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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태풍 끝 찾아온 강(姜)바람, 국세청장에 닿다…제26대 강민수 국세청장 <中>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지난 上편에서 이어집니다>

 

◇ 두 번째 고비, 박근혜 정부와 임환수 국세청장

 

권력투쟁은 자기보다 못난 경쟁자에게 밀렸을 때는 견딜 수 있다. 능력도 안 되는 이는 잠깐 솟구칠 수 있어도 오래 가긴 어렵다. 진정 쓰라릴 때는 자기와 별 차이 없는 경쟁자에게 밀렸을 때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같은 TK정권이지만,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공천학살을 주고받을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세청장(제20대) 임명을 앞두고 두 명의 유력 경쟁자들은 모두 이명박 정권의 유산들이었다.

 

서울 출신인 박윤준 국세청 차장(행시 27회)은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에서 역외탈세 업무를 보좌하다가 국세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역외탈세 차단을 캐치프레이즈로 삼은 건 이현동 국세청장이었다.

 

대구 출신인 조현관 서울지방청장(행시 25회)은 진골 TK였다. 이현동 청장과 같은 대구 출생-경북고·영남대 동문이었다. 중부국세청장에 이어 서울국세청장까지 1급 자리를 두 번이나 차지했다. 이 정도면 차기 국세청장으로 지명한 수준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명박 정부의 유산을 국세청장으로 받지 않았다. 빈자리를 노리고 사방에서 경쟁자가 몰렸다. 백운찬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 김철수 관세청 차장이, 학계에서도 한만수 이화여대 법학 교수의 이름이 거론됐다.

 

이러한 후보군에는 김덕중 중부국세청장의 이름도 있었다. 주변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본인은 청장 후보자 지명 전날까지 인사 결과를 상상도 못 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국세청 역사상 중부국세청장이 청장이 된 사례도 없었고, 대전 출생에 중앙대 출신인 데다 박근혜 정부 쪽 인사와 접점이 없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명박 정부와도 접점이 없었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김덕중 국세청장을 임명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국세청장이 되기까지 밑에서 지원한 세력도 없었고, 국세청 최강 인맥인 조사국 계보도 아니었다. 뿌리가 얕았기에 국세청 내 기존 세력을 밀어내진 않았지만, 성실하지만, 적극행정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목 못 받았던 인재들에게 기회를 주려 노력했다.

 

김덕중 국세청장은 2014년 1월 3급 부이사관이었던 강민수 국세청장을 2급 고위공무원으로 승진시켰다. 첫 국장 보직은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이었다.

 

김명준·임광현·노정석은 강민수 국세청장보다 한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2013년 4월 중부국세청 감사관을 하다가 2014년 7월 중순 부산국세청 세원분석국장에 들어오면서 2급 고위공무원에 승진했다.

 

임광현 민주당 의원은 이미 2013년 4월 국세청 조사기획과장에서 부산국세청 세원분석국장에 배치됐다가 2급 고위공무원에 승진하지 못하고, 2014년 7월 서울국세청 감사관으로 이동했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공세적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는 2013년 6월 국세청 법인세과장에서 대구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이동했다. 대구국세청 조사1국장은 보수의 심장인 대구 경북지역을 관리하며, 보수정당 정치인들의 지역구와 맞닿는 보직이다.

 

그는 2013년 6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년간 대구국세청 조사1국장을 하다가 2014년 7월 중부국세청 감사관에 배치됐다. 고위공무원 승진에서 밀려난 모양새였다.

 

김덕중 국세청장이 임기 2년을 지냈다면, 2014년 12월 인사를 단행했다면, 강민수·김명준·임광현·노정석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런데 김덕중 국세청장이 2014년 7월 인사를 단행한 지 얼마 안 돼 박근혜 정부는 김덕중 국세청장을 갑자기 경질했다.

 

당시 언론에선 여러 이야기가 돌았다. ‘정윤회 국정 개입 보고서’ 사건 관련 정 씨가 김덕중 국세청장에 대해 ‘일을 똑바로 못하고 있다. (조직) 장악력이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정 씨가 왜 일을 못 하고 있다, 조직 장악력이 부족했다고 판단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보도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2014년 7월 인사가 결정타였다고 말이 상당했다. 박근혜 정부는 인사 경쟁이 격화되자 김덕중 국세청장으로 휴전지역을 만들었을 뿐, 양 진영을 그대로 두었다는 설명이다. 이 의견이 사실이라면 김덕중 국세청장은 2014년 7월 인사에서 어떤 세력의 역린을 건드렸고, 이것이 청와대로 들어가 정윤회 입으로 나왔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근혜 정부는 자기 내부끼리 진박(眞朴) 경쟁을 부추겼다는 점을 보면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진위가 무엇이든 김덕중 국세청장 뒤를 이어 진짜배기가 국세청장이 됐다.

