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동아시아의 묘제는 세월의 변천에 따라서 그 양식이 변해왔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은 계급 사회의 도래에 따른 지배자의 우위를 상징하면서 하늘에 제사하는 제단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적석고분은 만주계 양식이지만 백제의 한성과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던 소백산맥 지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인돌이나 적석고분이 사라지고 봉분을 흙으로 조성하는 횡혈식 석실분과 중국식 통광묘가 묘제의 주용한 형식으로 자리하였다. 무덤과 제단, 칠성바위의 역할을 했던 고인돌 고인돌은 납작한 판석이나 돌덩이 밑에 ‘괸 돌’ 또는 ‘고임돌’을 놓았다. 고인돌은 무덤이면서 제단이며,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돌 방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덮개를 얹었다. 탁자형은 시신을 지상에 놓아두고 평지에 높은 받침돌로 무덤 방을 만든다. 덮개형은 땅을 파고 무덤방을 돌로 덮는다. 바둑판형은 무덤방 주위에 돌무지를 쌓고 다시 덮개 돌을 놓았다. 강화 고인돌은 탁자형으로 받침돌에 덮개 돌을 놓았다. 보령 죽청리 고인돌은 중심에 낮은 받침의 덮개형 고인돌로 제단을 만들고 주변에 남방식 고인돌을 배치했다. 신안 방월리 고인돌은 7기의 고인돌로 칠성바위를 형성하고 있다.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반도와 대륙이 전쟁과 사회적 혼란으로 불안할 때 일본열도로 간 인구이동이 지난 2천년간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까지 벼농사, 청동기, 철기, 관개농업 등이 이주민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6세기에서 7세기 후반까지 차례로 가야, 백제,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많은 유민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백제 부흥운동의 실패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20년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인구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류하였다. 백제계 주민의 큐슈지역 정착 왜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백강전투에 참여했다(663년). 백제 부흥전쟁이 실패하자 백제 유민들이 대거 왜로 이주하면서 일본은 나당에 대한 적개심으로 정체성을 새롭게 했다. 후지와라 노후히토는 백제의 유민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善光)이 일본에서 백제왕의 작위를 받았다(속일본기). 백제가 멸망하자 지배층이 일본 수군과 함께 건너갔고(663년), 백제 왕족들과 일반인들이 오사카, 교토, 큐슈 일대에 정착했다. 왜의 수군이 남도지역에 상륙하여 백제인을 수송해 왔다(663년 10월). 여자신, 귀실집사(기시쓰 슈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는 도교의 오행설에 따라서 군대의 깃발을 황색으로 통일하였다. 도성의 남쪽에 남단(南壇)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천제를 올렸다. 도교문화는 삼신산과 무릉도원을 표현한 산수문전, 봉래산을 조각한 백제금동대향로, 그리고 부여 궁남지의 방장산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재는 백제 예술의 극치이면서 한국 예술의 원류가 되었다. 도교적 사고의 산수문전 토지는 신의 소유이기 때문에 사용시 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무령왕릉 지석(誌石)은 토지신에게 땅을 샀다는 토지 매지권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에 도교의 도사들이 주문을 외울 때 내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의 표현이 있디. 왕릉 입구의 진묘수는 무덤을 지키는 뿔과 날개가 달린 상상의 동물이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침입자나 악귀를 막고, 죽은 영혼을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한다. 남조의 황제릉에 돌로 만든 진묘수 한 쌍을 무덤 앞에서 세웠다. 외리문양전은 부여 외리의 사찰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벽돌로 42매가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1937년). 보물로 지정된 8매는 봉황무늬, 산수무늬, 산수도깨비무늬, 산수봉황무늬, 연꽃도깨비무늬, 연꽃구름무늬, 연꽃무늬, 용무늬이다. 특히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반도 남부와 일본의 큐슈는 고대 문화를 공유하면서 활발한 교류로 서로 협력했었다. 