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5 (목)

  • 구름많음동두천 6.3℃
  • 맑음강릉 10.2℃
  • 연무서울 7.3℃
  • 맑음대전 10.9℃
  • 맑음대구 13.4℃
  • 맑음울산 13.8℃
  • 연무광주 11.5℃
  • 맑음부산 13.5℃
  • 구름많음고창 8.2℃
  • 구름많음제주 12.0℃
  • 맑음강화 3.9℃
  • 맑음보은 10.5℃
  • 맑음금산 10.2℃
  • 맑음강진군 12.3℃
  • 맑음경주시 12.9℃
  • 맑음거제 11.4℃
기상청 제공

문화

[전문가 칼럼] 동아시아 돌무지 문화와 묘제의 변화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동아시아의 묘제는 세월의 변천에 따라서 그 양식이 변해왔다.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은 계급 사회의 도래에 따른 지배자의 우위를 상징하면서 하늘에 제사하는 제단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적석고분은 만주계 양식이지만 백제의 한성과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었던 소백산맥 지역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고인돌이나 적석고분이 사라지고 봉분을 흙으로 조성하는 횡혈식 석실분과 중국식 통광묘가 묘제의 주용한 형식으로 자리하였다.

 

 

 

 

무덤과 제단, 칠성바위의 역할을 했던 고인돌

 

고인돌은 납작한 판석이나 돌덩이 밑에 ‘괸 돌’ 또는 ‘고임돌’을 놓았다. 고인돌은 무덤이면서 제단이며,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돌 방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덮개를 얹었다. 탁자형은 시신을 지상에 놓아두고 평지에 높은 받침돌로 무덤 방을 만든다. 덮개형은 땅을 파고 무덤방을 돌로 덮는다. 바둑판형은 무덤방 주위에 돌무지를 쌓고 다시 덮개 돌을 놓았다.

 

강화 고인돌은 탁자형으로 받침돌에 덮개 돌을 놓았다. 보령 죽청리 고인돌은 중심에 낮은 받침의 덮개형 고인돌로 제단을 만들고 주변에 남방식 고인돌을 배치했다. 신안 방월리 고인돌은 7기의 고인돌로 칠성바위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도 고인돌은 다양한 형태로 지석없는 무지석, 3∼4개 지석이나 2중의 지석, 판석형 지석으로 발전하였다.

 

 

 

 

 

 

만주 부여계 돌무지와 적석총

 

돌무지는 무기단식의 원형이나 정사각형으로 자연석을 쌓았다. 돌무지는 신석기시대부터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아서 만들었다. 발전된 형식인 적석총은 지면을 평평하게 고르고 돌을 쌓아서 돌무지를 조성했다.

 

돌무지 형식은 시베리아,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다. 몽골의 오보에는 돌무덤 위에 나무집을 지어서 적석총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고구려 적석총은 꼭대기에 건물인 향당을 세워서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도 주변에 기와가 흩어져 있다.

 

 

만주 집안(集安)일대에 1만기 이상의 적석총이 분포하고 있다. 태왕릉은 상단에 향당을 설치하여 제단과 석실이 있었고, 무덤 주변에서 기와와 벽돌 조각을 볼 수 있다.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으로 거대한 화강암을 쌓아서 그 안을 자갈로 채웠다. 각 면은 거대한 호석을 세 개씩 배치하여 내부 돌이 밀리지 않게 했다. 대동여지도는 이 지역을 황성(皇城)과 황묘(黃墓)로 표기하였다.

 

 

적석총은 정사각형으로 기단을 쌓고, 윗부분의 정방형 돌 망에 시신을 놓았다. 석촌동 3호분은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복원된 3단보다 더 높은 7단으로 보고 있다. 한강 이남의 고구려계 적석은 일정하게 돌을 규칙적으로 쌓아서 만들었다. 고구려가 지배했던 5~6세기에 아차산성, 단양유구, 의성유구 등에서 볼 수 있다. 산청 구형왕릉은 돌을 쌓은 적석총이다.

