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연동제 내에서 재산세 금액 자체는 매년 소폭 조정되겠으나, 실질적으로는 동결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집값이 크게 오르는 지역, 집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큰 혜택이 주어진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금처럼 집값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재산세를 동결하면, 정부의 재산세 수입은 줄어들게 된다.
시세를 연동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재산세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유주택자에게는 큰 혜택이 되겠지만, 재산세 동결은 부동산 유주택자의 양극화를 부추긴다. 무주택자에게는 더욱 심한 가난의 낙인을 찍는다.
재산세 동결의 가장 큰 폐해는 집값 상승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택 신규 취득 시 첫 재산세율을 0.1%, 주택 보유 후 재산세 변동폭을 시세연동제에서 물가연동제로 바꾸고, 물가인상률이 매년 2%로 고정됐다고 가정해보자.
이 상황에서 A와 B는 10억원짜리 주택을 새로 샀다. A와 B의 첫 재산세액은 100만원이 된다.
그리고 1년 후 A의 집은 가격이 오르지 않았다. 반면, B는 1년 사이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집값이 올랐다.
A가 내는 재산세는 1년 후에도 100만원 그대로겠지만, B는 집값이 열 배 뛰었어도 102만원만 내면 된다. 첫 취득 시 재산세율은 집값의 0.1%지만, 취득 후 재산세율은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물가인상율(2%)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를 간단히 산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재산세 최대상한 (n=보유연수)
= 집값*0.1*(물가상승률(2%)^n)
= 집값*(0.102^n)
다시 1년 후, A의 집값이 그대로를 유지한다면 재산세는 100만원, B의 집값은 100억원에서 10배가 뛴 1000억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B의 재산세는 104만2000원만 내면 된다.
10억 짜리 주택을 가진 사람은 100만원, 1000억원짜리 주택을 가진 사람은 104만2000만원만 재산세로 내는 것이다.
◇ 당장 집을 사, 멍청아
현명한 소비자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 분명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고, 담보 잡히더라도 집값 급등 지역의 집을 최대한 빨리 사야 한다.
핵심은 ‘집값 시세에 맞춰 재산세를 내는 것은 집을 신규 취득할 때 단 한 번’이라는 것이다. 즉 빨리 사면 살수록 저가매수에 따른 차익과 시세상승에 따른 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B가 10억원일 때 집을 사지 않고 100억원일 때 집을 샀다면, 재산세는 100만원이 아니라 1000억원이 된다. B가 1년 후 또 오판해서 집을 사지 않았다면 집값은 1000억원이 되고, 재산세는 1억원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만일 10억원일 때 집을 사면, 집값 차익 990억원과 재산세 차익 9900만원을 얻게 된다. 단기간에 막대한 돈을 투입할 수 있는 부자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폭등하는 집값을 주택을 공급해 막아보려 할 수는 있겠지만, 소용이 없다. 주택은 많이 짓고 싶어도 땅은 한정돼 있기에 공급할 수 있는 물량에는 한계가 있다. 이 집값 폭등의 경주에서 승자는 부자이며, 패배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게다가 정부는 이 패배자들을 복지로 도울 수조차 없다.
정부가 재산세를 물가연동제로 바꾸어 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부족한 재산세수를 뒷받침하는 것은 B는 집값이 1000억원이라도 재산세는 104만2000원 정도 밖에 더 내지 않는다. A는 집값은 10억원이라도 B와 거의 대등한 수준의 100만원을 재산세로 낸다.
집값 10억인 A가 열심히 돈 벌어 부족한 세수를 지탱하는 꼴이 된다.
◇ 재산세 동결, 서민을 위한 법인가
이것은 취재진의 탁상공론이 아니다. 실제 재산세를 동결해 집값폭등→지방재정붕괴→복지예산위축→양극화 심화→지방정부 파산위기까지 간 사례가 있다. 어느 가난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보다 두 배의 경제규모를 가진 미국 최고의 부자 지역 사례다.
익명을 요구한 지방세 전문가는 “재산세에서 조세형평이란 것은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크기에 맞춰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며 “일괄적으로 재산세 상한을 2% 안팎으로 제한하면, 집값이 안 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재산세 동결이 합법적 부자 보호지원금을 넘어 집값 폭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특정 지역의 집값이 크게 오르는 상황에서 재산세를 시세연동에서 물가연동을 바꾸는 것은 가난한 사람의 세금을 거둬서 부자 다주택자 계좌에 넣어주는 결과가 될 수 있다”라며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지방재정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는 집 없고 재산 없는 사람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정세은 교수는 재산세 동결이란 아이디어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핵심은 재산세 동결이 우리 상황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정세은 교수) 재산세 동결을 고려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서울과 수도권까지 포함해 집값 변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인구가 줄고, 집 살 사람도 줄어서, 주택 시장이 장기간 가라앉게 되고, 그러면 부자라고 해도 집 여러 채를 보유할 마음을 잃게 된다. 이 경우에는 물가연동제로 바꾸어 세금 거두는 데 들어가는 행정비용과 납세협력비용을 줄여볼 수 있다.”
“(정세은 교수) 하지만 현재의 한국은 수도권과 세종시 등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재산세 시세연동제를 폐지하면, 세금으로 부자들을 지원하고, 부자들은 그렇게 생긴 목돈으로 주택을 사들이고, 집값은 더 올라 서민들에게서 집 살 기회를 빼앗는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다.”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실 측은 재산세 동결법안의 취지를 오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류성걸 의원실) 재산세 동결에 대해 일부 우려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부동산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공시가격을 올렸다. 사실상 증세다. 지금 집값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어렵사리 수도권에서 집을 마련한 젊은 부부, 또는 늦깎이 내집마련을 한 중산층들의 부담이 크다. 그들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재산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의원님께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취재팀) “왜 물가연동제를 택했나.”
“(류성걸 의원실) 재산세를 인하하기 위해 어떤 기준이 필요했다. 하지만 임의로 기준을 만들 수는 없었고, 공식적인 지표를 사용해야 했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물가상승률을 선택한 것이다. 현실적으로 재정당국의 입장도 있고,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재산세 상한을 긋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이는 입법과정에서 조율될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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