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작위(爵位)또는 제후(諸侯)는 봉건제 사회에서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그 영내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귀족이나 호족에게 수여하던 칭호였다.
중국은 세상의 중심인 중원(천자국)에서 천자를 지배자로 세우고 주변(제후국)의 군주를 제후로 책봉했다. 이러한 직위를 받은 제후들은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군사를 파견하여 충성하면서 영지의 치안유지, 노동력 징발, 조세징수, 도로와 성곽의 보수 등을 관리했다.
기원전 11세기 주나라의 무왕은 왕(王)과 공(公), 후(候), 백(伯), 자(子), 남(男)의 오등작(五等爵)을 공신들에게 나눠주고 영토를 분배했다. 공(公)과 후(候)는 사방 100리, 백(伯)은 사방 70리, 자(子)와 남(男)은 사방 50리의 땅을 받았다. 주나라의 신분제가 제후(諸侯), 경(卿), 대부(大夫), 사(士)로 더욱 세분화되었다. 사士)는 춘추전국시대에 세습하는 관직이나 토지가 없었지만 지식과 힘을 가진 지배층을 형성했다.
제후들이 왕권에 도전하면서 주나라가 멸망하자 진시황은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를 실시했다. 군주의 호칭도 천자에서 황제로 바꾸었다. 그리고 한나라는 봉건제와 군현제의 중간 형태인 군국제를 실시하면서 20등작으로 관리에게 최상위 20급 철후(徹侯)에서 9급 오대부(五大夫)까지 하사했다.
백성에게 8급 공승(公乗), 7급 공대부(公大夫), 6급 관대부(官大夫), 5급 대부, 4급 불갱(不更), 3급 잠요(簪裊), 2급 상조(上造), 최하위 1급 공사(公士)를 줬다. 말기에 작위가 아닌 관직인 주모, 주자사, 태수, 교위 등을 부여하여 지방관을 파견했다.
삼국시대는 작위제도가 부활되어 왕, 공, 후 등을 부여하고 영지에서 권력을 행사했고, 사(士)가 관리로 등용되면서 사에 의한 정권이 탄생했다. 수나라는 국왕(國王), 군왕(郡王), 국공(國公), 군공(郡公), 현공(縣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의 9등급제를 실시했다. 또한 사(士)는 한나라와 당나라에서 훈고학을 발전시키고, 송(宋)나라 때 사와 대부가 사대부(士大夫)로 통합되었다. 사대부들은 우주론, 존재론,인성론 등을 유학에서 포함시켜서 성리학과 양명학으로 발전시켜서 권력의 토대를 만들었다.
동아시아 주변국들도 제후국으로 인정받고 작위제도를 정착시켰다. 백제는 책봉을 통하여 백제왕이라는 왕작(王爵)을 중원에서 수여받았고 그리고 지방관들에게 작위를 수여했다. 풍납토성에서 대부(大夫)가 새겨진 항아리가 나왔고, 아차산성에서 대부정(大夫井)이 새겨진 토기를 출토하였다.
개로왕은 472년 불사후라는 작위로 지방을 통제했고, 토착세력이 강한 마한 지역과 탐라국을 경영하기 위하여 왕후제를 활용했다. 마한지역에서 발견된 금동관과 금동신은 군주가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이나 지역의 토착 세력에게 왕이나 후를 하사하면서 신분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중원은 고조선, 백제,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왕작인 왕(王)을 부여했다. 대부분 시대적인 변천에 관계없이 조선왕(朝鮮王), 조선후(朝鮮候), 조선공(朝鮮公), 조선국공(朝鮮國公), 조선군공(朝鮮郡公) 등의 작위를 받았다. 대한제국은 황제의 나라로 아들에게 왕(王)의 호칭을 주었고 의민황태자(1897~1970)를 영친왕으로 불렀다. 그리고 왕족들에게 개국공(開國公), 개국백(開國佰), 개국자(開國子), 개국남(開國男)의 작위를 부여했다. 1945년 광복으로 공화정 체제가 시작되서면서 이러한 작위제도는 소멸됐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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