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세를 동결하면, 집값 급등지역의 집을 먼저 산 사람이 유리하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집값 급등지역으로 몰리고, 급등지역의 집값은 폭등한다. 결과적으로 돈 있는 유주택자는 승리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무주택자가 되고, 실패자가 된다. 재산세 동결로 지방재정을 잃고, 교육을 잃고, 아이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있다. 이것은 과대망상자의 헛소리가 아니다. 미국 최대의 부자 주, 캘리포니아의 현실이다. 그리고 국내 여론에서는 캘리포니아를 배우자며 재산세 동결,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캘리포니아 보유세 반란’. ‘재산세 폭탄 막은 캘리포니아 주민들.’
최근 공시가격 인상으로 일부 수도권 주민들의 재산세 부담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11월 공시가격 6억원 미만 1주택자의 재산세를 0.05%p 인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시가격 6억원 미만 주택은 전체 주택의 95.5%, 서울 주택의 80.0% 정도인데, 결국 전체 주택의 4.5%, 서울 주택의 20.0% 고가 주택 구간에 대해서만 공시가격 상승에 따른 재산세 증가부담을 주겠다는 의도다.
국토교통부 모의계산에 따르면, 공시가격 6억원은 시세가 8억7000만원 주택에 해당 한다.
그러자 여론에서는 1978년 재산세를 동결한 캘리포니아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 부동산 공시가격 조작 스캔들
캘리포니아는 1978년 이후 역사적인 재산세 동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50개 주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약 4000만명, 땅 크기는 한국의 4배 이상이다.
한국보다 면적은 4배, 경제규모는 2배 수준의 미국 최고의 부자지역이며, 그 자체로도 전세계 5위권 국가급 경제를 가지고 있다.
실제 캘리포니아 주의 2018년 기준 지역총생산은 3조180억 달러, 1인당 GDP는 7만4205달러인데, 지난해 한국의 총 생산이 1조6000억달러, 1인당 GDP는 3만1755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캘리포니아는 수십년간 재정위기와 교육격차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60년 이전 캘리포니아 부동산 경제는 최대 이슈 중 하나는 공시가격 조작이었다.
우리로 치면 공사가격을 책정하는 미국판 부동산 감정평가사들이 농간을 부린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최고의 부촌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신규 인원의 유입으로 부동산 가격이 널뛰듯 뛰었다.
감정평가사들은 부자 지역의 감정가는 낮게, 서민 지역의 감정가는 높게 책정했다. 이들 감정평가사들은 캘리포니아 부자들의 친인척이나 그 지인들이었다.
공시가격이 낮은 만큼 부자들은 재산세가 줄어 이익을 보았고, 상대적으로 서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부자들은 그 대가로 캘리포니아 정계에 정치자금을 댔다.
공시가격 스캔들이 터지자 캘리포니아는 1967년 AB 80법(Petris-Knox)을 제정했다. 공시가격을 감정평가사 멋대로 정하지 못하게 하고, 시세와 맞추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재산세 증가로 집 가진 주민들의 불만은 들끓기 시작했다. 그 불만은 바로 폭발하지는 않았다.
때마침 전 미국을 들끓게 한 교육격차 논란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 ‘8:1’ 빈부의 신분격차
AB 80법안 통과 후 캘리포니아에서는 교육 양극화 논란에 휘말렸다.
미국은 주 정부나 국가 단위로 재정을 책정해 교육지출을 하지 않고, 각 동네 살림에 맞춰 개별적으로 교육비를 지출한다. 교육에 대해서 별도 행정구를 두고 있는데, 이를 교육구(School District)라고 한다.
부자 동네는 고급 교육을 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동네는 최소한의 교육을 제공하는 데도 급급했다.
당시 캘리포니아 주 정부에 제출된 조사에 따르면, 부자동네의 1인당 교육지출비는 2200달러, 가난한 동네 교육지출비는 270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위헌적 조치라는 비판이 나왔고,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의 예산을 섞어서 고르게 배분해야 한다는 소송이 나왔다. 교육행정분야에서 유명한 세라노 사건(Serrano v. Priest)이었다.
갑론을박이 있었다. ‘교육은 각자 가정의 능력에 맞춘 것이고, 능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다’, ‘아니다. 태생에 따른 빈부의 굴레를 아이들에게 씌워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이 엇갈렸다.
1971년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결단을 내렸다. 동네별 빈부격차로 아이들의 미래, 교육을 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라노 판결로 부자와 가난한 지역의 격차가 줄어들게 될 것이란 희망적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희망이었다. 캘리포니아 사건이 퍼지길 우려했던 미국 연방대법원 측이 제동을 걸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드리퀘즈 판결(San Antonio v. Rodriguez)을 통해 세라노 판결을 뒤집었다. 부자 동네는 부자 나름대로, 가난한 동네는 빈자 나름대로 알아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행 체계는 합법이라는 것이었다.
