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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전문가칼럼] 역사의 물줄기, 신화와 영웅이 필요한 시대인가?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역사는 인류가 만들어 온 실체적 산물의 결과이기 때문에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신화는 문자가 없어 역사를 기록하지 못하던 시대에 구전의 결과로 나타난다.

 

반면에 문자가 정착되면서 신화는 사라지고 당대에 존경받는 인물들이 세월이 흘러서 영웅으로 등장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각국의 고유한 신화를 간직하고 있지만 신생국가들은 영웅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초강대국이면서 신생 국가인 미국은 신화보다 영웅을 중시한다.

 

신화적 사고와 정체성의 형성

 

신화적 사고는 우두머리나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이었다. 신화(神話)는 계급사회가 형성되면서 만들어진 신과 인간을 둘러싼 한 나라 혹은 민족에게 전승된 이야기이다. 신이나 영웅이 초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합리화되고 정당화되었다. 인간이 신의 통제 하에서 예정된 일을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류 문화는 신화의 보편성을 활용하여 역사를 해석하려고 했다.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는 신과 영웅의 역사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신화적인 행사는 축제, 무용, 음악, 문화, 교양으로 계승되면서 발전해 왔다.

 

단군은 종교의 제사장과 정치적 군장의 성격을 가진 존재였다. 단군신화는 불교(환웅, 환인 등)과 도교(풍백, 우사, 운사 등)를 결합했다. 조선시대의 ‘청학집(靑鶴集)’은 도인들의 행적과 담론에서 도교의 근원으로 환인, 환웅, 단군을 제시했다.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단군신화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신라 말기에 삼국의 유민 의식을 앞세우면서 반란과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단군신화는 이러한 파벌을 해체하고 ‘단군의 후예’로 민족을 묶어서 그 당시까지 잠재되었던 백제계, 고구려계, 신라계의 유민의식을 통합했다.

 

나철(羅喆)은 단군 숭배의 대종교(大倧敎)를 창시(1809년)하여 일제강점기에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일제강점기에 단군릉이 파괴되자 전국 각지의 성금을 모아서 평양에 단군릉 기적비(紀績碑)를 세웠다. 단군은 광복과 함께 건국 시조로 단군기원(檀君紀元)을 국회에서 결의하고 국사교과서에 싣렸다. 단군신화는 해방 후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역사화되면서 사실로 인정받고 있다.

 

영웅에 의한 왕조사회의 구축

 

영웅(英雄)은 지혜와 용맹을 갖춘 사람으로 일반인들이 해내기 힘든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다. 히어로(hero, 영웅)는 “보호자”, “방위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헤로스(ἥ ρως)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영웅은 신성한 혈통이나 이후 신성한 영예를 지닌 헤라클레스와 같은 인물이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지혜와 용맹의 상징으로 한반도와 만주에 걸친 영웅이었다.

 

“옛날 색리국(혹은 탁리국) 왕이 시녀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왕은 환궁하자 시녀를 죽이려 했는데 시녀가 전에 하늘에서 큰 계란 만한 기가 내려오고 임신했다고 말했다. 왕은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두었고 그 후 아들을 낳았다. 왕이 그 아이를 돼지우리에 버렸더니 돼지가 입김을 불어 죽지 않았고 다시 마구간으로 옮겼더니 말도 역시 같았다. 왕은 신의 뜻으로 알고 기르게 하였고, 그 이름을 ‘주몽’이라 했다.”

 

 

그는 금와왕의 아들들과 함께 성장하면서 뛰어난 능력으로 항상 질시의 대상이었다. 주몽은 동부여를 떠나서 압록강의 엄체수를 건너고 졸본에 정착하였다. 광개토대왕 비문은 천제와 하백의 후손인 시조 추모왕이 북부여를 나와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비류왕 송양과 대결하여 크게 승리하였고, 왕위에 오른 지 19년 만에 사망했다. 고구려는 주몽의 묘가 있던 만주의 졸본을 중시했고 장수왕은 평양에 동명왕릉을 세웠다. 주몽에 대한 대한 숭배와 제사는 고려와 조선에서도 계승되었다. 고려는 평양을 제2의 수도로 인식하면서 주몽왕릉에 하마비를 세웠다.

 

신화는 가고 영웅이 필요한 시대인가?

 

조선의 세종은 평양에 단군 사당을 지었고, 동명왕(東明王)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 가장 존경받는 세종은 신화와 영웅을 인정하고 국가의 이상과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부국강병을 꾀하면서 한글을 창제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또한, 4군과 6진을 개척하여 고구려 이후 700여년간 잊혀졌던 압록강과 두만강, 민족의 백두산을 되찾았다. 그리고, 조선은 외세의 침입과 내부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500년 조선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일제강점의 암울한 시기에 최남선은 신화를 통해서 역사(문화사)를 해석했고, 신채호는 역사를 통하여 현상을 설명했다. 해방 이후 수많은 어려움이 몰려왔을 때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신화와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화와 역사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는 생존의 기로에서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멸이나 신탁의 길을 걸었다.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이 한반도, 일본열도, 중국대륙에 편입되면서 사라졌고, 태평양의 도서국들은 식민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질서가 혼란으로 빠져들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누군가 역사의 영웅으로 탄생하겠지만 영웅 앞에 일부는 몰락의 상처에서 오랜 기간 어려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당사자들과 관련 없더라도 힘없는 민족과 국가는 그 여파의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진로와 정체성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먼 신화와 영웅을 찾지 않아도 산업화를 이룩했던 신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던 영웅들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전)동부증권 자산관리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전)(주)선우 결혼문화연구소장
•덕수상고, 경희대 경영학사 및 석사, 고려대 통계학석사,

리버풀대 MBA, 경희대 의과학박사수료,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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