양 지역의 동질성을 나타내는 유적이 많고, 역사적으로 풀리지 않은 흔적들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교류의 흔적으로 보이는 서로 비슷한 유물이 양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굴되고 있다. 왜는 가야, 마한과 교류하면서 발전을 이루다가 4세기 중반부터 백제중심으로 바뀌었다. 고대 한반도 남부와 왜의 큐슈와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가장 큰 부분이 무덤양식이다. 토기문화의 흔적, 항아리와 옹관묘 옹관은 초기 철기시대에 생활 용기에서 묘제로 변하여 전용의 U자형으로 발전했다. 세계 각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묘제로 기원전 6000년경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시작하여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되었다. 초기 철기시대는 부장품을 묻지 않다가 3세기부터 토기, 구슬, 철기 등을 함께 사용했다. 영산강 유역은 대형 옹관과 옹관 고분이 형성되어 있다. 후에 이 지역의 고분은 석실에 옹관을 배치하는 석실분과 옹관묘의 혼합된 양식이 나타나기도 한다. 옹관묘는 마한지역의 보편적인 묘제로 4세기에 대형화되면서 U자형으로 바뀌었다. 여러 개의 옹관들이 한 곳에 발견되면서 가족이나 씨족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병자호란을 전후의 동아시아 정세와 서구의 식민지 개척에 따른 국제 패권의 변화와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여진족은 청을 세워서 역대 최고의 왕조를 구축했지만 조선은 왕권의 약화와 당파 싸움으로 국제질서에서 배제되었다. 오히려 동일하게 쇄국정책을 취했던 일본과 통신사와 국왕사를 상호 파견하면서 평온한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함경도와 여진족의 관계 여진족은 목축과 수렵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하면서 계급을 형성하고 국가를 탄생시켰다. 조선 건국의 출발점인 함경도 경원(慶源)은 시베리아와 만주의 문화가 유입되는 통로로 북방 유목 민족의 활동 무대였다. 북방계인 숙신‧읍루‧예맥‧부여‧말갈 등이 지배하다가 고구려‧당나라‧발해‧거란‧금나라‧원나라‧명나라의 통제를 받았다. 주로 여진족이 활동하였고, 이성계의 고조인 이안사(李安社)가 원나라의 다루가치(達魯花赤)였고, 그 아들인 이행리(李行里)도 이곳의 관리를 지냈다. 이곳의 관리였던 이징옥(李澄玉)이 계유정난으로 파면되자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를 내세운 ‘이징옥의 난’을 일으켰다((1453년). 누르하치의 직계 맹가첩목아(猛哥帖木兒)가 이 지역에서 살다가 뒤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는 한강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서 융합문화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탑으로 초기에 나무를 이용하여 목탑을 세웠고, 후에 석재를 이용하여 석탑을 조각했다. 목탑은 재질의 특성상 수명이 짧기 때문에 오래 전에 제작된 건축물은 찾기 어렵다. 목탑의 건축뿐만 아니라 목조건축물의 지붕 비례를 적용하여 석탑을 세웠다. 백제의 석탑은 각 층의 지붕 돌(옥개석)이 몸 돌보다 상대적으로 깊고 넓게 만들어졌다. 백제 석탑은 미륵사지 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리고 왕궁리 석탑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 백제의 목탑, 호류지오중탑과 능사지 오층탑 목탑은 중심 기둥의 심초석을 중심으로 각 층간 비례를 만들어서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 목탑의 원형은 높이 35미터의 호류지 오중탑으로 1층 내부 심주(心法)의 둘레에 사천주(四天柱)를 세우고, 그 내부에 수미산을 쌓은 후 소조상(塑造像)을 사면에 장식했다. 부여 정림사지에서도 소조상 파편이 발견되어 초기에 목탑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익산 미륵사지는 중앙의 목탑을 중심으로 양쪽에 석탑을 배치하는 3탑 3금당식의 가람을 구성했다. 백제는 신라의 황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반도의 도성은 왕과 귀족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주작도로, 왕궁, 사찰, 왕릉, 삼신산과 산성을 배치한다. 핵심 경관은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과 ‘왕이 신선이 된다’는 왕릉이다. 삼신산이 도성을 둘러싸고 남쪽에 왕의 보호를 받는 왕릉을 배치했다. 고대의 도성은 평지에 건설하는 평지성과 비상시 수비용의 산성으로 2성 체계에 강을 끼고 있었다. 강은 교통의 중심이면서 주변의 충적평야에서 식량을 보급받을 수 있는 기반이었다. 도성 주변을 둘러싼 환산성은 개별 산성이 장기 농성하면서 방어하여 도성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고구려의 도성 구조는 한반도에서 가장 기본이 되며, 고대 도성 건설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국가의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천도를 하면서 대응하고 국가를 발전시켰다. 