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인류는 따듯한 기후를 찾아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동하였고 식량을 찾아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빙하기에 따뜻한 아프리카가 인류의 생존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이었다. 먼 인류의 조상이 케냐,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 고대 화석으로 발견되는 이유다.
한반도에 호모에렉투스가 80~70만년 전인 구석기 중기부터 거주했을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또한 간빙기에 유목민족은 초지와 경작지를 찾아서 유라시아의 초원길을 이용하여 동서로 이동했다.
기후변화는 지구의 역사 속에서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원인에 대해서 여러 이론과 가설이 존재하는데 ‘자연적인 대기순환이론’은 고기압대에서 강수량의 부족으로 사막화가 일어난다고 제시하고 있다.
사하라사막과 고비사막은 다양한 식물과 공룡이 살 정도로 온난했고, 한반도 중부에서 아열대성 양치류 식물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지구 판구조 운동’에 따르면 지구의 판이 매년 약 2~15센티미터정도씩 움직일 때 판과 판이 충돌하면서 습곡과 단층, 지진과 화산폭발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태양의 흑점이 많으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태양의 흑점이 적으면 기온이 하락한다. 흑점이 거의 없었던 17세기 말은 소빙기였다.
1920년대 밀란코비치(Milankovich)는 지구가 태양에서 받는 복사 에너지의 주기적인 변동으로 약 10만년 마다 빙하기가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자전 각도가 21.5~24.5도까지 약 4만1천년 걸려서 기울어졌다가 다시 반대로 기울어지고, 지구가 회전하면서 흔들리는 세차운동(precession)도 2만3천년동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빙하기는 기온이 내려가는 소빙기와 올라가는 간빙기가 반복적으로 2만 3천년, 4만년, 10만년마다 나타난다. 이론에 따르면 지난 300만년 동안에 빙하기가 17~19번 정도 나타났고 마지막 빙하기는 1만 1500년전쯤에 끝났다.
그리고 지구의 내부 운동에 따른 화산활동의 증가는 대기 중에 높은 연기의 농도를 높이고 태양의 복사에너지의 감소시켜서 기온을 하락시켰다. 극지방의 아이스코어나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한 결과 화산활동에 의한 기후변화가 기원전 2500년부터 최근까지 적어도 78번 이상 나타난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해리스(C. Harris)와 맨(R. Man)은 기원전 2500년부터 2040년까지 과거와 미래의 기후 변화를 나타내는 해리스-맨(Harris-Mann)기후도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프를 보면 민족의 대이동, 국가간 전쟁 시기 및 극심한 기후변화의 시기가 대체로 일치한다.
인류가 번영했던 로마제국시대와 1100년경 지구는 아주 더웠고, 중세의 암흑기는 온도의 하강에 따른 추위와 식량의 부족으로 북방민족의 수직이동이 발생했다. 맬더스(T. Malthus)가‘인구론’을 발표하던 시점도 추위에 따른 흉년으로 고통받던 소빙기였다.
소빙기는 극지방이 얼기 때문에 해수량이 감소하면서 기후가 건조해져서 가뭄이 증가한다. 아프리카는 약 280만년전, 160만년전, 약 110만년-80만년전에 건조해져서 초원이 형성되었다. 동아시아 지역도 약 1만1천년전부터 기원후 1천년까지 약 1400년 주기로 건조기와 습윤기를 반복하고 있다. 특히 만주지역은 약 1만년전부터 여름 기간이 약하고 한랭한 기후가 우세하다.
농경사회가 형성된 기원전 5000년경은 간빙기로 식생 분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관련 인자들이 대체로 안정화 되었다. 그 뒤 소빙기에 스키타이족과 흉노족이 동서로 이동하면서 약탈 전쟁이 발생했다. 추위와 기근이 심했던 기원전 6세기~5세기에 4대 성인인 석가모니(기원전 563-483년), 공자(기원전 551-479년),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 등이 연달아 나타나서 인류에 빛을 던졌다.
