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3 (화)

  • 구름많음동두천 16.8℃
  • 구름조금강릉 19.6℃
  • 맑음서울 19.1℃
  • 구름조금대전 16.3℃
  • 흐림대구 17.6℃
  • 흐림울산 17.4℃
  • 구름많음광주 16.9℃
  • 부산 18.7℃
  • 구름조금고창 16.3℃
  • 구름많음제주 21.5℃
  • 구름조금강화 14.8℃
  • 구름많음보은 14.9℃
  • 구름조금금산 14.3℃
  • 맑음강진군 18.0℃
  • 흐림경주시 17.5℃
  • 흐림거제 17.5℃
기상청 제공

[이슈체크] "칼 들었어, 칼 들었어!" 국세청과 악질체납자의 위험한 숨바꼭질

고액체납 무려 51조원…재산 숨겨두고 골프여행 등 호화판
체납 추적요원에게 욕설은 예사, 흉기 들고 휙휙
내년부터 방검복 나오지만 아직 부족, 방검토시 절실
지자체는 포상금 제도 있는데 국가직은 무보상 ‘밤낮 일해도…’

(조세금융신문=고승주 기자) 고액재산을 숨겨놓고 호화생활을 누리는 악질 체납자. 국세청 체납 추적요원들은 밤낮으로 잠행‧금융조사‧탐문 등으로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하고 있다. 호화 아지트에서 꼬리를 밟힌 악질 체납자. 당연히 환영은 받을 리 없고, 고성에 욕설이면 감지덕지. 흉기까지 드는 악질 체납자까지 있다는데 국세청을 통해 국세청과 악질체납자의 위험한 숨바꼭질, 그 내막을 들춰봤다.

 

 

“밤낮이 없죠. 잠행하려면 새벽부터 나와야 하고….”

 

“욕만 먹으면 차라리 다행이에요.”

 

고가 아파트에서 고급 외제차를 몰며 수시로 골프 모임을 갖는 호화생활을 누리면서도 세금은 나몰라라하는 고액 체납자.

 

이들이 내지 않은 세금은 2019년까지 무려 51조원이 넘는다.

 

 

고액 체납자들의 숨긴 재산을 추적하는 것이 지방국세청과 세무서의 체납자 추적팀들의 임무다. 그리고 은닉 재산은 사람따라 움직이는 법이다.

 

“보통 고액 체납자들은 자기 주소에서 살지 않습니다. 100이면 100. 가족명의 집이나 친척 명의 집에서 살죠. 체납추적팀은 이들이 몰래 사는 곳을 찾고, 필요하면 수색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수색하다보면 몰래 숨겨둔 거액의 현금이나 귀금속이 나오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세금 내기 싫어 숨어지내는 고액 체납자다보니 이들과의 만남은 항상 도주, 고함, 욕설로 시작한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낫다는 추적요원들. 심지어 최근에는 흉기까지 튀어 나왔다는 제보마저 나온다.

 

“세금 내는 것 자체가 싫으니 수색이 싫은 건 당연하죠. 욕 퍼붓거나 소리치는 건 그냥 일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흉기가 나오면 싹 달라지죠. (뭐가요?) 분위기가요.”

 

◇ 현장은 드라마가 아닙니다

 

국세청 추적요원들은 국세청 직원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에 노출돼 있다. 국세청 추적팀 요원들도 혹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경찰관을 대동하고 수색에 나선다.

 

 

하지만 갑자기 벌어지는 일에는 누구나 당황하고, 즉각 대응하기기 힘들다. 특히 최근 들어 흉기가 튀어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갑자기 자해를 하거나, 흉기로 국세청 추적요원들을 겨누기도 한다. 2020년부터 국세청이 개인별 방검 장갑을 지급한 것이 그 이유다.

 

“국세청 직원들은 경찰처럼 상대를 제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럴 권한도 없지만, 국세청 직원 절반이 여성입니다. 무술 유단자나 체력검증으로 팀원 뽑는 것도 아닙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비가 방검장비죠.”

 

 

서울시 38기동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때문인지 체납추적요원이라고 하면 배우 마동석 씨같은 어깨 빵빵한 채권추심 요원을 떠올리기 쉽다.

 

지자체는 예산 재량이 있기에 사설 경력자를 뽑을 수 있지만, 국세청은 국가직이기에 지자체처럼 사설 요원을 뽑을 수 없다. 국세청 요원들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다.

 

방검장갑 하나로는 그들의 생명을 충분히 보호한다고 할 수 없다. 일부 추적팀 요원들은 개인 사비로 방검토시를 구입하는 경우마저 있다고 한다.