도성의 기본 경관인 삼신산과 왕릉 삼신산은 도성에서 기본이 되는 경관으로 국내성의 우산(禹山), 칠성산(七星山), 용산(龍山), 평양의 대성산, 고방산, 청암리산, 한성의 검단산(崇山) 또는 아차산, 금암산(釜山), 청량산(漢山)을 중심으로 했다. 사비는 금성산(日山), 부산(浮山), 부소산(吳山)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왜의 아스카는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 국가의 수도는 통치자의 집무실과 관저를 포함한 주요한 국가 기구들이 밀집되어 있다. 주요한 의사결정이 전국적으로 신속히 실행될 수 있도록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의 근간이 된 옛 수도의 모습은 왕이나 황제가 거주하는 왕궁이 있는 도성과 도성의 경제적 기반인 경기지역을 구분하였다. 현대에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수도의 위치나 경제적 배경의 조건을 완화시키면서 국가기구들의 분산과 분할로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수도의 조건 고대부터 시작된 중앙집권제는 도성을 중심으로 직할지인 경기지역과 주변지역을 구분하여 통치했다. 도성은 국가의 설립과 성장을 반영하면서 지배계급인 왕과 귀족들이 살던 국가의 중심지였다. 내부적으로 정치와 경제에서 월등한 힘을 가진 지역단위를 형성하면서 타 지역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지가 될 수 있는 곳이 선택되었다. 이론적 근거는 거중(거점지 중심)과 관중(관할지 중심)이며, 위치는 국내의 반란을 진압하기 쉬우면서 외적의 침입에 항거하기 좋아야 한다. 유형은 분지형, 평원형, 반분지반평원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중국은 북방민족의 침입으로 장안에서 개봉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계속 도성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민간신앙은 원시사회에서 계급사회로 이동하는 시기의 지배적인 이념이었다. 인류는 자연현상이나 천체 변화를 신의 경고와 계시로 받아 들였다. 용은 풍운 조화를 일으켜서 비를 내리며 바다를 관장한다. 수도작 문화는 물관리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비를 다스리는 용(龍)신앙이 뿌리깊게 자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칠성(七星)신앙은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신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수도작 문화와 용신앙 용은 천상, 지상, 지하를 넘나드는 ‘미르신앙’의 대상이었다. 모든 존재하는 동물과 상상의 동물에서 뛰어난 능력과 장점을 취합해서 불멸성과 초월성을 나타냈다. 그 모양은 뱀 머리, 사슴 뿔, 귀신 눈, 소 귀, 뱀 목, 조개 배, 잉어 비늘, 매 발톱, 호랑이 발바닥을 닮았다. 용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여 하늘과 물에서 자연의 조화를 부리고 인간의 염원을 이루어줄 수 있는 영물이다. 발가락이 다섯 개인 용은 황제, 네 개인 용은 제후, 세 개인 용은 재상을 상징한다. 용 신앙은 물신과 용신이 세월이 흐르면서 합쳐져 형성되었다. 농경에서 강우의 신, 풍파를 주재하는 바다의 신으로 숭상되었다. 왕건이나 이성계처럼 왕실이 용신의 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고대에 일반인들은 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았다. 움집은 추위를 견딜 수 있지만 충분한 공간을 얻기가 힘들다. 초가집은 내부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 있지만 건물의 지속성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기와집은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 침수를 차단하고 부식을 방지하면서 외관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도 있었다. 기와가 주요한 자재로 이용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기와를 만들었고 지붕을 떠받드는 목재도 다양한 크기와 용도를 구성했다. 전통적인 건물 양식에서 하앙과 장식기와는 건물을 웅장하게 보이면서 멋을 내기 위하여 치장하던 부재였다. 건물을 웅장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하앙 초기 건축은 기둥과 기둥을 보로 연결하여 지붕을 떠받치는 가구식이었다. 벽으로 건물을 받치는 벽식 구조는 넓은 공간을 만드는데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는 정사각형에 배흘림 기둥을 세워서 가로선과 세로선, 대각선이 황금비를 이루도록 했다. 지붕은 기와로 지을 경우 팔작, 맞배, 우진각, 십자형, 육모, 정자형 등의 형태였다. 맞배지붕은 수덕사 대웅전, 무위사 극락보전, 선운사 대웅전, 화암사 극락전 등에서 볼 수 있다. 가장 오래된 수덕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역사는 인류가 만들어 온 실체적 산물의 결과이기 때문에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신화는 문자가 없어 역사를 기록하지 못하던 시대에 구전의 결과로 나타난다. 