소빙기에 중국은 전국시대(기원전 480-222년)의 혼란을 겪었고, 흉노족은 인구가 최대였던 기원전 373년의 혹독한 겨울을 보낸뒤 식량부족으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중국은 기원전 300년경 남하하는 흉노족을 막기 위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 때부터 만리장성은 농경지대와 유목지대의 생태계분계선이 되었다.
기원전 1세기 로마제국은 간빙기로 온난화에 따른 번영을 누렸다. 반대로 한나라는 약 30년(157~194)간의 가뭄에 따른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황건적의 난(184년)이 발생하면서 멸망했다. 고구려의 진대법은 소빙기의 수확량 감소에 따른 식량의 부족으로 실시되었다. 또 다시 5세기에 추위대가 남하하자 훈족의 이동으로 게르만족의 이동을 일으켰다.
또한 나무 나이테 조사에서 지구에 535년 대규모 화산폭발이 발생하면서 연무에 의한 햇빛 차단으로 가뭄과 추위로 전 세계의 생산량이 감소했으며, 초원의 유목민들과 가축들은 큰 고통을 겪었다. 오랜 혼란기를 평정한 수나라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고(619년), 유라시아의 강자였던 고구려도 가뭄과 기근, 오랜 전쟁으로 멸망했다(668년).
800년경 멕시코 계곡과 유카탄 반도의 건조화는 마야 멸망의 위기를 촉발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당나라도 소빙기의 가뭄에 의한 흉년으로 농민의 반란인 황소의 난(875년~884년)이 발생하면서 무너졌다. 900년경 간빙기에 지중해 추위대가 북상하자 끊임없던 전쟁과 정치적 혼란도 다소 안정화 되었다. 8세기말 소빙기의 스칸디나비아반도 인구는 200만명 내외였지만 9세기에서 13세기의 간빙기에 인구가 증가했다. 그리고 다시 소빙기가 14세기 중반 시작되어 19세기 중반에 끝났다.
중국에서 이자성의 난(1627~1646년)은 소빙기의 추위에 따른 기근으로 발생하여 명나라의 멸망을 초래했다. 이 시기에 서양에서도 기근과 전염병이 만연되면서 반란과 전쟁, 혁명 등이 나타났고, 이를 피할 수 있는 신세계를 찾아서 대항해를 시작하고 주로 더운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조선의 인구는 15세기에 경상도와 평안도가 수위를 차지하였는데, 17세기의 혹한으로 평안도의 인구가 줄고 온난한 전라도의 인구가 증가했다. 그리고, 기근이 심화되면서 당파싸움이 빈번해졌고, 백성의 피폐로 왕권도 약화되었다. 광해군의 대동법(1608년)은 흉작에 따른 민심의 수습과 소작농을 위한 조치였는데 부담이 증가한 양반 지주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조선 말기에도 가뭄이 지속되자, 국가의 재정과 국력이 약화되면서 민심의 이반과 권력다툼에 주권을 상실했다.
한편, 생태계에서도 기후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멸종위기에 몰리고, 해충의 활동과 바이러스의 변화로 코로나(COVID-19)처럼 전염병도 확산되고 있다. 채소와 감귤은 온도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기후변화를 증명하는 작물이다.
감귤은 당나라 때 장안과 회수까지 북상하였다가 추워진 송나라 때 양쯔강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명나라와 청나라 때 북한계선이 복건성(福建省)까지 더 남하했다. 다시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감귤 재배는 제주도에서 2000년대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까지 북상했다.
과거 지구의 빙하기와 간빙기의 평균 온도의 차이는 5도로 10만년 동안 서서히 생태계를 변화시켰다. 2000년대 지구의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 대비 1도 상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기후평가보고서’에 의하면 21세기 말의 전 지구 평균기온은 현재 대비 약 1.9~5.2정도 상승하고, 연평균강수량도 약 5~10%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의 평균 해수면도 약 52~91센티미터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들은 온도가 2도이상 상승한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사회와 생태계의 변화를 관리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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