 

임환수 제21대 국세청장은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 김수남 검찰총장, 임환수 국세청장, 우병우 민정수석 등 박근혜 정부 핵심 TK라인 중 한 명이다. 그 당시 국세청 조사국 계보의 정점이었다.

 

2014년 8월 임환수 국세청장은 ‘일 잘하고 조직 장악력이 세다’는 말이 뭔지를 보여줘야 했다. 그는 취임 후 인사 정리에 나섰다.

 

대구 사람인 임환수 국세청장은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보좌관인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을 잊지 않았다. 2014년 10월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중부국세청 감사관(3급)에서 서울국세청 성실납세지원국장(2급)으로 승진했다. 이현동 전 국세청장은 이명박 정부 사람이었으나, TK뿌리 중 하나인 영남대 출신이었다.

 

자신의 국세청 조사국장 시절 직속 부하였던 임광현 의원도 잊지 않았다. 2014년 12월 인사발표에서 서울국세청 감사관(3급)에서 중부국세청 조사1국장(2급)으로 승진시켰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갑자기 발이 묶였다. 충청 출신인 임광현·노정석과 달리 그는 호남, 그것도 전북 부안 출신이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2014년 12월 인사에서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을 부산국세청 세원분석국장에서 국방대 파견으로 보냈다. 2015년 12월 인사에서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에 잠시 넣었다가, 2016년 3월 서울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장으로 발령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호남 출신 중에서 유능한 인물들을 기수별 한 명 정도 골라서 1.5선 정도에 배치해 내부 반발을 줄였다. 행시 37회 김명준, 행시 38회 송바우, 행시 39회 남판우가 그들이었다. 그렇지만 국세청 조사국장,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등 요직에는 절대로 호남 사람을 배치하지 않았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적극적으로 공을 세우는 사람을 좋아했다고 알려지지만, 세간에선 TK나 조사국 계보 가산점을 거론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이현동 전 국세청장의 운영지원과장이긴 했지만, 임환수 국세청장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운영지원과장 시절 신중했던 모습이 발목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다음 보직은 중부국세청 내 조사국 국장 정도가 적절해 보였지만, 2014년 12월 인사에서 그는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세종시) 상임심판관 교류 인사로 튕겨 나갔다.

 

젊은 나이에 일찍 승진했다는 명목이었지만, 부산 생활 후 세종 생활을 보내라는 건 넌 뛰지 말란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2015년 12월 인사에서는 서울국세청에 배치됐지만, 보직은 조사3국장이었다. 2016년 12월엔 국세청 본부에 들어왔으나, 보직은 전산정보관리관(현 정보화관리관)이 전부였다. 자리 줄 때까지 앉아 있으라는 암시였다.

 

 

같은 시기 임광현 의원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중부국세청 조사1국장, 중부국세청 조사4국장, 서울국세청 조사2국장으로 지방국세청 조사국장만 골라서 배치됐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등 핵심 보직을 받진 못했지만, 위에 행시 선배들이 있었기에 잠시 기다렸을 뿐이었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서울국세청 성실납세지원국장 이후 서울국세청 조사2국장,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으로 계속 서울국세청에 머물러 있었다. 그도 시간이 지나면 서울국세청에서 조사4국장이나 조사1국장 정도는 받을 것이란 관측이 뒤따랐다.

 

김명준·강민수, 임광현·노정석.

모두 웃지 않고 견딜 수 없던 시기였다.

 

◇ 부산 선배와 행시 38회

 

밀물과 썰물처럼 권력도 차고 기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TK정부 사람들은 자세를 낮춰야 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세청장. 한승희 국세청장(제22대)은 2017년 7월 첫인사에서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국정 농단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박근혜 TK정권 당시 정치적 세무조사로 정적,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하지만 TK정부 내 모든 사람을 배척하진 않았다. 적극적으로 영합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직무를 성실히 이행한 중간 간부들은 능력에 따라 중용했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2017년 7월 인사에서 국세청 조사국장에는 김현준 국세청 기획조정관(행시 35회)을 배치했다.

