 0에 가까워진다.
쉽게 말하면 가격을 한 세 배 정도 인상하면, 80%까지 소비를 깎을 수 있던 셈이다.
하지만, 단발성 인상은 그 충격력이 오래 가지 않는다. 2015년 담뱃세 80% 인상에 따른 가격 충격효과도 4개월에 불과했다.
보건사회연구원 ‘개인의 행태 변화 유도를 위한 현금지원정책의 효과와 시사점’ 보고서 분석에 따르면, 가격상승으로 인한 소비감소세는 4개월 정도 지속되는 데 그쳤고, 상당수는 사재기에 의한 효과였다. 가격인상으로 인한 충격(연간 평균 –8.7억갑 정도)은 그 이후에도 평형상태로 유지됐지만, 추가적인 소비감소효과는 없었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는 저감효과를 지속 발생시키려면, 물가를 연동해서 담뱃값을 매년 꾸준히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보고했는데, 시간이 흐르면, 소득은 올라가고, 그러면 담배의 실질가격이 내려가기에 담뱃값 인상 시점과 교환비를 맞추려면 물가연동인상이 필요하다는 이유다.
다만, 물가연동만 쓸 경우 가격에 내성이 생겨 담배소비 억제효과는 제한적이고, 담배회사와 정부의 잇속만 챙기게 될 수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담배는 가격을 올려도 소비자들이 좀처럼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 가격비탄력성 품목이고, 이 와중에 한국의 물가인상률 3%는 딱 가격내성을 만들기 좋은 수치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효과는 담뱃값을 ‘한 번에 왕창 올리고’, ‘매년 꾸준히 올리는’ 방법을 같이 쓰는 것이다.
2014년 6월 조세재정연구원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 103페이지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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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지수 등과 연계한 담배가격 및 담배과세의 지속적 인상은 담배의 실질가격 및 실효세율의 감소문제를 해결하고, 종량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흡연량 저감을 도모할 수 있는 바람직한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담배가격이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고려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속적 인상방식이 흡연량 저감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우려가 있다.’ |
한 번에 올리고, 이어서 꾸준히 인상하는 방법이 현 시점에서 적확한 이유는 한국은 담뱃값이 매우 저렴한 국가에 속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국가·도시 비교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서 제공하는 국가별 말보로 가격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3달러 수준, OECD 국가들은 8~9달러 정도다.
한 번에 올리고, 이어서 꾸준히 인상하면, 한 시간 일해서 한 갑 필 수 있는 현 가격구조를 깰 수 있고, 보건사회연구소 보고서에서 ‘단발 인상의 충격효과는 4개월뿐’이라고 지적한 소비 저감효과 역시 계속 유지, 지속시킬 수 있다.
때문에 2014년 6월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에서는 물가연동제만 쓰는 방법(시나리오 2)과 가격 인상 후 물가연동제를 같이 쓰는 방법(시나리오 2-1)을 비교했는데, 그래프를 보면 두 시나리오 결과는 매우 명확하다.

시나리오 2의 경우 담배소비를 지속적으로 줄이긴 했다. 그러나 그 폭이 작고, 담뱃세수도 동시에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하지만, 담뱃세수가 늘어났다는 말은 담배회사 이익도 늘어났다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2-1은 담배소비가 급감했다. 대신 정부 담뱃세수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소비저감에 어떤 방법이 더 적확한지는 상식으로도 판단 가능하다.
◇ 4. 결론 : 달콤한 명약은 없다
담배 가격 정책은 단맛과 쓴맛이라는 양면을 가지고 있다.
단맛을 찾을수록 정부와 담배회사는 돈을 벌겠지만, 국민건강과 정부 건강보험 재정이 취약해질 것이다.
반대로 쓴맛을 삼키면, 정부와 담배회사의 이익은 줄겠지만, 국민건강과 정부 건강보험 재정이 더 나아질 것이다.
2015년 담뱃세 인상은 건강마저 탐욕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람들이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탐욕스러운 결과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정책당국이 담뱃세를 올리고자 한다면, 이 질문을 반드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담뱃세 인상, 국민건강 때문인가, 돈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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