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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동아시아 자본의 빅데이터, 부여백제 여행]⑥ 풍수 왕도의 건설, 도선대사와 무학대사

(조세금융신문=구기동 교수) 풍수지리에 따라서 월출산 도갑사는 도선이 창건하였으며 국사전에 도선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도선수미비에 도선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순천의 선암사(仙巖寺)를 중창하면서 사찰 입구에 강선루(降仙樓)를 세워서 선암사를 감아도는 개울이 양쪽으로 갈라질 때 기가 빠지는 것을 보완하였다. 1712년 광양 옥룡사에서 간행한 도선(道詵, 827-898)비문은 도선의 수행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도선은 왕건의 부친인 용건에게 집터를 정해주면서 왕건의 탄생을 예언하였다. 그리고 왕건에게 땅의 이치와 하늘의 섭리에 따라서 왕지(旺地)와 순지(順地)를 택하여 거주할 것을 제안했다. 개경 송악산이 오른쪽 백호와 왼쪽 청룡이고, 주변의 안산과 조산이 어우러진 천하 명당이라고 하였다.

 

월출산 무위사의 형미선사 비문은 형미선사와 왕건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다. 왕건은 영암세력으로 후백제를 견제하면서 불교와 풍수사상으로 혼란기의 민심을 통합하였다. 따라서 왕건이 개국 초기에 서남해 해양 세력을 이끌고 후삼국의 통일을 만든 토대를 마련하였지만 풍수지리를 근거로 왕도는 개경을 선택하였다.

 

조선이 건국되고 한양으로 천도하는 과정에서도 풍수지리를 근거로 하였다. 개경은 명당이지만 첩첩 산중으로 물이 중앙으로 모이기 때문에 많은 사탑(寺塔)을 세워서 보완하였다. 그렇지만 정도전은 개성이 국토의 중앙이나 비좁아서 도읍으로 마땅치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처음 조선은 풍수사상을 반영한 정감록(鄭鑑錄)을 따라서 도성을 계룡산 신도안으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무학대사가 왕십리(往十里) 무학봉에서 "꼭 무학(無學)처럼 정도(正道)로 가지 않고 굽은 길을 가려느냐?"라는 꿈을 꾼 후에 서방으로 십리를 더 가서 경복궁(景福宮) 터를 정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무학대사도 왕건과 도선대사의 만남처럼 이성계의 꿈을 풀어준 인연으로 평생을 같이 했다. 이성계는 왕이 된후 무학대사를 왕사로 임명하고 천보산(天寶山) 회암사(會巖寺) 주지로 불렀다.

 

이성계는  수시로 회암사를 찾아서 왕실과 관련된 다양한 불교 행사를 진행하였다. 회암사는 주위에 도선국사가 기거했던 왕방산(王方山)이 위치하고 있다. 신라 헌강왕이 도선국사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하여 왕방산이라 하였다. 회암사는 이성계의 은신처였으며 왕방산과 천보산 양쪽 용의 정기를 받고, 수락산과 도봉산이 좌청룡, 우백호의 역할을 하는 조선 최고의 명당이었다.

 

무학대사는 한양에 올 경우 자신이 중창(1395년)한 왕십리 무학봉의 청련사(靑蓮寺)에 머물렀다. 청련사는 신라 흥덕왕(827년)때 창건되었고,‘안정사 (安靜寺 혹은 安定寺)’로 불렸다.“백성을 편안히 하여 나라를 굳건히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련사는 동쪽 청련사, 서쪽 백련사, 북쪽 승가사, 남쪽 삼막사로 이루어진 한양의 4대비보사찰이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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