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맑음동두천 -13.7℃
  • 맑음강릉 -5.8℃
  • 맑음서울 -11.6℃
  • 맑음대전 -9.1℃
  • 맑음대구 -6.7℃
  • 맑음울산 -5.2℃
  • 광주 -4.9℃
  • 맑음부산 -2.7℃
  • 흐림고창 -7.2℃
  • 제주 1.7℃
  • 맑음강화 -11.6℃
  • 맑음보은 -9.0℃
  • 맑음금산 -8.4℃
  • 흐림강진군 -4.2℃
  • 맑음경주시 -6.3℃
  • -거제 -3.1℃
기상청 제공

문화

[詩가 있는 아침]이사

시인 나호열, 낭송 최경애, 영상 송성인

 

이사_나호열


강남 이 편한 세상에 그가 왔다
검은 제복 젊은 경비원이
수상한 출입자를 감시하는 정문을 지나
대리석 깔린 안마당에 좌정했다

 

몸이 반쪽으로 쪼개져도
죽지 않고 용케
당진 어느 마을 송두리째 뭉그러져 사라져도
용케 살아남았다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머리 쓰다듬어 주고
비바람 막아 주며 죽은 듯
삼백 년 벼락 맞고도 살아 있더니
이 편한 세상에
한 그루 정원수로 팔러 왔다


푸르기는 하나 완강한 철책에 둘러싸여
손길 닿지 않는 그만큼의 거리
저 불편한 세상과
이 편한 세상 사이에서
눈이 멀고
귀가 막힌 침묵의 우두커니


새 한 마리 깃들지 않은 이곳
집과 무덤 사이의 어디쯤이다


[시인] 나 호 열
1953년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1986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1991년 《시와시학》 중견시인상 수상
2004년 녹색 시인상 수상
저서로 『담쟁이 넝쿨은 무엇을 향하는가』
『집에 관한 명상 또는 길찾기』 『망각은 하얗다』
『아무도 부르지않는 노래』 『칼과 집』
『그리움의 저수지엔 물길이 없다』 『낙타에 관한 질문』 등 다수


[시감상] 양 현 근
호화로운 불빛으로 번쩍거리는 아파트 단지 안
오늘도 우두커니 손발이 묶인 채 우두커니 서있는
삼백년도 더 된 낙락장송을 본다
새 한 마리 깃들지 않는 무늬뿐인 나무로 연명하는 일이나
서른 몇 평 콘크리트 담벼락 안에서 미세먼지에 갇힌
우리들의 삶이나 다를 게 무어란 말인가
참된 생의 가치나 삶의 의미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낭송가] 최 경 애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계간 《힐링문화》 편집국장
cwn-tv "시와 함께하는 문학이야기" 진행자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