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진민경 기자)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금융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커지고 환율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관련 초안을 공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핵심 쟁점은 단순히 ‘도입할까, 말까’가 아니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발행하고, 어떤 장치로 안정성을 보장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잘못된 구조 설계는 금융 안정과 외환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 금융권이 신중한 줄타기를 이어가는 이유다.
◇ 정부 vs 한은, 혁신과 안정의 줄다리기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원화 등 법정화폐와 1대 1로 연동돼 변동성을 최소화한 가상자산이다.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약 2300억 달러로 추산되며, 대부분이 달러 기반이다.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두고 정부와 한국은행의 시각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정부는 금융 혁신의 기회로 보고 제도화를 서두르는 반면, 한은은 통화 질서와 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에 속도를 내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잘 설계하고 운영한다면 한국 경제에 새로운 혁신의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황건일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지난 9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전례 없는 민간 화폐 창출 행위로 외환 유출 위험이 크다. 과거 달러 부족에 따른 불안이 반복되면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보되 단계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와 한은 모두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접근법에서는 온도차를 보인 셈이다. 정부가 혁신의 속도를 중시한다면, 한은은 통화 안정과 외환 리스크 관리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환율 변수로 급부상
이처럼 국내 논의가 제도 설계 시작 단계라면, 해외에서는 이미 스테이블코인이 금융·환율 환경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 7월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시행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자가 발행 자산을 국채와 달러 예금으로 제한,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 패권 강화 수단으로 삼았다.
국내에서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자칫 원화 약세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5월 19일 ‘2025 트럼프 정부의 디지털자산 정책 변화와 영향’ 발표를 통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게 되면 원·달러 환율에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발행량이 급증할 경우 환율 상승과 외국인 자금 유출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달러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구조가 심화 될수록 전 세계 결제 시스템에서 ‘디지털 달러화’가 가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국내에서는 환율 불안 요인을 완화하고 통화주권을 지키기 위한 대안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토스의 싱크탱크인 토스인사이트는 지난 8월 26일 발간한 보고서 ‘스테이블코인: 새로운 금융 인프라의 부상’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과 결제 인프라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며, 자국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도입이 금융 효율성과 디지털 결제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특히 보고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 결제 환경에서 새로운 금융 인프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제도적 정비와 발행 구조의 투명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은행·빅테크·거래소, 발행 주체 놓고 각축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이제 관심은 누가 이를 발행하고 운영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최근 네이버파이낸셜과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합병 추진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 주도권 경쟁이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각 주체별 특성을 살펴보면 은행은 신뢰와 자금 관리 능력이 강점이지만, 디지털 결제 확산 속도는 빅테크에 뒤처진다. 네이버·카카오·토스 등 빅테크는 결제 및 유통망을 갖춰 시장 확장성이 크지만 자사 플랫폼 중심으로 거래가 제한되는 ‘폐쇄적 생태계’ 우려가 따른다.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한 가운데 빅테크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주도권 잡기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은행권도 대응에 나섰다. 신한, 농협, 케이뱅크 등이 참여하는 공동 발행 연구와 해외 송금 실증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토스, 카카오페이도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기술 검증과 사업 모델 점검에 나선 상태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도 움직이고 있다. 빗썸이 토스 운영사인 비바리퍼블리카와 협력해 스테이블코인 사업 모델을 검토하고 있고, 코인원과 고팍스 등도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실증에 참여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 속도보다 정교함…한국형 설계가 관건
이처럼 민간 부문에서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기반은 아직 미흡한 상태인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도화를 위한 입법 논의는 초안 단계로, 국회에는 여야 의원 6명이 각각 발의한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이다.
해외 주요국들의 경우 스테이블코인 관련 제도화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4년부터 시행된 ‘암호자산시장규제(MiCA)’를 통해 인가, 보고, 준비금 규정을 명문화했고 해당 규정을 올해 6월부터 시행했다. 홍콩은 지난 5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라이선스 법안을 통과시켰고 8월부터 발행 요건, 준비금, 환매 규정을 법제화했다.
일본은 2023년 시행된 지급결제법 개정안에 따라 자금이체 라이선스를 취득한 은행과 신탁은행 및 송금 대행사만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각국이 저마다의 제도적 틀을 확립해 가는 가운데, 한국은 은행 중심 모델과 민간 참여를 병행한 형태태를 검토 중이다. 은행에 발행을 맡기고 민간이 결제·유통을 담당하는 방식이다.
이런 논의는 국회로도 이어지고 있다. 제도적 방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여야 모두 제도화의 필요성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상태인데, 특히 ‘속도보다 정교한 설계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받는 중이다.
이달 2일 국회에서 개최된 ‘스테이블코인 거버넌스 모색’ 세미나에서는 정부, 학계, 업계가 한목소리로 “속도보다 설계의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날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핵심은 투자자 보호와 건전한 혁신, 그리고 글로벌 정합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제도 설계”라고 언급했다. 같은 당 안도걸 의원은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디지털 금융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며 “통화·외환·불법거래 리스크를 충분히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금융 혁신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제도화의 성패는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에 달려 있다. 누가 발행할 것인가, 그리고 그 주체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곳인가가 중요하다. 이외 준비금의 투명성, 감독체계의 정합성 등이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을 좌우 할 주요 변수다.
안정적 설계 위에서만 혁신이 지속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한국형 디지털 금융 생태계의 경쟁력이 완성된다. 이달 발표될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초안이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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