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수)

  • 흐림동두천 -15.4℃
  • 맑음강릉 -7.0℃
  • 맑음서울 -12.1℃
  • 맑음대전 -10.0℃
  • 맑음대구 -7.2℃
  • 맑음울산 -6.5℃
  • 광주 -5.8℃
  • 맑음부산 -4.5℃
  • 흐림고창 -7.4℃
  • 제주 1.4℃
  • 맑음강화 -13.7℃
  • 흐림보은 -9.9℃
  • 흐림금산 -10.2℃
  • 흐림강진군 -4.5℃
  • 맑음경주시 -7.3℃
  • -거제 -3.8℃
기상청 제공

문화

[詩가 있는 아침]울어주는 꿈

 

울어주는 꿈 / 안태현

 

어디 같이 울어 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어디 다독여 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홀로 사색에 잠겨

속으로 맘껏 우는 빈방

 

창으로 봄의 꽃의 향기가

솔솔 들어온다

들어오는 향마저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두툼하고 봉긋한 목련이 웃고 있었다.

곧 방안으로 들어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애환의 그 이야기를

 

그냥 귓전을 맴돌다 가는

속절없는 이야기들

귀에 익지 않은 마음속에는

안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다

 

맵새의 울음이 찾아들고

비루(悲淚)를 쏟아 내는 마음속

지나가는 바람이 싣고 간다

 

그 눈물은 흐르다 못해 타는 가슴이 되어

뭇 사물 위에 이슬이 되고

메어 달린 윤슬은 빛 받아 떨군다

 

덩달아 우는 참새들의 무리와 함께

토해내는 생채기로

드넓은 세상 밖으로 흩어진다

 

거기에 흐르는 기억 속

내(淶)의 고요 흐름이 우뚝이 서 있었다

온갖 것을 품고는...

 

[시인] 안태현

수원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회원
대한문인협회 경기지회 정회원

 

[시감상] 박영애

바쁜 현대인들의 삶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겉으로는 화려한 삶 같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한다.

누군가 진심으로 나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일 것이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마음으로 다가가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낭송가] 박영애

충북 보은군 거주

대한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부이사장

대한문인협회 정회원

(현) 시인, 시낭송가, MC

(현) 대한창작문예대학 시창작과 교수

(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현) 대한문인협회 금주의 시 선정위원장

(현) 시낭송 교육 지도교수

(현) 대한시낭송가협회 회장

(현) 문화예술 종합방송 아트TV '명인 명시를 찾아서' MC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보름달과 떡볶이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나는 아직도 하늘보다 땅을 먼저 떠올린다. 살던 마을의 흙길, 그 흙냄새, 그리고 흙이 묻은 엄마의 손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하교 길에는 늘 엄마의 등이 있었다. 남의 밭에서 품앗이로 파를 캐시던 엄마는 흙 묻은 장갑을 벗을 새도 없이 나를 불러 세웠다. 작은 비닐봉지 하나를 내밀며 “먹어라.” 하시던 그 숨결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 안에는 한 개의 보름달 빵이 들어 있었다. 반은 내가 먹고, 반은 집 강아지에게 주며 해맑게 웃던 날들이 있었다. 누나는 자기 몫이 없다며 종종 투덜댔지만, 나는 달콤함에 빠져 그 말도 흘려들었다. 세월이 꽤 흐른 뒤에야 알았다. 그 빵은 엄마가 간식으로 받은 것 중 스스로 드시지 않고 남겨두신 ‘내 몫’이었다는 사실을. 그걸 알고 난 뒤로 보름달 빵을 쉽게 먹지 못했다. 입에 넣으면 미안함이 먼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모양도 조금씩 변한다. 지금은 보름달을 떠올리면 미안함보다도 어머니가 남겨주신 ‘둥근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그 마음이 나를 오늘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고 생각하면, 보름달은 늘 감사의 모양이다. 어린 시절의 음식은 뭐든지 다
[초대석] 정재열 관세사회장 "마약· 특송·외화 밀반출 등 국경관리...관세사가 앞장"
(조세금융신문=안종명 기자) “1976년 관세사 제도가 처음 생길 때 우리나라 수출액이 80억 달러였습니다. 지금은 1조 3,000억 달러를 넘보는 세계 10위권 무역 강국이 됐죠. 지난 50년이 우리 존재를 증명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50년은 국가 무역 안전망의 ‘재설계’ 기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부, 강남. 빌딩 숲 사이로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 기자는 한국관세사회 회장실을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냉기와는 대조적으로 따뜻한 온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이 무색할 만큼, 정재열 회장은 밝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그 미소 뒤에는 창립 50주년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온 수장으로서의 고뇌와 확신이 함께 담겨 있었다. 마주 앉은 그는 차 한 잔을 건네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와 궤를 같이해 온 한국관세사회의 발자취를 차분히 되짚었다. 그의 시선은 과거의 성과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100년’을 향한 다짐 속에서, 혁신을 향한 굳건한 의지는 또렷이 전해졌고, 그 울림은 강남의 차가운 겨울 공기마저 녹이기에 충분했다. 80억 달러 수출국에서 1.3조 달러 무역 강국으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