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김필주 기자) 6‧3 조기대선을 앞두고 각 당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AI 산업 육성과 이를 위한 대규모 투자 공약을 내걸었다. 이는 AI 산업이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최근 글로벌 리서치 기관 마켓앤마켓은 전세계 AI 시장 규모가 오는 2030년 1조 3452억달러(약 1800조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조기대선 이후 들어서는 차기 정부는 AI 산업에 대해 막대한 투자를 진행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이에 따라 AI 산업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수요도 덩달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서 재계‧업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화세미텍이다. 한화세미텍은 HBM 제조 공정에서 사용하는 핵심 장비 중 하나인 TC본더(열압착장비) 생산 업체로 최근 기술력을 인정받아 HBM 1위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연달아 TC본더 공급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에 조세금융신문은 TC본더 시장에서 급부상 중인 한화세미텍의 성장 동력과 기술력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편집자주]
HBM은 여러 개의 D램(DRAM) 다이를 3차원으로 수직 적층(Stacking)해 TSV(실리콘 관통전극)를 통해 연결‧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TC본더는 고온‧압력을 동시에 가해 D램 다이와 다이 사이를 정밀하게 접착시키는 역할(본딩)을 수행한다.
HBM은 보다 빠른 연산처리를 위해 메모리대역폭을 극대화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다수의 D램 다이를 적층해야 한다. 문제는 D램 다이 적층 과정에서 기판과 잘 붙지 않거나 수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한 정렬 오차가 발생할 경우 전체 HBM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딩 공정에서 주 역할을 담당하는 TC본더 생산에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된다.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HBM의 수요가 폭증하면서 글로벌 TC본더 시장 규모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2024년 4억 6100만달러(약 6700억원) 수준이었던 글로벌 TC본더 시장 규모가 오는 2027년 15억달러(약 2조 18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 한화세미텍, 한미반도체 TC본더 시장 독주체제 도전
현재 글로벌 TC본더 시장은 한미반도체가 독주하는 모양새다. 증권가 및 리서치 기관 등은 한미반도체가 지난 2024년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70%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7년 SK하이닉스와 공동으로 TC본더를 개발한 이후 꾸준히 점유율을 늘렸다. AI 산업 급성장으로 SK하이닉스가 HBM 1위에 올라서면서 그간 TC본더를 공급해왔던 한미반도체의 시장 내 위치도 공고해졌다.
![한화세미텍이 개발한 TC본더 SFM-Expert [사진=한화세미텍]](http://www.tfmedia.co.kr/data/photos/20250623/art_17491474020494_866930.png)
하지만 지난 2024년을 기해 이러한 시장 구조에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4년 1월 옛 한화정밀기계(현 한화세미텍)가 한화‧모멘텀의 반도체 전공정 장비 사업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2월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반도체 사업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혀서다.
한화비전 계열사인 한화세미텍은 지난 1977년 설립된 삼성계열사인 삼성정밀공업이 시초인 회사다. 삼성정밀공업은 삼성테크윈으로 사명을 바꾼 뒤 방산, 항공우주, CCTV, 광학, 정밀기계 등으로 사업을 넓혔다.
그러나 사업부진으로 삼성테크윈이 한화그룹에 인수된 뒤 한화테크윈으로 또 다시 사명을 변경했고 방산 분야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CCTV 등은 한화비전으로, 정밀기계 분야 등은 한화정밀기계로 각각 분산됐다.
한화세미텍은 지난 1989년 SMT(표면실장기술, PCB기판에 칩을 장착하는 기술) 기술 시장에 진입했고 1993년에는 와이어 본딩(가는 금속선을 통해 내부 칩과 외부 연결하는 기술) 시장에까지 진출하면서 TC본더 개발을 위한 기초 기반을 쌓았다.
이어 2007년에 플립칩 본더(칩을 뒤집어 기판에 연결하는 기술) 개발에 나섰고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 진입하면서 TC본더 개발 역량을 강화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TC본더 개발에 나섰고 결국 올해 3월 14일 SK하이닉스와 210억원 규모의 TC본더 공급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이어 지난 5월 16일에는 SK하이닉스와 385억원 규모의 TC본더 공급계약을 추가로 맺었다.
◇ 특수복합소재 및 자체 제어모듈‧SW 탑재 등으로 고가에도 고객사 신뢰 충족
한화세미텍은 짧은 기간 동안 TC본더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배경에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품질이 고객사 결정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했다.
김완식 한화세미텍 기획실장은 “경쟁사 대비 고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객사가 당사의 장비 구입하기로 결정한 것은 높은 기술력과 품질이 뒷받침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먼저 당사 TC본더에는 UPH(단위시간당 칩 생산량) 향상을 위해 해외 협력사로부터 고가의 특수복합소재를 적용했다. 해당 특수복합소재는 열과 진동에 민감한 TC본더를 더욱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선 한화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지난 2월 SEMI가 주최한 세미콘코리아 현장을 방문했다. [사진=한화세미텍]](http://www.tfmedia.co.kr/data/photos/20250623/art_17491474040273_653d2a.png)
이어 “TC본더에 적용하는 네트워크시스템 통신 장비의 속도도 향상시켜 제조 공정 중 발생하는 돌발 변수에 대한 인터락(이상 상황 경고 후 즉시 설비 정지시키는 기능)을 구현해 이전 대비 작업자가 신경을 쓰지 않도록 했다”며 “여기에 상용 SW를 따로 사용하는 타사와 달리 제어모듈과 SW를 자체 개발 탑재해 호환성을 높였다. 이같은 요소로 인해 당사의 TC본더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화세미텍은 적극적인 시장 공략을 위해 R&D(연구개발) 투자를 점점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5월 1일 회사는 차세대 반도체 장비 개발 전담 조직인 ‘첨단 패키징장비 개발센터’를 신설하고 연구 인력을 80여명까지 대폭 증원했다.
한화세미텍의 감사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3년간 회사가 투입하는 연구개발비는 2022년 503억원, 2023년 507억원, 2024년 678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고객사와의 비밀 유지 계약 등으로 인해 최신 TC본더의 세부적인 제원, 수주 현황 등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면서도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간 쌓아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올해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 결과를 얻은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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