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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보부상과 플랫폼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보부상은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우리의 삶에서 함께 해왔다. 김홍도의 ‘평양감사향연도’에 보부상이 등짐을 지고, 초립을 착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보부상은 조선시대에 전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상인으로 시장의 활성화와 자본의 축적에 공헌했다. 상품이 지역간에 이동할 수 있는 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였고, 화폐의 유통을 촉진시켜서 자본의 형성에도 도움을 주었다.

 

보부상의 기원과 정읍사

 

보부상의 기원은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의 정읍사(井邑詞)는 아내가 장사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면서 부른 노래다. 고려사악지(樂志)에 기록된 백제의 여러 노래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고 있다.

 

고려사는 정읍(井邑)을 반주하면서 2명의 춤꾼이 춤을 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악에서 정읍사는 수제천(壽齊天)으로 정읍(井邑) 또는 빗가락정읍(橫指井邑)으로 연주되고 있다. 남편이 행상을 나가서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아내가 근처 산바위에 올라가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고 있다.

 

 

 

 

정읍사에서 행상하는 남편은 초기의 상인인 보부상의 존재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현이다. 보부상은 교통의 중심지에 장시(場市)를 세워 행상(行商)을 했다. 보상(裸商)은 세공품 위주의 사치품을 주로 팔았고, 부상(負商)은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물, 약재를 취급했다.

 

초기의 보상은 보자기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메고 다니며 비교적 가볍고 비싼 물건을 거래했다. 이에 비해 부상은 지게와 어깨에 져서 운반하는 물건을 거래했다.

 

보부상은 평상시에 행상을 했지만,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큰 역할을 해냈다. 이들은 집단을 형성하여 전시에 군사물자, 식량,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갔다. 고려 말기의 보부상 백달원(白達元)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창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운반, 정찰, 통신 등에 헌신했고, 병자호란 때도 남한산성까지 물자와 식량을 상여(喪輿)로 운반하여 보급을 지원했다.

 

그리고, 홍경래의 난(1811년)에 의주(義州)의 허항(許)이 보부상 천여명을 이끌고 진압에 앞장서기도 했다. 1866년 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점령하였을 때 상병단(商兵團)을 조직하여 무기를 들고 항전했다.

 

한편, 인조는 병자호란 때 도움을 준 보부상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패랭이 좌우에 목화솜을 달아 구별케 했다.

 

충남지역의 보부상 조직과 상무사

 

조선시대는 보부상의 총 본부인 임방(任房)을 개성 발가산(發佳山)에 두고 오조물건(五條物件)에 대한 전매권을 부여했다. 조선후기에 장시의 수가 늘자 활동범위를 확대하여 점차 상권을 장악했다. 장시가 활발했던 안성은 경기와 호남의 화물이 모이는 한양 남쪽의 상업도시로 한강 이남의 보부상들이 가장 크게 활동했던 곳이다.

 

정읍사의 원류가 되는 한반도 서부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하여 보부상의 흔적과 유물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호서의 보부상은 각 군현에 설치된 임방을 기본단위로 활동했다. 3개의 상단인 예덕상무사, 원홍주육군상무사, 그리고 저산팔읍상무사가 호서지역의 내륙부터 서해안 지역의 장시를 장악했다.

 

저산팔읍(苧産八邑)은 모시가 많이 생산되었던 부여, 홍산, 남포, 비인, 한산, 서천, 임천, 정산 등의 8개 고을이다. 주로 이들 지역은 모시생산지로 저세(苧稅)를 담당하였고, 모시와 관련한 상거래가 빈번했다. 이 지역의 저산팔읍상무사는 월명산 298m와 천방산 324m 등 직선거리로 25km 정도 펼쳐진 수많은 고개를 넘으면서 모시거래를 주도했다. 마지막 끝자락인 길산장은 부여에서 홍산, 한산, 길산으로 연결되는 저산팔읍의 포구장(浦口場)으로 어물도 취급하는 주요한 장시였다.

 

 

 

1910년 한일합방과 동시에 보부상단은 흩어지고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점차 사양화했다. 길산장은 보부상과 관계없이 일제강점기에 미곡을 집산하여 군산으로 운송했던 집하장으로 번성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길산포구는 1929년 장항 매립공사를 시작으로 쇠퇴하였고, 1930년대 장항 부두시설에 밀려 사양길을 걸었다. 1990년 금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포구의 기능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길산포에 세워진 석교비에 보부상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저산팔읍 보부상이 홍산에서 길산으로 가던 길산천 상류의 은곡천(충남 서천)에 그들이 건넜던 대명다리와 이정표였던 대명바위(고인돌)가 있다.

 

보부상은 백제시대부터 우리 역사와 함께 애환을 함께 했었다. 상거래가 활발하지 못했던 시기에 시장의 활성화와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산업화의 물결과 도시화와 함께 보부상이 추구했던 거래 문화는 소멸되었고, 유통이라는 개념이 도입되면서 사적 이익만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점차 거래와 시장이 디지털화되면서 사람이 만나는 시장은 없어지고, 가상의 플랫폼이 사람없는 거래를 대신하고 있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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