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6 (금)

  • 맑음동두천 -4.4℃
  • 구름많음강릉 0.2℃
  • 맑음서울 -4.1℃
  • 맑음대전 1.1℃
  • 맑음대구 5.0℃
  • 구름많음울산 6.4℃
  • 맑음광주 3.6℃
  • 구름많음부산 9.9℃
  • 맑음고창 0.2℃
  • 구름많음제주 5.3℃
  • 맑음강화 -6.6℃
  • 맑음보은 0.1℃
  • 맑음금산 1.6℃
  • 맑음강진군 4.5℃
  • 맑음경주시 6.0℃
  • 맑음거제 7.3℃
기상청 제공

문화

[동아시아 자본의 빅데이터, 부여백제 여행]⑥ 풍수 왕도의 건설, 도선대사와 무학대사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풍수지리에 따라서 월출산 도갑사는 도선이 창건하였으며 국사전에 도선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도선수미비에 도선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순천의 선암사(仙巖寺)를 중창하면서 사찰 입구에 강선루(降仙樓)를 세워서 선암사를 감아도는 개울이 양쪽으로 갈라질 때 기가 빠지는 것을 보완하였다. 1712년 광양 옥룡사에서 간행한 도선(道詵, 827-898)비문은 도선의 수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인 용건에게 집터를 정해주면서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왕건에게 땅의 이치와 하늘의 섭리에 따라서 왕지(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하여 거주할 것을 제안했다. 개경 송악산이 오른쪽 백호와 왼쪽 청룡이고, 주변의 안산과 조산이 어우러진 천하 명당이라고 하였다.

 

월출산 무위사의 형미선사 비문은 형미선사와 왕건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왕건은 영암세력으로 후백제를 견제하면서 불교와 풍수사상으로 혼란기의 민심을 통합하였다. 따라서 왕건이 개국 초기에 서남해 해양 세력을 이끌고 후삼국의 통일을 만든 토대를 마련하였지만 풍수지리를 근거로 왕도는 개경을 선택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도 풍수지리를 근거로 하였다. 개경은 명당이지만 첩첩 산중으로 물이 중앙으로 모이기 때문에 많은 사탑(寺塔)을 세워서 보완하였다. 그렇지만 정도전은 개성이 국토의 중앙이나 비좁아서 도읍으로 마땅치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처음 조선은 풍수사상을 반영한 정감록(鄭鑑錄)을 따라서 도성을 계룡산 신도안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학대사가 왕십리(往十里) 무학봉에서 "꼭 무학(無學)처럼 정도(正道)로 가지 않고 굽은 길을 가려느냐?"라는 꿈을 꾼 후에 서방으로 십리를 더 가서 경복궁(景福宮) 터를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무학대사도 왕건과 도선대사의 만남처럼 이성계의 꿈을 풀어준 인연으로 평생을 같이 했다. 이성계는 왕이 된후 무학대사를 왕사로 임명하고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會巖寺) 주지로 불렀다.

 

이성계는  수시로 회암사를 찾아서 왕실과 관련된 다양한 불교 행사를 진행하였다. 회암사는 주위에 도선국사가 기거했던 왕방산(王方山)이 위치하고 있다. 신라 헌강왕이 도선국사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하여 왕방산이라 하였다. 회암사는 이성계의 은신처였으며 왕방산과 천보산 양쪽 용의 정기를 받고, 수락산과 도봉산이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는 조선 최고의 명당이었다.

 

무학대사는 한양에 올 경우 자신이 중창(1395년)한 왕십리 무학봉의 청련사(靑蓮寺)에 머물렀다.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827년)때 창건되었고,‘안정사 (安靜寺 혹은 安定寺)’로 불렸다.“백성을 편안히 하여 나라를 굳건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련사는 동쪽 청련사, 서쪽 백련사, 북쪽 승가사, 남쪽 삼막사로 이루어진 한양의 4대비보사찰이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