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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이슈분석] 전세금 돌려달라는데 은행은 ‘NO’…집주인·세입자 멘붕

대출 문턱 높아지며 전세금 반환 늦어져 갈등 증폭

서울에 거주 중인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계약 만기를 앞두고도 새집을 구하지 못했다. 전세 만기일이 다가왔지만 집주인은 “보증금 돌려줄 여력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대출을 받아 돌려주겠다던 집주인은 최근 은행으로부터 “전세퇴거자금대출은 중단됐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되려 하소연이다. 박 씨는 “이럴 거면 처음부터 월세 살았지, 전세로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세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빠르게 월세가 대체하고 있다. [편집자주]

 

(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정부가 6월 27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전세퇴거자금대출이 사실상 중단되거나 극도로 까다로운 조건에서 제한적으로 취급되고 있다.

 

기존에는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1억원 이상 대출이 비교적 유연하게 가능했다면, 규제 발표 이후에는 1억원 이하로 제한되거나 역전세 특례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만 일부 은행에서 제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뒤늦게 “6월 27일까지 전세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1억원 초과 대출이 가능하다”고 밝히며 혼란 진화에 나섰으나 여기에 ‘임대인의 자력 보증금 반환 불가’라는 추가 조건이 붙었다.

 

문제는 자력 불가 여부를 누가,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 은행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대부분 전세퇴거자금대출을 중단했고, BNK부산은행과 우리은행이 일부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제한적으로 대출을 재개했지만, 그 마저도 복잡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 월세로 옮겨가는 시장의 ‘무게추’

 

금융당국은 6·27 대출규제가 가계부채 급증과 부동산 불안정성을 잡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대출을 받지 못해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임대인과 제때 돈을 못 받는 세입자 모두 ‘멘붕’ 상태에 빠져 있어 정부 의도와 달리 서민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세퇴거자금대출 신청 시) ‘자력 반환 불가’를 입증하라고 하지만 은행이 판단할 기준도, 법적 권한도 없다. 대출 수요는 많은데 실행 가능한 케이스는 드물어서 고객과 마찰도 생긴다”며 “직원들 입장에서도 설명할 근거가 없어 난감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전세의 월세화’ 현상에 더욱 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미 전세금 반환이 어려워진 다수 집주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반전세 또는 월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95㎡ 이하 기준)는 6월 기준 126.6였다. 올해 상반기 동안 5.1% 상승한 수치로, 해당 기간 아파트 매매 지수(3.9%)와 전세 지수(1.1%)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결과적으로 전세는 자금 여력이 있는 일부 집주인만 감당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세입자 보증금으로 새집을 사고, 보증금만으로도 부동산 자산을 불릴 수 있었으나 역전세와 대출 규제가 겹치면서 이 같은 방식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전세의 월세화는 단순한 시장 흐름이 아닌,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달 ‘2025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시장 진단 및 내수경기 활성화 전략 세미나’에서 “월세화 흐름이 더욱 강화되는 추세”라며 “월세·전세는 실제 수요가 하방을 지지해 한 번 오른 가격은 하락이 어렵다. 최근 월세 상승폭이 확대되며 체감 월세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규제에 낀 임대인과 세입자 “누가 책임지나”

 

금융당국은 무리한 대출로 자산 시장 불안이 커졌다고 설명하지만, 그 무게는 고스란히 서민이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입자는 돌려받지 못한 전세금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받고 집주인은 대출을 받지 못해 세입자와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수도권 및 규제지역 유주택자와 다주택자는 사실상 전세퇴거자금대출이 원천 봉쇄됐고,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의 신규 전세계약은 더욱 힘들어졌다. 집주인이 실거주 조건을 내걸거나 아예 월세로 전환하려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금융사들도 대출 심사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며 “당국의 정책 방향이 명확하게 정립되고 시장이 안정돼야 전세 대출도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제도의 근본적인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출 규제와 시장 구조 변화가 단기적 혼란을 넘어 제도의 존재 이유 자체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시장의 대응에 따라 주택 시장의 구조와 전세의 역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전세는 오랜 기간 한국 주거 문화의 대표적 형태였지만 최근 규제와 시장 변화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균열의 진동이 가장 먼저, 가장 약한 고리로 전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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