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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칼럼] 인도차이나반도를 종단하다 (2)후에, 근대 베트남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고도

 

(조세금융신문=황준호여행작가) 베트남 중부지방에 위치한 후에시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였던 응우옌왕조의 수도였으며 20세기 들어서서는 수많은 전쟁을 치른 격전지이기도 하다. 도심으로 흐르는 흐엉강을 따라 기원전부터 도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중세시대에는 남중국해를 바탕으로 활발한 해상무역이 이곳에서 이뤄졌으며, 응우옌왕조가 수도로 삼은 후 베트남 정치 사회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였다.

 

후에의 비극은 19세기 무렵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도차이나반도의 식민지화를 꿈꾸던 프랑스는 황제 옹립 문제로 극심한 내분을 겪고 있던 틈을 타 후에의 응우옌 왕조를 점령하고 베트남 전역을 식민통치하였다.

 

이후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후에는 전장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중심지가 되었다. 남과 북으로 나뉘어 대치되던 내전을 비롯하여 특히 미국과 치른 1968년 전투는 베트남 전쟁 가운데 가장 많은 인명피해뿐만 아니라 도시 유적, 유물들 대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다행히도 오늘날 후에는 이러한 상흔을 뒤로하고 복구, 복원을 통해 온전한 역사 도시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후에를 대표하는 관광지로는 후에 황궁과 티엔무사원, 그리고 중세 베트남의 수도(首都)답게 카이딘 황제릉, 뜨득 황제릉 등 여러 능(陵)이 있다. 특히 후에 황궁에 얽힌 전쟁사와 20세기 베트남 저항운동을 일으킨 틱광득 스님이 주석하던 티엔무사원 등은 단순 관광을 넘어서 역사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강으로 떨어지는 꽃잎으로 인해 물에서 향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흐엉강을 따라 유람선을 타고 고즈넉하게 펼쳐진 강변 풍경을 감상하며 유유자적하는 것도 후에 여행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이다.

 

후에 황궁

응우옌왕조 1대 황제인 가륭제는 근대 베트남을 통일하고 후에를 수도로 삼은 뒤 황궁을 건설한다.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을 본떠 건립한 황궁은 프랑스에 의해 식민통치를 받기 전까지 베트남의 상징적인 곳이었다. 화려했던 황궁은 20세기 들어서 많은 내전과 프랑스와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건물대부분이 파괴되어 폐허가 되고 말았다. 태화전을 비롯하여 세조 묘 등이 있고,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도 활발하게 복원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후에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로서 한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름할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티엔무사원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월남(越南)으로 알려진 베트남은 한(漢)나라 시대부터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왔다. 불교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6~7세기에 전파되었는데 이웃 국가인 미얀마, 타이 라오스 등의 상좌부불교(上座部佛敎)와 달리 중국의 선종(禪宗)이 유입된 까닭에 오늘날까지 대승불교(大乘佛敎)가 베트남 불교의 주를 이루고 있다. 베트남의 고도(古都) 후에(Hue)에 있는 티엔무사원은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하다.

 

후에를 가로지르는 흐엉강(Perfume River) 서쪽에 위치한 티엔무사원은 1601년에 불사가 이뤄졌으며 그 후 여러 차례의 증축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사원 안에는 1700년대에 주조한 범종이 있는데 그 무게가 2t에 달한다.

 

사원 초입에 우뚝 서 있는 8각 7층 석탑은 높이가 21m에 이르며, 이 석탑은 베트남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특히 티엔무사원은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소신공양을 통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틱광득 스님이 생전에

주석하고 있던 사원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절 뒤편에는 소신공양을 하기 위해 사이공(오늘날 호찌민시)까지 직접 운전하고 갔던 스님의 낡은 승용차와 소신공양 당시 현장 사진과 타지 않은 심장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찾는 이들에게 저절로 숙연하게 한다.

 

틱광득 스님

1963년 6월 11일, 사이공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는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정권의 불교 탄압에 항거하기 위해 침묵시위를 하는 스님들이 모여들었고 멀리 후에(Hue)에서 손수 운전하고 온 틱광득 스님의 승용차도 도착한다.

 

스님은 주위 스님들에게 “앞으로 넘어지면 흉한 것이니 해외로 피신해야 하며 뒤로 쓰러지면 투쟁이 승리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당신이 타고 온 승용차에서 빼낸 휘발유를 온몸에 끼얹고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단행했다.

 

불길은 삽시간에 온몸으로 번졌지만, 스님은 거센 화염 속에도 흐트러짐 없이 가부좌자세를 유지하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온 힘을 다하여 뒤로 넘어지며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스님 나이 67세, 법랍 47년이었다.

 

 

이 장면을 직접 지켜본 뉴욕타임스의 베트남 특파원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은 “나는 그 광경을 다시 볼 수도 있었지만 한 번으로 족했다. 불꽃이 솟구치더니 몸이 서서히 오그라들면서 머리는 새까맣게 타들어서 갔고, 사람 살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놀라울 정도로 인간의 몸은 빠르게 불탔다. 내 뒤에 모여든 베트남 사람들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극도로 혼란스러워 메모를 작성하거나 질문을 던질 수도 없었다.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길에 휩싸여 타들어가면서도 틱광득 스님은 미동은커녕 신음 하나 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이 울부짖는 주위 사람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루었다”라고 충격적이었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또한 미국의 사진가 맬컴 브라운(Malcolm Browne)에 의해 촬영된 이 장면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전송되었고, 스님의 원력대로 응오딘지엠(Ngo Dinh Diem) 정권이 무너지는 도화선이 된다. 훗날 틱광득 스님의 소신공양 장면은 저항의 상징이자 수행자들에게는 경애(敬愛)의 상징이 되었다.

 

소신공양이 끝난 스님의 법체는 소각로에서 6시간 동안 화장(火葬)을 하였는데 심장은 전혀 타지를 않아 다시 두 시간여를 더 태웠지만 끝내 타지 않았다. 심지어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인해 민심의 동요를 우려한 응오딘지엠 정권은 비밀경찰을 보내 스님의 심장에 황산까지 뿌렸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녹지 않는 불가사의한 모습을 보였다. 이를 본 서양 언론들은 스님의 심장을 가리켜 ‘영원의 심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 스님의 심장은 하노이국립은행에 보관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베트남에서 국민의 절반 이상이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며 오래된 불교 역사만큼 베트남 전 지역에 고찰(古刹)이 많다. 그 가운데 후에(Hue) 지역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꼭 티엔무사원을 가보시길 권한다. 특히 틱광득 스님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수행자들에게는 경종을, 여행자들에게는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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