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준호 여행작가) 어죽(魚粥)이란 음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인 홍만선 선생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도 언급되어 있듯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즐겨 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어죽은 지역별로, 어종별로 끓이는 방식과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다. 어죽의 주재료는 물고기다.
내륙 하천 주변에서는 민물고기를, 바닷가 인근에서는 그 지역에서 잘 잡히는 생선을 넣어 끓이는데 방식이 다양하다. 뭉실하게 삶아낸 고기를 살코기만 분리하여 으깨어 채에 한 번 더 거르고, 우려낸 고깃국물에 살코기를 넣어 한소끔 더 끓인다.
쌀과 고추장을 넣은 후 쌀이 퍼질 때까지 끓여내는 곳도 있고, 어느 곳에서는 얼큰한 양념에 국수만 풀어 끓이기도 한다. 또 어느 지역에서는 수제비를 넣기도 하며 고추장이나 된장 대신 고춧가루만 풀어 끓이는 곳도 있다. 민물새우를 넣는 곳이 있는가 하면 들깻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끓이는 곳도 있다.
어죽의 시작은 농촌에서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아 함께 끓여 먹던 풍습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시골에서는 농번기가 시작되는 4~5월에 물고기를 잡아 어죽을 끓여 먹곤 했다. 원기 회복을 위한 보양 차원도 있지만 농사 시작 전 마을 사람들 간에 단합을 위한 놀이 성격도 있었는데, 이를 일컬어 천렵이라 하였다.
천렵(川獵)은 한자의 뜻에서도 알 수 있듯 냇가에서 사냥하는 일로 정학유(丁學游)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와 조선시대 많은 화가의 작품에도 천렵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이는 고대 수렵사회로부터 이어져 온 풍습으로 어죽이라는 음식 역시 천렵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즐겨 먹어온 어죽은 여름 오기 전 먹던 별미였으며 서민의 대표적 보양식이었다. 요즘에는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어죽을 파는 식당이 많아 마음만 먹으면 사시사철 쉽게 먹을 수 있다.
특히 금강을 끼고 있는 무주, 영동, 금산 지역에서는 어죽 파는 식당이 즐비할 정도로 성업 중이다. 그 외 강이나 하천을 끼고 있는 곳을 가면 어김없이 어죽 집 한두 곳은 만날 수 있다.
서산 시내를 벗어나 안면도 방면으로 2km쯤 가다 보면 우측으로 제법 높은 저수지 둑이 눈에 들어온다. 풍전 저수지 제방으로 둑 아래 외딴곳에 오래된 어죽 집이 한 곳 있다. 풍전뚝집이란 상호의 어죽 전문 식당인데 서산 인근에서 어죽 잘 끓이기로 입 소문난 곳이지만, 아는 사람 아니면 찾기 힘들 만큼 외진 곳에 있다.
풍전뚝집 어죽은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낸다. 쌀과 국수를 함께 넣어 끓이는 제물국수로 팔팔 끓인 어죽에 고명처럼 들깻가루를 듬뿍 넣어 뚝배기 채 내놓는다. 고추장과 된장, 그리고 얼큰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춧가루도 들어가고 생강과 깻잎까지 넣으니 전혀 비리지 않다. 잡내가 없으니 비위 약한 사람도 거부감 없이 먹기에 편하다. 특히 칼칼하게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을 터.
어죽에는 단백질과 식물성 지방 등 다양한 영양분이 들어 있어 사철 어느 때든 영양 보충을 위한 보양식으로 제격이다. 몇 수저만 떠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어죽 한 그릇을 먹고 나면 기분전환 뿐만 아니라 움츠러들었던 몸도 마음도 개운하게 풀어진다.
특히 주당들에게 어죽은 숙취 해소와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필자는 서산 인근에 일이 있거나 태안반도를 여행할 때면 여전히 들러 얼큰한 어죽 한 그릇을 꼭 먹고 간다. 중독된 그 맛에 빠져 이곳을 들락거린 세월이 20여 년을 훌쩍 넘었다.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맛을 내는 것도 많은 단골이 수십 년이 집을 다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죽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으니 인근 자연환경과 풍속, 사적 등을 둘러보며 서산을 유람해 보자.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문화재 구역으로 왜구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1417년(태종 17년)에 축성한 읍성이다. 고창읍성, 해미읍성과 더불어 조선 3대 읍성 가운데 한 곳이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관아를 비롯해 다양한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특히 병인박해 당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 흔적들이 남아 있어 저절로 숙연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방문 때 직접 찾은 곳으로 천주교도들의 대표적 성지 가운데 한 곳이다. 읍성의 둘레는 1.8km로 성벽을 따라 걷기에 좋다.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현존하는 모든 불상을 통틀어 용현리 마애불의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보다 더 아름다운 불상이 있을까? 더욱이 화강암 천연 바위에 부드럽고 섬세하게 새긴 조각술은 국보로 지정받기에 한치도 부족함이 없다. 마애여래상 삼존불은 백제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표정이 달리 보이는 등 뛰어난 백제인들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백제의 대표 걸작 가운데 하나로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었다.
간월암
조선 개국공신 무학대사가 달을 보다 홀연히 깨쳤다 해서 간월암(看月庵)이란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는 간월암은 밀물 때에는 섬이 되고 썰물 때에는 뭍이 된다.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해 매일 일어나는 자연현상으로 만조 때면 마치 암자의 모습이 물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절 마당에는 200여 년 된 사철나무가 있으며 담장 너머로 펼쳐지는 낙조가 장관이다.
개심사
운산면 상왕산 숲속에 있는 개심사는 한때 전통미와 자연미가 조화를 이뤄 가장 아름다운 절집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던 곳이다. 하지만 최근 사세 확장이 절집까지 혈안되었는지 기존 석축을 허물고 대규모 증축하였는데, 그로 인해 고즈넉하고 아름답던 전통 사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위압감마저 드는 절이 되고 말았다. 백제 시대에 창건된 사찰이며 4월 만개한 겹벚꽃이 아름다운 절이었다. 다행히 심검당 굽은 나무 기둥은 그대로 있고 해마다 4월이면 겹벚꽃 흐드러지게 피고 있다.
[프로필] 황준호(필명: 黃河)
•여행작가
•(현)브런치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작가
•(현)창작집단 '슈가 볼트 크리에이티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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