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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체크] 국세청, 패소 판결문 이유없이 숨겼다?…탈세 시그널 우려

판결문 비공개 이유 없지 않다
법제미비‧예외적 판결‧납세자 특정 가능성 등
법제도 느리다…현실변화 너무 빨라
실질과세원칙 있지만 조세법률주의 반박
국세청, 감사원 지적 겸허히 수용…하반기 규정 정비할 것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국세청이 최근 1심에서 국가 패소 사건 판결문 일부를 이유 없이 숨겼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다만, 국세청 실무자 일부는 무조건적인 판결문 공개가 오히려 혼동을 줄 수 있다며 이유 없이 숨겼다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감사원이 지난달 공개한 ‘국세불복제도 운영실태’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국세청은 2018~2020년 국세불복 행정소송 관련 법원 판결문 6761건 가운데 14.4%(974건)를 비공개하고 내부 인트라넷에서만 공유했다.

 

비공개 판결문 중 국가 패소사건은 385건, 국가 승소사건은 589건이었다. 전체 패소 사건의 25.2%, 전체 승소사건 가운데 11.3%를 비공개했다.

 

납세자는 세무조사 등으로 징수된 세금 가운데 위법한 세금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돌려받을 수 있다.

 

국세청 규정에 따르면, 국세청은 세금 관련된 판결문을 승패와 관계없이 국세법령정보시스템 사이트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은 공개하지만, 일부 판결의 경우 소송실무진 및 소속 지방기관의 판단에 따라 공개하지 않는다.

 

감사원은 납세자 권익보호 측면에서 세금소송 판결문은 기본 공개가 원칙이고, 비공개를 하더라고 기준없이 자의적으로 하는 것은 안 된다며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특히 국가 패소 사건 중 비공개 판결문 100건을 재검토한 결과 특별한 비공개 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국세청 본부는 감사원 지적을 수용해 어떤 판결문을 비공개로 할지 세부지침을 만들어 지방국세청 등에 내려보냈다.

 

 

◇ 탈세 신호 줄 수 없지 않나

 

그런데 국세청 지침 내용을 보면 무엇을 비공개 하려는 지 알기 어렵다.

 

지침 내용은 ▲공개 실익이 없는 경우 ▲사회적 파장이 우려되는 경우 ▲기타 국세행정과 납세자의 권리와 의무이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는 경우 등이다. 내용이 주관적이고, 구체적이지도 않다.

 

국세청 일선에서는 모호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한 세무공무원은 “사안이 잘 알려져 있어 판결문을 봤을 때 누가 소송을 했는지 딱 알 수 있는 경우 승패를 떠나 판결문을 공개하기 어렵다”며 “국세청은 어떤 납세자를 특정해서 정보를 공개 못하도록 법으로 못박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른 세무공무원은 ‘사회적 파장이 우려되는 경우’에 대해 복잡한 속사정을 말한다.

 

“법의 빈틈을 타서 세금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법을 바꾸려면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기에 1년이 걸릴 수도, 2년이 걸릴 수도,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런데 법 바꾸기 전에 판결문을 공개해버리면 국세청이 탈세하라고 신호를 주는 셈이다. 국세청이 그럴 수는 없지 않나.”

 

반면 감사원은 세금 소송 걸과가 기존 세법 해석이 변경되거나 조세법령이 개정될 수도 있어 납세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데 중요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세무공무원은 오판의 우려를 전달했다.

“납세자가 1심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승소했거나 통상적이지 않은 편법적 방법을 썼거나, 논란이 많은 판결의 경우 거꾸로 납세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세무공무원들의 주장은 한 가지 모순을 상상케 한다.

 

법을 지키는 공무원이 부분적으로 사법(司法)을 믿기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 당신은 얼마나 법을 믿습니까?

 

세금의 대원칙은 ‘법 없는 세금은 없고, 법은 의회의 동의로 만든다’다.

 

이 대원칙은 현실의 도전을 받고 있다.

 

법은 어떠한 법이든 옛날에 만든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이 난 이후에야 법을 만들게 되고, 특히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법이 느리게 느껴진다.

 

“법은 늘 옛날에 있었던 거를 가지고 현재를 판단하는 거 잖아요. 현장에서는 법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자꾸 말하지만, 법 하나 만드려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리나요. 답답해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행정편의적으로 법을 자꾸 바꾸는 것은 좋지 않고, 법은 예단을 해서는 안 되기에 앞서 나가면 안 되는 거죠(법조 관계자).”

 

법해석론으로 들어가면 더욱 복잡한 문제에 부딪힌다.

 

법해석에는 법 조문을 중시하는 기술주의, 법을 만든 입법자의 의도를 살펴야 한다는 의도주의, 법이 보호 또는 보장하고자 하는 전반적이고 객관적인 목적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적주의 해석론이 있다.

 

그러나 기술주의는 단어 하나로 특정한 것을 딱 꼬집기 어렵다는 언어의 한계, 의도주의는 입법자가 예상치 못한 상황 또는 무수한 유사 상황에 대한 입법자 주관의 한계, 목적주의는 얼핏 의도주의를 보완하는 듯 하지만, 상황과 맥락에 따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목적범위의 한계 등을 가진다.

 

이러한 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법에서는 실질과세 원칙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에서도 이를 두고 판단이 엇갈린다.

 

헌법재판소 89헌마38 결정은 세금을 거둬야 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해보이지만 법률이 미비해 못 거둘 경우 법에 따라 세금을 거둬서는 안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반면 대법원 2008두849 판결은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고, 법 형식이 좀 안 맞아도 이 정도면 거둬야 할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면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말한다. 단, 법 안정성이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다.

 

▲변화에 느린 법제도‧사법문화 ▲이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법해석상 모호성….

 

이러한 상황에서 세무공무원들의 선택지는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본분은 누구보다 법의 빈틈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 문제가 구체적으로 이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규정없는 행정이란 감사원 지적을 겸허히 수용할 것”이라며 “판결문 비공개 관련 지침은 이미 각 지방국세청에 내려보냈고, 지침을 좀 더 가다듬어 올해 하반기에 국세청 소송사무처리규정(훈령) 개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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