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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세습제도② 친족혼과 골품제도

 

(조세금융신문=구기동 신구대 교수) 한국과 일본은 고대에 친족혼제도를 기초로 발전했으며, 골품제도와 우지의 형태로 세습했다. 친족혼은 유전학적으로 열등한 인자를 생산하여 면역력이나 생식력을 약화시키는 유전병을 발생시킬 확률이 높다. 신라는 친족혼을 기반으로 왕족인 성골과 진골, 그리고 귀족인 6, 5, 4두품으로 신분을 구분했고, 일본은 아스카시대에 친족혼에 의한 씨족의 가문(우지)정치가 정착되었다.

 

왕족의 세습을 위한 친족혼 제도

 

고대에 친족혼은 가족과 친척끼리 혼인으로 혈통을 유지하고 권력누수를 막으려는 수단이었다. 흉노족은 아버지/형이 죽은 뒤에 아들/동생이 계모/형수와 함께 살았다. 사마천의 사기는 “아버지가 죽으면 그 뒤에 남긴 어머니를 부인으로 삼고 형제가 죽으면 모두 그 부인을 자기 처로 삼는다”고 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태종 이세민의 후궁이었다가 그가 죽자 그의 아들인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신라는 동일 성씨뿐 만 아니라 친족 간에도 결혼을 했다. 진흥왕은 법흥왕의 동생인 갈문왕 입종의 아들이다.

 

입종은 법흥왕의 딸인 조카와 결혼하여 진흥왕을 낳았다. 김유신은 낭비성전투에서 김춘추의 아버지인 김용춘(金龍春)을 만난 인연으로 진덕여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자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했다.

 

진지왕계(김춘추)는 김유신의 군사력을 얻었고, 금관가야계(김유신)는 진지왕계의 후원으로 성장했다. 김춘추와 김유신은 친족혼을 통해 정치적 동맹관계를 굳건히 했다. 김춘추의 제1왕후인 김문희(文明王后)는 김유신의 여동생으로 장남이 김법민(金法敏, 문무왕), 딸이 지소(智炤)였다. 김유신은 지소와도 혼인했다.

 

고려시대는 초기에 친족혼 제도가 있었으나 유교의 도입으로 친족혼 제도가 소멸되었다. 왕규의 두 딸이 태조와 혜종의 왕비가 되면서 태조와 혜종은 부자지간이자 동서지간이 되었다.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도 태조와 정종에게 두 딸을 출가시켰다.

 

 

광종은 태조의 딸인 누이동생(제1비)과 혜종의 딸인 조카(제2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성종은 삼촌인 광종의 딸인 사촌누나(제1비)와 결혼했고, 경종은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했다. 고려 중기에 들어온 유교가 친족혼을 금기시하였고, 충선왕도 왕실의 친족혼을 금지했다. 조선의 유교사회도 동성동본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형벌로 다스렸다.

 

왜에서도 소가노우지가 천황에게 딸들을 보내서 외척으로 100여년간 야마토 왕조에서 권력을 행사했다. 후지와라 우지(藤原)는 ‘을사의 변’때인 645년 소가노우지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았다.

 

그들도 소가노우지처럼 텐지천황, 텐무천황과 고분천황에게 딸을 시집 보내서 권력을 유지했다. 일본의 민법은 삼촌 이내의 혈족만 친족혼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 아랍 및 유럽은 일반적으로 친족혼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나 법률적 통제가 약하기 때문에 친족혼이 일부 행해지고 있다.

 

골품제도와 우지에 의한 신분 세습

 

골품제도(骨品制度)는 혈통에 따라서 벼슬, 혼인, 의복, 가옥 등의 사회생활을 규제하는 신분제도였다. 성골(聖骨)은 성스러운(聖) 뼈(骨)로 부모가 모두 왕족이다. 귀족은 6두품에서 4두품, 평민층은 3두품이다. 관직은 4두품 이상부터 가능했다. 정복활동이 활발했던 신라는 점유지역에 대한 유화정책을 실시하였고, 초기 진한과 가야인들은 위화감 없이 신라에 융화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남부를 통일한 후 고구려 귀족 의경 6두품, 백제 귀족의 경우 5두품까지 신분상승을 제한했다. 옛 고구려인은 7관등인 일길찬, 옛 백제인은 10관등인 대내마까지만 수여했다. 초기에 김씨는 왕의 장인인 갈문왕으로 왕비를 배출했다.

 

그리고 262년에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이사금(13대)을 배출했다. 이후 14~16대는 석(昔)씨가 왕을 하다가 성골인 17대 내물이사금부터 김씨가 왕이 되었다. 진골(眞骨)은 진짜(眞) 뼈(骨)로 부모 중 어느 한쪽이 왕족이었다. 무열왕이 진골 출신 중에서 처음 왕위에 올랐고, 금관가야 왕족도 진골로 편입되었다.

 

신라는 초기에 화백회의에서 왕을 선출하고 주요 정책을 결정했다. 그 후 귀족 중심에서 국왕으로 권력이 이동되었고, 진골인 김춘추 이후 직계 후손들이 주로 왕위를 세습했다. 그렇지만 반란에 의하여 헤공왕(780년)이 암살되면서 김춘추계열의 왕위 세습이 끝나고 진골계급은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다.

 

이후 김씨와 박씨가 번갈아서 왕위를 계승했다. 일본에서 가문의 명칭인 우지(氏)는 거주지명이나 조정의 직위로 나타냈다. 후지와라 우지는 나카토미노(中臣鎌足)가 텐지천황(天智天皇)에게 부여받은 성씨로 헤이안시대(794-1192년)에 섭관(섭정 또는 관백)체제에서 전성기를 누렸다.

 

중앙 관료에서 하급 관료까지 대부분을 후지와라 우지가 역임한 적도 있었다. 후지와라 우지에서 분파된 토(藤)자로 들어가는 가문은 이토(伊藤), 사이토(齋藤), 콘도(近藤), 안도(安藤), 사토(佐藤), 쿠도(工藤), 마사토(正藤)가문 등이다.

 

일본의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은 일본의 지배층을 형성했던 가문을 정리하고 있다. 텐무천황(天武天皇)이 천황가의 절대성을 높이고 일부 호족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신분제도를 마련했다(684년).

 

그는 전국의 호적을 작성하면서 마히토(眞人), 아소미(朝臣), 쓰쿠네(宿禰), 이미키(忌村), 미치노시(道師), 오미(臣), 무라치(連), 이나키(稻置)의 8성(姓)을 제정했다. 천황 및 황실은 마히토와 아소미 등의 상위 성씨를 부여했다.

 

고대의 성씨는 친족혼 제도에서 신분을 나타냈는데 ‘출신지 + 관등 + 이름’ 순으로 표시했다. 백제와 왜는 주로 지명을 성씨로 사용했지만 신라는 중국을 따라서 외성을 사용했다. 백제의 인명은 부여(扶餘), 흑치(黑齒), 사택(沙宅) 등처럼 복성으로 성과 이름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외성 체계는 신라가 당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으면서 보편화되었다. 외성체계에서 한자로 쓴 이름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구별하기 어렵고 발음도 유사하게 되어 있다. 서양의 이름이 일반명사를 사용하면서 발전해 왔지만 한국과 중국은 일반명사를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프로필] 구기동 신구대 보건의료행정과 교수

•경희대 경영학과, 고려대 통계학석사, University of Liverpool MBA,

서강대 경영과학박사, 경희대 의과학박사과정

•국민투자신탁 애널리스트, 동부증권 본부장, ING자산운용 이사,

한국과학사학회 회원, 한국경영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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