반면에 문자가 정착되면서 신화는 사라지고 당대에 존경받는 인물들이 세월이 흘러서 영웅으로 등장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각국의 고유한 신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신생국가들은 영웅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초강대국이면서 신생 국가인 미국은 신화보다 영웅을 중시한다. 신화적 사고와 정체성의 형성 신화적 사고는 우두머리나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었다. 신화(神話)는 계급사회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신과 인간을 둘러싼 한 나라 혹은 민족에게 전승된 이야기이다. 신이나 영웅이 초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합리화되고 정당화되었다. 인간이 신의 통제 하에서 예정된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류 문화는 신화의 보편성을 활용하여 역사를 해석하려고 했다.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는 신과 영웅의 역사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신화적인 행사는 축제, 무용, 음악, 문화, 교양으로 계승되면서 발전해 왔다. 단군은 종교의 제사장과 정치적 군장의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이동생활을 했던 유목민족은 새로운 정착지에 융합하고, 불안했던 삶은 영혼의 부활과 불멸의 세계를 추구했다. 초기에 다양한 자연물과 자연현상에 신의 존재를 부여하면서 환경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다. 하늘과 인간의 중재자는 샤먼(Shaman)으로 선지자 또는 주술사를 의미한다. 샤머니즘은 유라시아, 아메리카, 한반도와 일본열도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유목민족의 세계관이었다. 샤먼은 고대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세계관이었다 샤먼은 정신의 위기를 연출하여 주변인들을 빠져들게 하고 신령의 계시를 받아서 점을 치거나 병을 고쳤다. 무속은 생활 그 자체, 그들을 둘러싼 입체적인 생활에 포함된 생활양식이었다. 여러 개의 영혼을 가지면서 자신의 영혼도 다른 영혼의 기억과 생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영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무당이자 의사가 되었다. 하늘에 제사하는 신당에서 귀신을 부르는 축사(祝詞)나 축문(祝文)으로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사람들은 소원과 치료를 간구했다. 유라시아와 신대륙에서 의례와 의식을 주관하고, 사람의 병을 치료하며, 아픈 마음을 치유했다. 남아메리카의 무속인들은 뗏목을 타고 호수 한가운데서 불멸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성리학은 ‘하늘이 곧 이(理)’라는 송나라 정호(程顥)에 의하여 창건되었다(1000년). 주희(朱熹)는 ‘사서집주’를 완성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성리학이 국가 이데올로기로 등장하면서 문묘를 국가 제도로 정착시켰다. 그 기반인 도통론은 자연과 인간의 원리이자 질서인 도가 성인에 의해 현실 사회에서 구현된다고 본다. 이러한 성인을 모시는 문묘(文廟)는 성균관과 향교 내 사당으로 신라 성덕왕(聖德王)이 국학(國學)에 설치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제도는 조선 중기에 예송논쟁을 촉발시키면서 사회 혼란과 국력 약화의 원인이 되었다. 성리학에 의한 집단지성, 분열의 시작 문묘의 구조는 대성전(大成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무(東廡)·서무(西廡)를 배치한다. 대성전은 공자, 안자·증자·자사자·맹자의 4성(四聖)과 공자의 뛰어난 제자 10인, 송(宋)나라의 주자학자 6인을 좌우에 배향했다. 동무와 서무에 중국 명현(名賢) 47인과 우리나라의 명현 9인을 배향했다. 석전대제는 문묘의 제례의식이다. 조선중기에 서인이 인조반정 이후에 호서지방과 경기지방을 기반으로 중앙을 장악하자 다른 지역은 정치권력에서 밀려났다. 상호 세력경쟁이 심해지는 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중앙은행(central bank)은 화폐의 발행, 기준이자율의 결정, 금융회사의 지불준비금 등으로 통화의 공급과 조절을 담당한다. 이자율이 하락하면 소비를 활성화시켜서 경기를 상승시킬 수 있지만 물가 상승으로 국민경제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이자율(기준이자율)을 조정하여 통화량을 감소시킨다. 국제적으로 자본의 이동은 이자율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제적 위험이 큰 국가나 시장의 경우 이자율을 높여서 자본 유출을 방지한다. 따라서 미국의 이자율이 상승하면 국내 이자율도 상승하면서 이자율 하한선이 존재할 수 있다. 