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세상_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 꽃빛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시인] 이 기 철
1943년 경남 출생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영남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으로 『전쟁과 평화』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가장 따뜻한 책』 『스무살에게』 『정오의 순례』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평론집 『문예창작』 『인간주의 비평을 위하여』
소설집 『리다에서 만난 사람』 등
[詩 감상] 양 현 근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앉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웃음꽃이 번지는
그런 욕심없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시기와 질투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환한 꽃말이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남부럽지 않고
낮은 자리에 서 있어도 당당할 수 있는
마음 넉넉한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온 마을에 살구꽃 같은 예쁜 사연들이 앞 다퉈 피어나
함께 가는 새벽길을 환하게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낭송가] 조 정 숙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청마유치환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김영랑 전국시낭송대회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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