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금융거래의 비밀 유지를 위한 법체계, 통화의 안정, 정치적 중립성 그리고 국민들의 고등교육과 외국어 구사능력 등을 기반으로 발전하였다.
예금비밀의 강화수단으로 민법이 아닌 형법을 적용하고 있어 소수의 고액 거래자들에게 안전성을 보장한다. 그리고 예금계좌도 실명이 아니라 계좌번호로 관리되면서 예금주를 알 수 없다.
또한 1848년 도입된 스위스 프랑은 물가 상승의 영향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강한 통화이다. 그리고 지정학적 위치, 유럽 3대 주요 언어(불어, 독어, 이태리어)의 사용, 근면한 국민정신, 노동시간도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제네바(Geneva)는 프랑스의 조세피난처와 자금 조달처의 역할을 하면서 루이 14세의 해외 자금 센터가 되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자금의 피난처로 활용되었다.
이렇게 조세회피나 자금의 도피처로 이용되던 자금의 해외이전은 상품과 자본의 글로벌화로 자금세탁으로 발전하여 왔다. 자금세탁은 불법적인 자금이나 투명성이 결여된 자금을 국제적으로 이동시켜서 자금출처를 은폐하거나 합법자금으로 변환시킨다.
자본세탁이 증여나 상속 등에 따른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국내시장에서 정보의 불균형을 이용하는 반면에 자금세탁은 거래 관계의 파악이 어려운 전세계를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주로 자금세탁은 무역거래, 고가매입, 조세회피지역 등의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무역거래는 자금 결제를 조작하기 쉬워서 자금세탁에 많이 활용된다.
모뉴엘(MONEUAL)은 2004년에 설립하여 다양한 혁신적인 가전제품을 개발하면서 매출액의 80%를 수출할 만큼 고속 성장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2007년 국제가전박람회(International ConsumerElectronics Show)에서 이 회사를 혁신의 아이콘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2014년 실제 매출액이 300억 원에 불과하고 분식회계로 1조 원의 매출을 보고한 것이 발각되었다. 이회사는 그 동안 실제 상거래가 아닌 금융회사의 대출로 수익을 챙기는 금융피라미드인 폰지사기를 활용하였다.
허위로 작성된 매출액과 매출채권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고, 그 돈은 배당과 해외투자 등에 사용하였다. 해외로 이전된 자금은 서류상의 회사(paper company)에 송금하여 자금세탁에도 활용되었다.
폐품을 정상적인 제품으로 매입하거나 실제가격보다 고가로 매입하여 자금세탁에 활용한다. 2011년 X기업에서 2,000억원에 인수한 해외 Y기업은 자산이나 현금 흐름이 전혀 없는 서류상의 회사였다.
그러나 X기업은 연간 매출액이 2000억원의 회사로 Y기업을 선전하면서 불과 두 달 만에 인수를 마무리하였다. 그렇지만 연간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던 Y기업은 인수 후 3년 만에 5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조사과정에서 X기업이 인수할 당시 Y기업이 전세계에서 총 20여 개의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소개하였지만 실제로 진행한 사업은 2개였던 걸로 밝혀졌다.
이것은 해외투자 명목으로 국내자금을 서류상의 회사에 이전하고 명목상의 투자손실로 회사를 정리하는 자금세탁의 과정이었다.
한편, 해외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되는 서류상의 회사, 헷지펀드와 사모펀드는 투자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 자금을 이전한다.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되는 법인은 주주나 투자자들을 전혀 노출하지 않으면서 조세를 회피할 수 있다. 사모펀드인 론스타는 스타홀딩스를 벨기에에 설립하고 그 자금으로 스타타워를 인수하였다. 그 뒤 매각하여 상당한 양도차익을 얻었고 우리 정부는 양도세를 부과하였다.
이에 론스타는 ‘양도소득은 양도인의 거주지국에서만 과세한다ʼ는 벨기에와의 조세 조약을 내세워 양도세 취소 소송을 냈다. 즉, 론스타는 벨기에 법인으로 한국·벨기에 조세조약에 따라서 국내에서 세금을 면제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정부는 론스타의 실제 소재지가 벨기에 아니라 미국이라는 점을 들어 납세 의무를 부담시켰지만 그 벨기에 법인의 투자자는 익명으로 남아 있었다.
조세 회피 지역은 세금의 회피와 탈세로 본국의 세수 기반을 위축시킨다. 그 유형은 완전면세국, 저세율국, 외국소득면세국, 그리고 특수 활동 특혜국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완전 면세국(tax paradise)은 소득세·상속세·증여세 등 직접세가 전혀 없는 케이맨제도, 바하마, 버뮤다 등 섬나라 소국이다.
저세율국(low tax haven)은 저율 과세와 해외 사업소득에 특별 조세 혜택을 부여하는 마카오·싱가포르, 스위스, 자메이카, 이스라엘 등이다.
외국소득 면제국(taxshelters)은 해외 원천 소득의 경우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홍콩·라부안·라이베리아 등이다.
그리고 특수사업활동 특혜국(tax resort)은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하여 특정 분야나 사업에 조세 혜택을 부여하는 영국·캐나다·필리핀·그린랜드·룩셈부르크·아일랜드 등이다.
또한 미국의 경우 조세제도가 주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본사 소재지를 조세에 유리한 주로 이동하는 조세회피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애플(Apple)은 법인세를 회피하기 위하여 실제 소재지인 캘리포니아주가 아닌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는 네바다주에 지주회사(Braeburn Capital)를 설립하였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도 2009년 UBS에서 은행계좌를 이용하여 탈세한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인 부유층 고객들의 명단을 미국 당국에 제출하면서 흔들렸다.
미 연방검사들은 UBS를 통하여 미국인 고객들이 200억 달러를 불법 은닉하면서 연간 3억 달러를 탈세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은행은 개인 고객에게 변호사와 회계사를 소개시켜 주면서 국세청의 재산 추적에서 보호하고 있다. 고객 명단의 공개는 중세 이래 비밀 준수의 원칙을 지켜온 은행 전통의 붕괴를 의미한다.
또한 2015년에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도 HSBC의 탈법 영업과 탈세가 의심되는 고객 정보를 공개하였다. 그 동안 자금세탁과 조세회피지역은 금본위제 폐지, 파생상품의 확대, 그리고 환율자유화 등의 상황 속에서 확대 되어왔다.
조세회피지역에 설립된 법인이나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의 핫머니(hot money)는 자금세탁 뿐만 아니라 취약한 금융시장의 국가들에게 위험한 존재이면서도 금융시스템에 효율성과 활력을 주는 자정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10년을 주기로 순환되는 국제 정치의 변동과 금융시장의 위기가 뒤섞이면서 더욱 해결하기 복잡한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금융위기는 단기적으로 시장에 충격을 주었지만 2000년대 이후의 금융위기는 시장충격이 장기화되는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금융환경의 변화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자금세탁과 조세회피지역은 문제로 인식할 수 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계륵으로 계속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도 2009년 UBS에서 은행계좌를 이용하여 탈세한 것으로 의심되는 미국인 부유층 고객들의 명단을 미국 당국에 제출하면서 흔들렸다.
[프로필] 구기동
•현) 신구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시민감시단
.•덕수상업고등학교, 경희대 경영학과, 경희대 경영학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영국 리버풀대 MBA, 서강대 경영학박사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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