국내 물가는 자국의 이자율에 영향을 받지만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에서 환율에 따른 가격변동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국내외 이자율의 격차로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가격의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고 하락하면 물가도 내린다. 어느 국가나 경제회복과 고용창출이 우선 과제로 이자율과 환율에 대한 관리를 균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이자율과 환율의 결정 이자율(interest rate)은 불확실한 미래의 소비를 위해 확실한 현재의 소비를 포기한 대가로 사회 전체의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 점에서 결정된다. 그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부자는 지위를 상속받는 특권층이 아니라 진취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들이다. 부를 얻기 위해서는 항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기회를 찾아서 성공을 성취해야 한다. 지난 20세기 말부터 일어난 기술의 진보와 첨단 금융기법들이 산업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 왔다. 부자들은 스스로 자산관리 전문가이면서 모범적인 라이프스타일로 여러 다양한 수준의 규범을 준수한다. 부자들은 어떤 사람인가? 세계 부자보고서는 전체 재산 중에서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을 중심으로 부자(HNWIs: High Net Worth Individuals)를 구분한다. 분류기준을 보면 HNWIs는 10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 Very HNWI는 500만 달러에서 3000만 달러, Ultra HNWI는 3000만 달러 이상이다. 부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세계의 경제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금의 운영은 글로벌 경기동향, 국가별 경제성장률과 산업 환경의 불확실성 등에 예민하다.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도 부를 지키거나 키우는 데 집중하면서 다양한 투자수단을 사용한다. 부자들의 특징으로 첫째, 남성들이 세계 부자의 90%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초일류 부자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거쳐서 형성된다. 부 자체는 일반 계층에게 분산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역사상 최대의 부자는 메디치 가문, 로스차일드 가문, 베어링 가문,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철도왕 밴더빌트, 죽음의 상인 듀퐁, 곡물왕 카길, 담배왕 듀크, 광산왕 구겐하임, 호텔왕 애스터, 자동차왕 포드, 금융왕 JP모건, IT왕 빌게이츠, 워런 버핏 등이다. 그리고, 2022년 5월 현재 3대 부자는 Tesla의 일론 머스크, Amazon의 제포 베이조스, LVMH Moet Hennessy Louis Vuitton의 버나드 아나울트이다. 이들은 금 보유, 국제금융시스템, 전통의 유럽 가문, 글로벌투기자본, 조세회피지역, 그리고 금융저널리즘 등을 활용하여 부를 관리한다. 록펠러(Rockefeller) 가문은 소규모 매니저들과 함께 그가 보유한 자금으로 패밀리펀드(family fund)을 설립하여 운용하고 있다. 이후 패밀리펀드가 전세계적으로 활성화되어 가문의 자산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도드-프랭크법(Dodd-Frank Rule)은 헤지펀드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원자재시장은 수급의 불균형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우려로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광물, 곡물의 주요 수출국이고, 우크라이나는 밀과 철강 분야에서 중요한 공급국가다. 이번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자원 파동과 식량 파동이 일어나면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다.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에너지와 식량 위기는 만성적 에너지와 식량 수입국에서 장기 경제불황의 어려움을 일으킨다. 원자재 시장의 구성 원자재시장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글로벌 공급사슬 체계하에서 이동한다. 전세계적으로 7개 산업 30여개 종목이 주요한 거래종목이다. 각 원자재 별로 생산지와 소비지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글로벌 이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에너지와 식량이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주로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에 의하여 독과점으로 거래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엑슨모빌(미국), 세브론텍사코(미국), BP(영국), 로열더치쉘(영국/네덜란드), 토탈(프랑스)이다. 