 

행시 35회들은 영남 출신들이 득세하던 행시 36회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김현준 국장은 특유의 근면성으로 노무현·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청와대 행정관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제23대 국세청장이 되고, LH사장까지 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깃발을 바꾸어 국민의힘으로 22대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에는 임광현 의원, 당시 서울국세청 조사2국장이 배치됐다. 국세청 조사국은 초임 사무관 중 좋은 싹을 발견하면, 조사국 내에서 계속 키우는 경우가 있다. 임환수-한승희-임광현이 그러한 계보였다.

 

다만, 임광현 의원에 앞서 행시 37회 중 서울국세청 4국장에 넣고 싶은 인재가 있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만, 소문의 주인공은 문재인 정부 출범 반년 전 국세청 감사관에 지원한 상태였다. 국세청 감사관에 가면 1년 동안은 꺼내 쓸 수가 없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2018년 1월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에서 국립외교원으로 파견을 나갔다. 그리고 2018년 12월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에 자원했다. 실권 없는 부서보다는 부동산·상속증여세 세무조사 업무를 맡겠다는 뜻이었다.

 

임광현·노정석은 둘 다 TK정권에서 승승장구했지만, 동시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게 능력이라면, 양쪽에 다 발을 걸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서울국세청 국제거래조사국장에서 국세청 기획조정관으로 부활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당시 국세청 기획조정관은 국회를 담당하는 국세청 본부 핵심 보직이었다. TK정권에서 호남 출신은 감산 대상이었지만, 민주당 정부에선 가산 대상이었다. 유능함 만은 꾸준히 인정받던 인재였다. 다음 자리는 국세청 조사국장이란 말이 돌았고, 그 말은 사실이 됐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2016년 12월 인사에서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으로 들어왔기에 2017년 7월 인사 명단에 오를 수 없었다.

 

그렇지만 2018년 7월 국세청 정기 인사가 공개되자, 국세청에서 처음으로 강(姜)바람이 분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이 국세청 기획조정관에서 국세청 조사국장으로 영전하자, 강민수 국세청장은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에서 국세청 기획조정관으로 이동했다.

 

고위공무원 승진이 8차선 도로를 뚫은 것이라면, 국세청 기획조정관은 4차선 도로를 뚫었다는 이야기였다. 국세청장까지는 아니지만, 잘하면 1급 청장 승진까지 노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분명했다.

 

경쟁자들도 한풀 꺾였다. 임광현 의원은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에서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으로 배치되면서 국세청 조사국 계보로 지위를 단단히 했지만,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2018년 1월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에서 국립외교원으로 파견 나가면서 공백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서 갑자기 하나의 변수가 생긴다. 2018년 7월 인사에서 임광현 의원이 비운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자리에 행시 37회 임성빈 국세청 감사관이 배치된 것이었다.

 

임성빈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은 강민수 국세청장과 행시 37회 동기이며, 부산 동향의 서울대 선배였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파견근무를 지내면서 행시 37회 선두 주자로 잠시 꼽혔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2선급으로 밀려났다. 고위공무원 승진도 2018년 2월에야 할 수 있었다. 강민수 국세청장보다 더 힘든 길을 걸었던 인물이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 국세청 인사 분위기는 행정고시 기수 서열의 재확립이었다. 이전부터 기수 서열이 지켜지곤 했지만, TK정권에선 비TK 선배 기수를 TK나 유력 주자들은 후배 기수들이 치고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진박 찾기가 절정에 달한 박근혜 정부 말기 때 가장 심했다.

 

임성빈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행시 37회)은 이후 국세청 법인납세국장을 거쳐(2019년 7월 부임), 부산국세청장(2020년 9월), 서울국세청장(2021년 7월)까지 승진하며 부산 지역 대표선수로 우뚝 올라섰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행시 37회)은 2018년 7월 국세청 조사국장을 하고 2019년 7월 서울국세청장에 올랐다. 2020년 7월 행시 36회 선배인 김대지 국세청 차장과 제24대 국세청장 경합에서 패배한 후 2020년 9월 명예퇴직했다.

 

임광현 의원(행시 38회)은 행시 37회 선배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기다리면 됐다. 2019년 7월 호남+행시 37회 이준오 전 중부국세청장이 국세청 조사국장을 맡았으나, 2020년 1월 중부국세청장으로 승진 발령됐다. 이제 국세청 조사국장 자리는 임광현 의원의 것이었다(2020년 1월 부임). 임광현 의원이 거쳤던 서울국세청 조사4국장,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이란 경력은 너무나 탄탄했다.

 

노정석 전 부산국세청장은 2020년 1월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에서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으로 이동했다. 국세청 국제조세관리관은 국외탈세정보를 쥐는 자리로 국세청 조사국장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 자리였다. 임광현·노정석 경쟁자들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다.

 

<다음 下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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