로드리퀘즈 판결에도 부자와 빈자 간 교육양극화 문제는 너무 심각했다. 각 주 정부들은 재량껏 가난한 동네에 대한 교육지출 지원금을 늘렸다. 보수세가 강한 캘리포니아 주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에서는 당시 캘리포니아 고등교육 지출 확대를 방만한 복지, 증세 없는 복지라고 비판하지만, 실제로 교육 문제는 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으며 캘리포니아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로서는 돈이 절실했다. 그런데 언론이 판을 뒤집기 시작했다. 재산세 동결 요구였다.
◇ 더 낮은 세금, 더 낮은 집값
‘은퇴한 노년층들이 이제 돈벌이도 못 하는데 어떻게 세금을 내느냐.’
1970년 들어 캘리포니아의 인구증가율은 미국 전체 인구증가율보다 1.5% 정도 높았다. 항공우주 산업과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한 산업 호재 덕분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미국 중산층의 전형이었다.
일은 도심에서, 주거는 교외에서. 주 정부는 땅값이 저렴한 곳을 중심으로 주택개발을 촉진했다. 그러나 이자율이 오르면서 캘리포니아 경제성장과 주택개발 흐름은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당시 강화된 환경 규제 역시 공사비용을 늘렸다.
캘리포니아가 1967년 AB 80법 통과 이후 재산세 관련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1968년부터 저소득 노년층을 명분으로 보유세(재산세) 면제 안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면제점이 750달러였지만, 1972년 SB 90법안에 다다르면, 면제점은 1750달러까지 올라갔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수장은 훗날 미국 40대 대통령이 되는 로널드 윌슨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1967. 1~1975. 1)였고, 그는 재산세 증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재산세 감면 특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재산세 동결안을 만드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지역 신문들은 한목소리로 ‘은퇴한 서민들, 재산세로 다 죽는다’라는 내용의 보도를 내면서 이를 지원했다.
하워드 자비스와 폴 갠 등 부유층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주민발의(Proposition) 형식으로 재산세 동결법안(Proposition 13)을 내놓았다.
프로포지션 13은 주택을 취득한 시점에서는 주택가격에 비례해서 재산세(주택가격의 약 1%)를 책정하되, 그 다음부터는 물가상승 수준만 반영해 재산세를 동결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연간 조정 폭 역시 재산세의 약 1% 미만 수준(캘리포니아 물가지수, GNP 가격 디플레이터)으로 정했다.
1978년 주민투표가 진행됐고, 캘리포니아 재산세 동결법안은 가결됐다.
이는 1967년 페트리스 녹스 법안에 대한 부유층의 완전한 승리였고, 이 승리는 레이건 주지사가 1980년 미국 제40대 대선에서 승리하는 발판 중 하나가 됐다.
◇ 미국 최고 부자동네, 이름표는 ‘재정 파탄’
프로포지션 13 등장 후 재산세 동결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사실이 됐다.
집값상승→빈부격차 심화→지방재정 붕괴→재정 파탄→다시 빈부격차 심화까지.
프로포지션 13의 원리는 집을 산 시점으로 재산세 수준을 묶어두는 것인데 캘리포니아는 집값 상승기에 있었다.
나중에 집값이 잔뜩 오르고 나서 사면, 그 시점의 시세가에 재산세를 계속 내야 하기에 먼저 집을 산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너도나도 집을 사기 위한 추격매수가 벌어졌고, 집값은 더 올랐다.
집을 파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은 집을 내놓지 않았다. 과거 1억원일 때 샀던 집이 10억원(재산세 100만원)이 됐다. 기쁜 마음으로 집을 팔고 지금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사려고 했더니 가격은 10억원이었고, 재산세는 1000만원을 내야 했다.
프로포지션 13은 이사의 자유를 묶어 버린 것이다.
프로포지션 60, 프로포지션 90가 나와 새 집으로 이사할 경우 단, 한 차례만 기존 재산세를 승계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제한이 컸다.
적용되는 카운티도 적었고, 1회성 특례, 현재 사는 집의 시세와 같은 가격의 집으로 이사할 때 등등이 문제로 꼽혔다.
부유층은 프로포지션 13에 만족해했다. 아무리 집값이 올라도 재산세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 지방재정, 그 중에서도 교육지출의 불균등이 심각했다.
캘리포니아는 부자들이 많이 살았고, 주 재정에서 재산세 비중은 컸다. 재산세 동결은 캘리포니아 주 정부로 하여금 채권 발행을 강요했고, 실제로도 막대한 채권을 발행했다.
그렇지만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기업 유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조세특례를 늘렸고,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해 교육지출을 늘렸다. 교육지출 상당수는 선거 후원금을 낼 수 있는 부자 동네로 흘러 들어갔다.
주 정부의 각 교육구에 대한 지원금을 늘어났지만, 교육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늘린 지원금은 마치 족쇄처럼 풀어낼 수 없었다.
비틀대던 캘리포니아 주는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받았다. 그러면서 2009년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1978년부터 지속된 재산세 동결안 폐지(프로포지션 13)에 대한 논란이 들끓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2003. 11 ~ 2011. 11)는 그러한 논의에 함께 춤춰줄 생각이 없었고, 자동차세 감면으로 대응했다.
이후 캘리포니아 재정은 더욱 악화됐고, 집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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