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 독립 선언서_민족 대표 33인
오등(吾等)은 자(慈)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여 인류 평등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로써 자손 만대에 고(誥)하여 민족 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 년 역사의 권위를 위하여 차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여 차를 포명함이며 민족의 항구 여일한 자유 발전을 위하여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 개조의 대기운(大機運)에 순응 병진하기 위하여 차를 제기함이니 시천(是天)의 명명(明命)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인류 공존 동생권(共存 同生權)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 하물(天下何物)이든지 차를 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 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여 유사 이래 누천 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겸제(箝制)의 고통을 당한 지 금(今)에 십 년을 과(過)한지라. 아(我) 생존권 박상(剝喪)됨은 무릇 기하(幾何)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며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 세계 문화의 대조류에 기여 보비(寄與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함이 무릇 기하뇨······.
1919년 3월 1일 조선 민족 대표(33인)
[시감상] 양 현 근
1919년 3월 1일, 손병희를 비롯한 천도교·기독교·불교의 지도적 인사로 구성된 민족 대표 33인은 서울 인사동의 태화관에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삼창을 하고 나서 경찰에 통고해 자진 체포된다. 또한, 탑골공원에서는 5천여 명의 시민·학생 들이 모여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뒤 시위에 나선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 시위는 대한민국 곳곳으로 번져나가며 여러 달 동안 이어진다. 이러한 독립운동은 일제의 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체 소기의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한다. 그러나 3·1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세계에 알린 의거로서,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시발점이 됨과 함께 우리나라의 근대 문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낭송가] 최 경 애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회원
계간 《힐링문화》 편집국장
cwn-tv "시와 함께하는 문학이야기" 진행자
[낭송가] 박 태 서
시마을 낭송작가협회 부회장
재능시낭송대회 은상
서울교통공사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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