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스페인은 세계 최대의 올리브 생산국가이다. 콜레스테롤 제거와 암 예방에 좋다는 올레익산(Oleic acid)과 항산화 작용으로 노화 방지에 좋다는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돼 있어 ‘신이 내린 선물’이라 불리는 올리브는 전 세계 생산량의 30%가 스페인에서 재배되고 있고 특히 이곳 안달루시아 지방이 스페인에서도 최대 재배지라고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1000mm 이하인 안달루시아 지역의 산들은 건조하고 숲이 별로 없는 민둥산이 대부분이다. 올리브나무는 다행히도 비가 적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재배되기 때문에 이 지역에 가장 적합한 식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게다.
그라나다에서 론다 가는 길, 끝없이 이어지는 메마른 땅에 그나마 올리브 나무마저 없었으면 고비사막이나 몽골의 대평원처럼 삭막한 풍경으로 인해 지쳐 몸서리치지는 않았을까.
론다, 작지만 볼 것 많은 알찬 도시
론다는 해발 739m의 절벽 위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인구 역시 4만여 명이 채 안 된다. 우리나라에는 몇 년 전 TV에서 방송되었던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라나다에서 세비야로 또는 세비야에서 그라나다로 여행하는 한국인 여행객들이라면 빠지지 않고 들르는 곳이 되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다른 나라 여행객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스페인 여행의 필수 코스처럼 들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투우의 발상지 론다, 그리고 최고의 투우장 플라사 데 토로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것 중의 하나가 ‘투우’이다. 오늘날에도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전국의 아레나(Arena)에서 투우 경기가 열리고 있다. 이런 스페인 근대 투우의 발상지가 론다이고, 현재 가장 오래된 투우장이 이곳 론다에 있다.
1754년에 착공하여 1784년에 완공한 론다 투우장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360도 2층 원형에 동시에 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어졌으며 가장 아름다운 투우장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투우 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이 즐기기 위해 동물을 그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둘러보는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 없다. 투우장이라는 사실을 잊고 건축물만 감상했더라면 정교하고 섬세한 그 건축 기법에 여러 번 감탄사를 연발하고도 남았을 텐데 말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산책로
자리를 피하듯 투우장을 빠져나와 대문호 헤밍웨이가 이곳에 머물며 산책하던 산책로로 이내 접어들었다. 오랜 기간 종군기자를 지낸 헤밍웨이는 그의 나이 37세에 스페인 내전 종군기자로 참전하게 된다. 헤밍웨이는 이곳 론다에 머물며 스페인 내전의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집필을 시작한다.
훗날 이 작품은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노인과 바다’와 더불어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결정적 작품이 되기도 한다. 산책로를 따라 난간을 걸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나오던 장면을 떠올려 본다.
산책로 정점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론다라는 도시가 꽤 높은 곳에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또한 눈앞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투우장에서 불편했던 생각을 단숨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하고 아름답다. 론다 최고의 전망 포인트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이곳은 낮 풍경뿐만 아니라 해질 무렵 산 능선 너머로 내려앉는 낙조 또한 일품이다.
론다의 상징, 누에보다리
론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두고 깊이 120여 미터에 이르는 기암절벽의 협곡이 있고 그 협곡 아래로 과다레빈강이 흐르고 있다. 내려보기에도 아찔한 이곳에 돌을 쌓아 만든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바로 론다의 상징 ‘누에보다리’이다.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누에보다리는 1751년에 착공하여 34년 만에 완성하였다. 아치형다리 중간에는 방이 있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에는 감옥과 고문 장소로도 사용되었고 지금은 다리 홍보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헤밍웨이 산책로에서 보이는 누에보다리 풍경은 천혜의 자연과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구조물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극치를 이룬다. 어디 그뿐인가. 다리 위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풍경 역시 압권이다. 계곡 언덕을 따라 그림처럼 밀집된 하얀 집들과 그 너머로 켜켜이 펼쳐지는 산 능선 역시 어우러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많은 여행자는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투우장, 산책길, 누에보다리 등을 둘러보고 반나절 만에 훌쩍 론다를 떠나고 만다. 하지만 그렇게 둘러보기에는 아쉬운 곳이 론다다. “사랑하는 사람과 로맨틱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말한 헤밍웨이의 추천이 아니라도 하루쯤 이곳에 머물며 론다의 내밀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색다른 매력일 게다.
산책로 전망대에서 산 능선 너머로 내려앉는 저녁놀도 감상하고 누에보다리가 빤히 보이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망중한도 즐겨볼 일이다. 절벽 아래까지 내려가 밤이 되면 환상적인 조명으로 수놓는 누에보다리를 우러러보는 것도, 오밀조밀한 골목 작은 가게들을 둘러보다 적당한 바(Bar)에 들러 간단한 타파스(Tapas)에 맥주 한잔 곁들이는 것도 론다에서 머물며 해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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