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한자로는 대맥(大麥)이라고도 불리며 볏과에 속하는 보리는 세계 4대 작물 가운데 하나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보리농사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토착화된 주요 작물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다. 특히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재배 면적이 벼와 비슷했다고 하니 쌀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보리밥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식이섬유를 함유해 현대인에게 필수 곡물로 여겨지지만,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많은 이들에게 보리밥은 그다지 반가운 음식만은 아니다. 더욱이 보리쌀에는 식이섬유가 많아 보리밥을 먹고 나면 잦은방귀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저런 좋지 않은 기억들로 나 역시 40대가 되어서야 다시 보리밥을 먹기 시작했을 만큼 보리밥에 대한 기억은 항상 배고팠던 시절의 한 단면처럼 남아있다. 호구지책이란 말이 있듯 당시로서는 사람 입이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 할 만큼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멥쌀이 떨어지고 보리쌀마저 바닥을 보이면 고구마, 감자, 무, 심지어 시래기까지 넣어 밥을 지어야 했던 시절, 불과 4~5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개량된 품종 덕분에 보리밥이 찰지고 구수하지만, 어린 시절 먹었던 보리밥은 입안에서 굴러다니며 까끌까끌한 거친 맛이었으니 배고픈 와중에도 잘 넘기지를 못했었다.
보리밥 먹고 싶다는 아이의 한마디에 용인까지 보리밥을 먹으러 갔다. 고향 보리밥집 사장은 10여 년 전, 보리밥을 좋아해서 참치 전문점을 하다가 보리밥 전문점으로 업종 변경을 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처음에는 용인의 외진 산속에서 시작했지만, 몇 년 만에 고래 등 같은 큰 기와집을 지어 이전, 어느새 용인에서 유명한 보리밥집으로 자리 잡았다. 단출하게 시작한 부부의 식당은 지금은 1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큰 가게가 되어 있었다.
보리밥과 함께 불맛 나는 매콤한 주꾸미볶음도 주문했다. 주꾸미볶음은 구수한 보리밥과 곁들이면 아주 잘 어울린다. 비빔밥 재료로 나오는 다양한 나물, 된장찌개, 그리고 밑반찬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이 식당이 어떻게 짧은 시간 내에 지역 맛집으로 인정받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게 시작 때부터 먹어왔으니 내게는 이미 익숙한 맛이지만 변함없이 안정적인 맛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는 식당이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맛의 반증이 아닐까? 제대로 된 꽁보리밥 한 그릇을 비우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쁜 사람 눈길 끌어 시간 뺏을까 하는 우려와 더불어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요즘에는 보리밥이 천연 강장제이며 당뇨환자가 좋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즐겨 먹는다. 용인 고향 보리밥집은 옛날 보리밥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다. 직접 농가에서 보리쌀을 공수해 사용하고, 주인장이 여전히 주방을 지키고 있으니 그 맛을 보장한다. 영동고속도로 용인 IC 근처 처인구의 한적한 곳에 있으며, 주메뉴인 옛날 보리밥과 보조 메뉴로는 칼칼한 털레기(수제비)와 보리밥과 잘 어울리는 제육볶음, 주꾸미볶음등이 있다.
용인에는 민속촌을 비롯하여 에버랜드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특히 서울과 가까운 거리다 보니 백남준 아트센터를 비롯하여 호암미술관 등 크고 작은 미술관이 산재해 있다.
용인 둘러볼 만한 곳
호암미술관과 가실 벚꽃길
호암미술관과 용인에서 가장 큰 벚나무 군락지인 가실 벚꽃 단지는 주변의 호암저수지와 함께 4월이면 환상적인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호암미술관은 삼성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수집한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어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준다. 특히 4월에는 미술관 내에 조성된 2만여 평의 대지 위 아름다운 정원인 희원을 둘러볼 수 있다.
호암미술관 방문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 주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가실 벚꽃길과 함께 봄날의 용인을 만끽하며,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한택식물원
한택식물원은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 있으며, 20만 평 규모로 국내 최대의 사립 식물원 중 하나다. 희귀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식물은 물론, 다양한 종류의 식물을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이곳은 식물학적 가치와 함께 방문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식물원 내에는 34개의 테마 정원이 있어 방문객들이 다양한 식물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걷기 좋은 숲길도 잘 조성되어 있어 자연 속에서의 산책이나 휴식을 즐길 수 있다. 특히 4월에는 식물원 곳곳에서 다양한 꽃들이 만발하여, 봄꽃 페스티벌과 같은 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이 시기에는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사진 애호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와우정사
와우정사는 1970년대에 세워진, 해월삼장법사라는 실향민에 의해 창건된 호국불교의 근본 도량이다. 이곳은 단순히 불교 신자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내에는 8미터에 달하는 대형 불두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12미터에 이르는 통 향나무로 만들어진 와불(臥佛, 누워 있는 부처님상)이 인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다양한 불상들이 봉안되어 있고, 돌로 만든 입석 십이간지 상도 볼만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문화의 다양성과 불교 예술의 진수를 보여준다.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예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명소이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현)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현)스튜디오 팝콘 대표
•(현)마실투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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