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홍채린 기자) 새해 5일부터 본격 시행된 '내 손안의 금융비서' 본인신용정보관리업(마이데이터)이 초기부터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 범위가 확대되면서 기존 금융사들은 이를 통해 디지털 경쟁에서 앞서고 금융플랫폼 사업자로 변신하려는 까닭에서다.
현재 마이데이터 전체 회원의 40%가량을 차지한 빅테크가 30%씩을 나눠 가진 카드와 은행보다 다소 앞서가는 양상이다. 하지만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비대면 방식 위주여서 고령층 등 소외 계층이 발생하고 금융사 간 데이터 교류의 불균형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초기 단계이고 각종 규제로 서비스 제공 범위가 한정돼 고객들의 반응이 높지 않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마이데이터 특별대응반'을 꾸려 특이사항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면서 이런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통 금융권을 대변하는 은행권은 마이데이터 서비스 출시 초기부터 상당히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빅테크와 디지털 채널 경쟁에서 패배할 경우 금융 플랫폼 사업자가 아닌 단순 금융상품 공급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빅테크와 경쟁을 의식한 듯 주요 시중은행들은 앱 내 마이데이터 서비스 사용을 쉽고 편리하면서도 차별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하나의 앱에 주요 서비스를 묶는 '슈퍼앱' 전략에 따라 기존 모바일뱅킹 앱의 메인화면에 마이데이터 탭이 눈에 띄도록 배치했다.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고 은행들은 공통으로 설명한다.
은행권이 전통적으로 자산관리에 강점을 지닌 만큼 각사마다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자신 있게 선보이고 있다. 지출관리에서도 다른 금융사와 차별화해 고객을 끌어올 '킬러 서비스' 제공에 주력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마이데이터에선 '목표챌린지' 서비스가 호평을 받고 있다. '배달 음식 줄이기', '한 달 예산으로 살기' 등 생활밀착형 목표를 자동으로 제안하는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신한은행의 '머니버스'는 '금융 인사이트' 제공은 물론 고객이 애쓰지 않아도 알아서 챙겨주는 서비스를 지향한다. 이자 납입, 공모주, 아파트 청약 일정까지 보여준다.
하나은행은 '택시러버', '미슐랭평가단', '업글인간' 등 재미있는 키워드(페르소나)로 분류해 제시하고, 그에 따라 맞춤형 상품·서비스를 추천하는 라이프 스타일 분석이 인기다.
우리은행 '우리 마이데이터 서비스'는 육아휴직이나 결혼, 출산, 차량, 주택, 조기 은퇴 등 대비하고 싶은 상황과 관련해 부족 자금이 얼마이고, 어떻게 자금을 모을지를 조언해준다.
농협은행의 NH마이데이터 서비스에선 연말정산 컨설팅이 인기다. 연말정산 시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을 예측하고 소득수준 및 금융거래 성향을 고려한 절세상품 추천도 해준다.
카드사 가운데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출시하지 않은 곳은 삼성생명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심의로 신사업 진출이 차단된 삼성카드뿐이다.
카드사들은 각사의 간편결제(앱카드) 앱을 종합금융 플랫폼으로 육성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마이데이터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마이데이터로 카드 앱에서 소비·지출 관리, 금융상품 비교·가입, 자산관리 등이 가능해진다"며 "핀테크에 뺏긴 디지털금융 주도권을 되찾는 데 (마이데이터가)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의 마이데이터 자산관리는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산관리 집사'를 표방하며 183만명을 끌어모았다.
KB국민카드의 '리브메이트'는 소비 관련 정보 분석뿐만 아니라 보험, 투자, 대출 등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으로 주식 투자정보와 로봇어드바이저 기반 투자 자문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BC카드의 마이데이터 서비스 '내자산'은 내자산 리포트와 재테크 서비스를 내세워 인기몰이 중이다. 최근까지 68만명이 BC카드의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선택했다.
현대카드의 마이데이터는 신용점수를 동시에 보여주고 점수 향상을 돕는 '내 신용점수 비교'로 관심을 모았다. 이 서비스에 현재까지 50만명이 가입했다.
보험업권은 카드사에 비해 출발이 늦은 편인데, 교보생명은 이달 말에, KB손해보험은 3월 말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금융투자, 키움증권이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B증권은 오는 29일, 현대차증권은 다음 달 중 각각 서비스를 개시한다.
키움증권이 현재까지 약 30만명의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가입 고객들은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탑재된 'MY자산'에서 대출 금리 비교나 펀드 수익률 진단 등을 통해 자신의 투자 성적을 점검할 수 있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가입 펀드 점검 등 투자 진단 콘텐츠는 한번 써본 고객들은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투자 패턴·성과 분석 서비스, 투자 포트폴리오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초개인화 자산관리서비스' 등을 확대했다.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행 초기다 보니 불만 또한 속출하고 있다. 금융 서비스는 국민의 동등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하는 데 현재 마이데이터는 비대면 채널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 등 디지털금융 소외계층은 마이데이터를 이용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금융 이해도가 낮은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줄 수 있는 상담 채널인 대면 방식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은행 및 카드사들은 마이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업권 간에 주고받는 데이터 질과 수준의 형평성 문제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기관은 입출금 거래내역을 원문 정보 그대로 전송하지만 빅테크 등 전자금융업자가 제공하는 물품 구매내역은 단순화된 카테고리 형태로만 전송해 데이터로서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는 승인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며 가맹점, 품목, 가격 등 세부 정보가 들어 있지만, 카카오페이 등 빅테크는 상품의 카테고리 단계까지만 공유한다"며 "독점을 막고 다양한 맞춤 서비스 개발을 위해 정보 제공 비대칭성이 해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서비스가 운영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금융 거래 케이스들이 발견되고 있어 표준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규격의 개선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교한 고객 서비스를 위해 업권별로 제공되는 정보 항목의 확대도 필요하며 장기적으로는 오픈뱅킹과 연계해 통합조회 후 이체 등 거래로 연결될 수 있는 API 개발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아직 금융사별로 사용하는 입력값이 달라서 가져오지 못하는 데이터가 많아 시스템 표준화가 필요하다"면서 "더 많은 금융사에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아울러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이 고가 경품을 지급하며 회원 확보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용자들은 마이데이터 시행 후 뚜렷한 변화를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업자들이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모색하는 초기 단계이고, 각종 규제로 서비스 제공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드사가 고객의 소비 패턴을 분석해 가장 유리한 상품을 추천하고 싶어도 현행법상 카드사는 경쟁사의 카드를 추천할 수 없게 돼 있다.
은행의 마이데이터에 가입한 A씨는 "기존의 앱에 몇 가지 항목이 추가됐다는 느낌 외에는 실제로 활용할 일이 없어 뭐가 편한지 잘 모르겠다"면서 "경품 행사를 하지 않았으면 마이데이터 서비스 자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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