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을 허물다_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 평과 까치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려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춸산과 청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시인] 공 광 규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6년 ≪동서문학≫ 등단
1987년 《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시부문
시집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덩이』, 『담장을 허물다』,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등
[詩 감상] 양 현 근
담장은 곧 나와 타인을 구분 짓는 소유의 경계 지점이다.
그리고 나의 것에 대한 물리적인 보호수단으로 기능한다.
나와 타인의 사이에 높다란 담장을 쌓아놓고 자신만의 성을 쌓기에
바쁜 우리들의 모습을 보라.
날이 갈수록 담장 높이는 높아만 가고, 보다 튼튼한
보안시설을 설치하느라 바쁘다.
물리적인 담장 못지 않게 마음의 담장은 또 얼마나 높은가.
담장을 헐어내면 수만 평 숲이 내 안으로 들어오고
수 십 만평 산과 들이 나의 정원이 된다.
그 정원에 꿩이 날고, 개구리가 울고,
해와 달과 별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뜰 것인가.
[낭송가] 최 현 숙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한국시예술문화연구회장
공감시낭송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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