광물은 Anglo American(영국), Rio Tinto(영국/호주), BHP Billiton(호주/영국),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글로벌 거버넌스는 UN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경제의 핵심인 금융과 교역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이상 한 국가가 이 시스템을 벗어나서 독자적으로 경제활동을 완전하게 이루기는 어렵다. 또한 지급결제는 각종 경제활동에서 거래당사자들 사이에 발생하는 금융거래에서 지급 수단인 화폐를 이용하여 해소하는 것이다. 지급결제는 지급, 청산 및 결제의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지급은 거래 당사자들이 서로 주고받을 신용거래를 해소하기 위하여 대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청산은 화폐 이외의 지급수단으로 지급이 이루어졌을 때 금융기관들이 서로 주고받을 금액을 계산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제는 청산 과정을 통해 계산된 금액을 자금이체를 통해 서로 주고받아 신용거래를 해소한다. 글로벌 지급결제는 국제간 자금의 이체나 신용카드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시스템에서 이탈될 경우 경제활동을 영위하기 어렵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거버넌스들이 신속하게 대응을 취하면서 지급결제 수단인 국제금융통신망(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백제(해씨와 부여씨)와 고려(왕씨)를 건국했던 세력들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비운의 의자왕과 공양왕이 동정심을 얻지 못한 것으로 문헌에 기록하고 있다. 그 마지막 모습이 방탕하거나 비겁하게 그려지면서 백성들의 동정심을 얻지 못하도록 했다. 고려의 광종이 후고구려(태봉)와 후백제의 유산을 말살하고, 조선의 태종도 고려 왕조의 흔적을 지웠다. 구한말의 역사는 없고, 그 후의 산업화 과정만을 칭찬하고 있다. 왕권강화에 실패한 의자왕 ‘삼국사기’는 의자왕을‘과단성있고 용감하며 사려깊은 왕’으로 ‘궁녀들과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있다’고만 기록했다. 왕위를 계승하자 친위정변(親衛政變)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영토를 확장하면서 내부의 분열과 민심을 수습했다(640년). 왕권강화에 반대한 좌평 중심의 귀족들을 추방하면서 성충과 흥수도 과감하게 배제했다. 그후 고구려‧말갈과 연합하여 655년까지 신라의 100여개 성을 차지했다. 의자왕 시기는 전통 음악의 백미인 정읍사(수제천)를 노래하였고, 최고의 예술품인 백제대향로를 만든 문화의 부흥기였다. 고구려가 비슷한 시기에 내분으로 불안정한 정세였던 것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의자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자본시장의 불공정 거래는 인위적으로 시장을 왜곡하여 투자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직간접적으로 경제적 손실을 유발하는 범죄행위이다. 불공정거래(주가조작)는 증권시장의 자유로운 수급상황에 의해 정상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주가를 특정세력이 인위적으로 상승·하락시키는 행위이다. 그 방법은 특정 주식의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려는 통정매매와 가장매매, 주가를 상승시키려는 고가주문과 하락시키려는 저가주문, 그리고 실제 매매 의사 없이 거래를 위장하려는 허수주문 등이 있다. 허위사실 유포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시장에 퍼뜨려 주가를 상승시키거나 하락시킬 수 있다. 또한, 미공개정보 이용(내부자 거래)은 내부자의 단기 자본소득 반환, 임원 등의 주식 소유상황 보고,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등이다.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에 공시하거나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개되기 전까지 비공개 정보이다. 미국은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면서 회사 외부에서 발생한 정보도 규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는 최초로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이 있는 내부인으로 한정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불공정거래행위는 형사처벌로 대응하는 중대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