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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뜨거운 국물 한 그릇에 담긴 도시의 체온-부산 돼지국밥

엄동설한 이겨낼 국밥 이야기(3)

 

(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부산의 상징은 바다다. 바다를 그리워하거나, 바다로부터 쌓인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 녹여내려는 사람들 역시 바다를 찾는다. 오래전 부산은 서울에서 참, 먼 동네였다.

 

새마을호가 아니고서는 비둘기호를 타고 열몇 시간을 가야 했으니 말이다. 당연히 돈 없는 서민들은 비둘기를 탔고, 나 역시 영등포에서 열 시간을 훌쩍 넘겨 부산에 도착하곤 했다.

 

빈속으로 떠돌던 시절, 낯선 도시에서의 첫 끼니는 십중팔구 국밥이었다. 예부터 장터가 발달했던 우리 민족은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잠깐의 발품만 팔면 장날과, 장날에 파는 허름한 한 끼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음식이 국밥이다. 장돌뱅이에게든, 장날을 기다리며 빈속으로 물건을 팔러 나오던 촌로들에게든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은 추위와 가난, 배고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던 소울푸드였다.

 

부산을 찾는다. 일부러 이른 시간에 도착하는 까닭은 국밥 한 그릇 때문이다. 서울에도 부산 돼지국밥 간판을 단 식당이 많지만, 돼지국밥은 역시 부산에 와서 먹어야 제맛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부산 출장길에는 일부러 속을 비워 둔다. 슴슴한 듯하면서도 감칠맛의 끝판왕인 돼지국밥 한 그릇을 먼저 비워내야 다음 출장의 목적 또한 한결 유순해진다.

 

부산 사람들에게 돼지국밥은 음식이기 이전에 생활이고, 습관이며, 도시의 체온과도 같은 존재라는데,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이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영업이든 무엇이든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부산 돼지국밥은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다. 그저 국물에 숟가락을 담그는 순간, 이 도시가 걸어온 시간과 사람들이 버텨온 삶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맑지도, 지나치게 탁하지도 않은 국물. 기름기와 담백함의 경계에서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맛이다. 여기에 소금 한 꼬집, 새우젓 한 숟갈을 더하는 순간 국밥은 각자의 입맛으로 완성된다. 정답은 없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간을 맞추는 일, 그것이 부산 돼지국밥의 미덕이다.

 

부산 돼지국밥의 기원은 분명하다. 전쟁과 피란의 역사, 그리고 생존의 기억이다. 피란민들이 몰려들던 시절, 소고기는 귀했고 돼지고기는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다.

 

남은 뼈를 고아 국물을 내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밥을 말아 먹던 한 끼가 어느새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궁핍 속에서 태어난 음식이 세월을 건너 도시의 정체성이 되었다는 점에서, 돼지국밥은 부산이라는 도시와 닮아 있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반찬도 단출하다. 김치와 깍두기, 부추무침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국물 속에는 시간과 정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새벽부터 불을 지피고 국솥을 지켜온 손길이 있어야 가능한 맛이다. 그래서일까, 이른 아침 국밥집에는 늘 말수가 적다. 대신 국물을 들이키는 소리,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이 조용히 공간을 채운다. 부산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나주곰탕이 맑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면, 곤지암 소머리국밥이 묵직함으로 다가온다면, 부산 돼지국밥은 생활의 온기로 다가온다.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음식, 늘 곁에 있어서 더 믿음직한 국밥이다.

 

부산을 비롯해 인근 밀양까지 시야를 넓히면 이름난 국밥집들이 즐비하다. 오래된 노포도 많고, 대를 이어 국솥을 지켜온 집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먹는 일은 굳이 유명세를 따질 필요가 없다.

 

지나가다 ‘돼지국밥’이라 적힌 간판을 보고 무턱대고 들어가도 크게 실망할 일은 드물다. 이 지역에서는 돼지국밥이라는 이름을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기준은 이미 넘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이 음식은 부산 사람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고, 집집마다 자신들만의 국물과 손맛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돼지국밥은 관광객을 위한 음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끼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의 국밥은 늘 담백하고, 늘 성실하다.

 

부산 둘러보기

 

해동용궁사

부산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절이다. 절집은 산중에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이곳에서는 내려놓게 된다. 파도 소리를 배경 삼아 서 있는 전각들과 바다를 향해 열린 시야는 묘한 해방감을 준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녘에 찾으면 관광지의 번잡함보다는 바다와 마주한 사찰 본연의 고요가 살아난다. 국밥으로 데운 속을 바닷바람으로 식히기 좋은 자리다.

 

 

해운대

해운대는 부산을 처음 찾는 이에게도, 여러 번 찾은 이에게도 늘 같은 얼굴로 다가온다.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표정은 달라지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국밥으로 채운 속처럼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부산의 속도와 여유가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다.

 

 

자갈치시장

부산의 생활력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비린내와 고함, 흥정 소리까지 모두 이 도시의 일부다. 국밥이 부산 사람들의 일상이라면, 자갈치는 그 일상이 모이는 장소다. 활어가 오르내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도시가 왜 바다와 함께 살아왔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감천문화마을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 골목과 색색의 집들이 인상적인 곳이다. 한때는 피란민들의 삶터였고, 지금은 부산을 상징하는 풍경이 되었다. 천천히 골목을 오르내리며 내려다보는 바다와 도시의 풍경은 부산이라는 공간이 품어온 시간의 층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을수록 이곳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블로그 | 지구별 여행자 운영자

•스튜디오팝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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