 

 

 

 

횡혈식 석실문과 토광묘

 

고인돌은 덮개 돌 아래에 돌기둥을 세우고 봉분을 얹는 횡혈식 석실분으로 발전했다. 횡혈식 석실분(돌방무덤)은 고인돌에 봉분을 얹은 형태다. 흙으로 봉분을 만들고, 중앙에 석관이나 석곽을 배치했다. 하남의 이성산성에서 금암산에 이르는 능선에 석곽묘군이 펼쳐져 있다.

 

가야와 말갈이 산 능선에 석곽묘를 축조한 것처럼 산 능선에 묘를 조성했다. 방이동고분의 1호분은 지름 12미터, 높이 2.2미터로 널길(연도)과 널방(현실)을 가진 횡혈식석실분이다. 그리고, 공주 수촌리고분군은 대형토광목곽묘, 횡혈식 석실분, 수혈식 석곽묘 등으로 혼합되어 있다.

 

신라는 나무 널이 사용되었다가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 왕으로 바뀌면서 묘제도 변했다. 마립간기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은 석실에 관을 안치하고 그 위를 잔돌로 채워서 거대한 봉분을 만들었다. 그 안에 순장과 함께 금제 부장품을 매장했다. 마립간이 왕으로 호칭을 바꾸면서 6세기 중엽부터 돌방무덤으로 변화가 이루어졌다. 중국식 묘제는 고려와 조선까지 동일한 양식으로 전승되었다.

 

 

 

 

무덤 양식의 변화는 민족의 이동이나 지배 계급의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민족의 이동이 발생하면 정복 민족이 토착 민족의 양식을 바꾸었고, 또 새로운 지배 세력이 등장하면 다른 형태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 이후 만주에서 한반도,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커다란 민족의 이동이 없어지면서 묘제의 양식에도 변화가 없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이명구 관세청장의 행정노트] 공정의 사닥다리
(조세금융신문=이명구 관세청장) 며칠 전, 새로 전입한 사무관들과 조용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결국 두 가지만을 강조했다. 인사를 잘하라는 것, 그리고 돈을 멀리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은 새로 만든 조언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사무관이던 시절 같은 과에서 근무하셨던 한 선배 사무관께서 해주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리지 못했지만, 공직의 시간을 오래 지날수록 그 말은 점점 더 분명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그날, 나는 그 말씀을 그대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인사는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고, 돈을 멀리하라는 말은 공직자의 판단을 흐리는 유혹과 거리를 두라는 경고였다. 공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긴 항해이기에,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지 않으면 어느 순간 되돌아오기 어려운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덧붙여 이런 이야기도 했다. 너무 경쟁하듯이 하나의 사다리만 오르려 하지 말고, 각자의 사닥다리를 각자의 속도로 차분히 오르기를 바란다고. 레드오션처럼 한 방향으로 몰려 달리다 보면, 사닥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고 병목현상 속에서 누군가는 추락할 수도 있다. 성과와 평가
[인터뷰] 뮤지컬 '4번출구' 제작 김소정 대표...청소년 ‘삶의 선택지’ 제시
(조세금융신문=김영기 기자) “무대 위에서 가장 조용한 숨으로 깊은 소리를 만드는 오보에처럼, 이제는 소외된 아이들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무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오보이스트에서 공연 제작자로 변신한 주식회사 스토리움의 김소정 대표가 뮤지컬 〈4번 출구〉를 통해 청소년 생명존중 메시지를 전한다. 2026년 청소년 생명존중 문화 확산 사업 작품으로 선정된 이번 뮤지컬은 김 대표가 연주자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작자로서 내딛는 첫 번째 공공 프로젝트다. 공연 제작자 김소정 스토리움 대표 인터뷰 내용을 통해 '4번출구'에 대해 들어봤다. ■ 완벽을 추구하던 연주자, ‘사람의 삶’에 질문을 던지다 김소정 대표는 오랫동안 클래식 무대에서 활동해온 오보이스트다. 예민한 악기인 오보에를 다루며 늘 완벽한 소리를 향해 자신을 조율해왔던 그는 어느 날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대표는 “어느 순간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숨을 쏟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았다”면서 “완벽한 소리를 위해 버텨온 시간이 누군가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의 완성을 넘어 더 많은 사람과 만나는 무대를 꿈꾸게 됐다”고 제작사 ‘스토리움’의 설립 배경을 밝혔다. ■ 〈4(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