 

 

국세청의 딱한 사정에 기획재정부가 국회와 협의해 내년부터는 방검복과 바디캠을 지급하도록 하로 했다.

 

이만큼도 크게 나아진 것이지만, 방검토시가 없는 부분은 다소 아쉽다. 흉기 방어흔은 보통 손과 팔에 발생한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이나 몸을 막으려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방검복도 사비로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내년부터 지급된다고 하는데 큰 시름 내려 놓은 거죠. 바디캠도 좋은 발상입니다. 아무래도 영상을 찍고 있다고 하면 상대가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겠죠.”

 

◇ 그래도 하는 거죠

 

추적팀의 업무는 잠복‧미행‧탐문‧압수수색 등 경찰과 비슷한 점이 많다. 고액 체납자의 주거지와 동선 파악을 위해서다.

 

 

새벽부터 고액 체납자의 동선에 잠복하고, 거주지가 관할 밖이라면 하루 꼬박 밤낮을 고액 체납자와 위험한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하루 네 시간 인정되는 특근수당. 밥 먹을 시간 됐으니 밥 먹으러가고, 때로는 하루 열 두 시간 채워 일해도 잠복이나 미행을 그만둘 수도 없는 때도 있다.

 

“밥 먹는 시간은 따로 없어요. 틈날 때 도시락, 빵 먹고, 화장실도 참고 이동하고, 그렇게 일하는 거죠.”

 

서울시에서는 고액 체납자 추적 업무의 어려움과 위험성을 고려해 공적을 세운 공무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사건마다 다르지만,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 정도 지급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국세청에는 그런게 없고, 별다른 보상없이 위험한 업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힘들어도 해야죠. 그게 우리 일이니까요.”

 

우리의 안전과 안보, 그리고 복지와 경제성장을 담보하는 세금. 그 귀중한 세금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도 국세청 체납 추적요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조금만필] '낡은 대못' 뽑겠다는 尹, 골프장 중과제도는 왜 폐기 안 하나
(조세금융신문=박완규 논설위원) 이른바 ‘부의 상징’으로 여겨 별장에 부과하던 취득세와 재산세 중과 제도가 50년만에 폐지됐다. 별장에 대한 중과 제도는 소수 부유층의 사치성 소비를 막아 사회 안정과 질서유지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설계됐다. 이후 고도성장과 더불어 국민소득이 늘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별장은 더 이상 소수 부유층의 사치재가 아니라 중산층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는 ‘세컨드 하우스’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런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별장에 대한 중과 제도도 반세기만에 폐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부가 같은 목적으로 만든 중과 제도가 또 있다. 바로 회원제 골프장에 대한 중과세 그것이다. 회원제 골프장이 취득·보유하는 부동산에 대해선 취득세·재산세가 중과되는데, 세율은 각각 12%, 4%에 달한다. 매년 재산세가 부과된다는 점에서 골프장 운영 이후 몇 년 만에 투자 원금이 잠식될 정도로 상당히 무거운 세금인데, 이에 더해 이용객의 입장에 대해 개별소비세·농어촌특별세·교육세·부가가치세까지 물어야한다. 역시 군사정부 시절 골프가 소수 부유층의 사치라는 인식 하에 만든 제도인데, 지금도 골프가 소수 부유층만의 사치 행위일까. 대한골프협회가 올 1
[인터뷰] 팔꿈치 절단 딛고 '요식업계 큰손 등극' 백세장어마을 윤명환 대표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몸에 좋다는 여러 보양식을 찾게 된다. 장어도 그중 하나다. 부천에서 꽤 많은 손님이 찾는 ‘백세장어마을’은 상동 웅진플레이도시 워터파크 앞에 자리하고 있다. 평일 점심에도 꽤 많은 손님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사업가 윤명환 대표 이야기 백세장어마을 윤명환 대표는 현재 7년째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전 창업자가 5년간 운영한 것을 이어받았으니 합치면 12년째다. 이곳뿐 아니다. 같은 웅진플레이도시 내에 자리한 중식집 ‘The 차이나’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인천광역시 삼산동에는 고깃집 ‘백세미소가’를 창업해 현재 아들이 운영을 맡고 있다. 요식업계에 발을 디딘 지는 벌써 16년째다. “요식업 창업을 하는 사람들의 70%는 망하고, 20%는 밥벌이 정도 하고, 10%는 성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윤 대표는 요식업계에서 나름 성공한 CEO다. 처음 요식업을 시작한 것은 한창 한일월드컵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2002년이다. 윤 대표는 당시 매우 절박한 마음으로 요식업계에 첫발을 내밀었다. 이전에 큰돈을 모아 투자했던 의료사업에서 실패한 이후다. 처음에는 직장인으로 출발했다. 인천전문대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