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서울본부세관, 수출입안전관리 우수업체에 공인증서 수여

한화테크윈 등 9개 업체, AEO 공인 획득

 

(조세금융신문=홍채린 기자) 서울본부세관은 '관세청 AEO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인을 취득한 한화테크윈 등 9개 업체에 대해 수출입안전관리우수업체(AEO) 공인증서를 수여했다고 8일 밝혔다. 

 

AEO란 'Authorized Economic Operator'의 약자로, 수출입기업, 물류업체, 관세사 등 무역관련 업체 중 관세당국이 법규준수, 안전관리 수준 등을 심사하여 공인한 업체를 말한다. 

 

한화테크윈, 드림텍, 락앤락, 케이시시정공, 디에이치케이, 범양해운 6개 업체가 신규로 공인을 획득하였다. 현대모비스는 수출 및 수입 부문에서 공인등급이 A에서 AA로 상향됐다. 또한 여천NCC, 쉘라인 2개 업체는 재공인을 받았다.

 

AEO 공인을 받은 기업은 세관검사 축소, 담보제공 생략, 관세조사 면제 등 관세행정상 혜택을 받게 되며, 미국, 중국 등 우리나라와 상호인정약정(MRA)을 체결한 상대국에서도 동등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또한, 공인 업체별로 세관의 기업상담전문관(AM)이 지정되어 관세행정 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김광호 서울본부세관장은 "코로나19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최근 수출실적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하반기에도 회복세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된다"며, "우리기업이 무역현장에서 AEO 제도의 혜택을 최대한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AEO 신규취득 및 재공인 업체 현황>

 

연번

구분

업체명

공인부문

등급*

1

신규공인

한화테크윈 주식회사

수출/

A

2

주식회사 드림텍

수출/

A

3

락앤락

수출/

A

4

케이시시정공

수출

A

5

주식회사 디에이치케이

수출

A

6

범양해운

주선업

A

7

등급상향

현대모비스

수출/

AA

8

재공인

여천NCC

수출/

A

9

쉘라인

수출

A

 

* 공인부문은 수출, 수입, 관세사, 보세구역운영인, 보세운송업, 화물운송주선업, 하역업, 선사, 항공사 등 9개 분야로 운영

* 공인등급은 공인기준(법규준수, 내부통제시스템, 재무건전성, 안전관리) 심사 결과를 반영하여 A, AA, AAA 3단계로 운영

 

[조세금융신문(tf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배너

전문가 코너

더보기



[인터뷰]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 권역별 회원 교육에 초점
(조세금융신문=이지한 기자) 임채수 서울지방세무사회장은 지난해 6월 총회 선임으로 회장직을 맡은 후 이제 취임 1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임 회장은 회원에게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지방회의 가장 큰 역할이라면서 서울 전역을 권역별로 구분해 인근 지역세무사회를 묶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 회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 6월에 치러질 서울지방세무사회장 선거 이전에 관련 규정 개정으로 임기를 조정해 본회인 한국세무사회는 물론 다른 모든 지방세무사회와 임기를 맞춰야 한다는 견해도 밝혔다. 물론 임원의 임기 조정을 위해서는 규정 개정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임기 조정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이라 주목받고 있다. 임채수 회장을 만나 지난 임기 중의 성과와 함께 앞으로 서울지방세무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Q. 회장님께서 국세청과 세무사로서의 길을 걸어오셨고 지난 1년 동안 서울지방세무사회장으로서 활약하셨는데 지금까지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시죠. A. 저는 1957년에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듯이 저도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배고픈 기억에 지금도 밥을 남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