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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은닉→합법투자’ 역외탈세 수법 더 교묘해졌다

유령회사 아닌 실체 회사로 가장…합법과 범법의 경계선 ‘줄타기’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해외에 재산·소득을 은폐하려는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해외 페이퍼컴퍼니에 자금을 단순 은닉했다면, 최근에는 펀드나 신탁에 맡겨 투자자금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조세회피처에 세운 서류상 회사를 사무실과 직원이 있는 실체 회사인 것처럼 꾸미거나, 해당 회사를 지주회사로 가장하는 등 공격적인 탈세 수법을 동원하고 있다.

 

국세청은 12일 역외탈세 전국 동시 세무조사 발표와 함께 신종 역외탈세 수법도 함께 공개했다.

 

과거에는 조세회피처에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유령회사를 세우던 것이, 최근에는 마치 실체가 있는 회사인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적발되고 있다.

 

로펌, 회계법인의 업무대행용역 등 서류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를 끼워 넣는 등 기지 회사(Base Company)화하는 식으로 수법이 달라지고 있다.

 

해외 차명계좌 자금은닉 수법도 이중 삼중의 거래를 통해 복잡한 소유구조를 만들어 당국의 감시망을 회피하려는 시도도 늘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상사 주재원 명의의 해외 차명계좌에 자금을 숨기는 방식으로 은닉하려 했지만, 최근에는 파트너십, 신탁, 펀드 투자 등으로 소유구조를 은폐하려 하는 것이다.

 

특히 펀드자금은 거래나 신고내역이 없다면, 어디서 얼마만큼의 수익을 얻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국이 자금을 추적하기가 어려워진다.

 

조세회피처가 아닌 기업 활동에 유리한 국가에 법인을 세우는 경우도 생겼다.

 

조세조약이나 외국기업 지원특례 등이 있는 국가에 기업을 세우면 정당한 조약을 통해 저세율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U 등 다수의 국가가 국제공조를 강화하고 있지만, 한 국가의 정당한 과세권한 침해라는 점에서 아직 난제로 남아 있다.

 

해외 현지 계열사 간 거래 가격을 조작하는 수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해외계열사와 국내외 계열사 간 거래하는 가격을 시세보다 높거나 낮게 책정해 세율이 낮은 국가로 이익을 몰아주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적정 시세를 가지고 당국과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추세는 거래대상이 재화·용역 외 지식재산권 등 무형자산으로 늘어나고, 거래에 별 역할을 하지 않는 사주 개인 회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 넣어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챙기고, 주식교환·지분처분·인수합병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편법 상속·증여가 이뤄지고 있다.

 

위협받는 과세논리

 

이처럼 다양한 신종 수법이 나오게 된 것은 디지털 경제를 중심으로 바뀌는 산업구조가 큰 역할을 했다.

 

전통적인 세법구조에서는 고정 사업장이 세금의 원천이 됐다. 고정 사업장은 어느 특정 국가의 토지에 일터를 만들고, 직원을 고용하거나 파견해 사업 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러나 구글스토어, 앱스토어, 아마존 등과 같은 디지털 경제구조에서는 고정 사업장의 개념이 크게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해외 애플리케이션 같은 경우는 구글에 수수료만 지불하면, 전 세계 어디든지 앱을 팔 수 있다. 판매를 위해 굳이 특정국가에 회사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 전 세계 금융이 국경 제약 없이 이동한다는 점을 감안해 주식, 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해 소유구조를 다단계로 꾸미는 식의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이다.

 

몰래 세운 해외회사에 투자, 신종 수법 '실태'

 

국세청이 이번에 조사대상 혐의에는 신종 수법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A씨는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에 거액의 불법자금을 숨기고 이 자금을 다수의 거래를 통해 세탁해 해외 체류 중인 배우자에게 변칙 증여한 혐의로 조사대상에 선정됐다.

 

B씨는 청산 예정이던 해외계열사 홍콩계좌에 거액의 투자자금을 보낸 후 해당 해외계열사를 청산하고, 투자자금을 손실로 처리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하려다 적발됐다.

 

C씨는 해외투자 펀드를 운용하면서 자신의 지분투자 소득을 신고에서 빼고, 조세회피처 계좌에 은닉했다.

 

D씨는 국내에서 불법 유출한 자금을 조세회피처 계좌에 은닉하고 당국 몰래 세운 외국현지회사에 투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E씨는 자녀가 유학 중인 나라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해당 회사로부터 해외시장조사 용역을 제공받는 것처럼 거짓 계약을 꾸민 후 해당 용역비를 자녀의 유학비용 등으로 썼다.

 

F씨는 해외에 은닉한 돈으로 몰래 해외현지법인을 만든 후 이 회사를 통해 자녀 소유 내국법인의 주식을 고가에 사들이게 해 자녀 몰래 증여한 혐의로 조사받게 됐다.

 

G씨는 해외 프랜차이즈 사업권을 사주일가가 해외에 설립한 가족회사에 무상으로 주어 법인자금을 부당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H씨는 차명으로 운영하던 해외 위장계열사를 자신이 대주주인 국내 회사에 고가에 사들이게 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조사망에 포착됐다.

 

I씨는 사주 일가 명의로 고액주택을 사기 위해 해외현지법인에 대한 투자자금을 거짓으로 손실 처리해 자금을 만들었다.

 

국세청은 “이같은 신종 수법은 국제조세전문가의 일회성 협력이 아닌 역외탈세구조 설계부터 실제 설립, 운용, 청산 등 전 과정 컨설팅으로 이루어진다”며 “해외 정보수집망을 강화하는 한편, 국내외 유관 기관과 공조 조사를 추진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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