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금융신문=황성필 변리사) 푸틴은 러시아를 전세계에서 ‘왕따’시키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전쟁은 물리적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금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물리적인 전면전을 넘어서 많은 국가들 간의 지식재산권 전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설마 전쟁이 나겠느냐’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러시아의 빠른 승리를 예측했을 것이나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전쟁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서로 동원가능한 모든 제재와 보복수단을 강구하고 실현에 옮기게 된다. 러시아 정부는 2022년 3월 6일 러시아 연방 정부 법령 No. 299 “특허 소유자에게 지급할 보상 금액 계산 방법론(No. 299 On Amending item 2 of the Methodology of calculation of compensation)의 항목 2”를 수정하였다. 본 법령은 러시아에서 “비우호적 국가”의 권리자가 소유한 특허, 실용신안 및 산업 디자인을 동의 없이 그리고 어떠한 보상도 지불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꾸준히 서방이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의 석유 및 가스 산업에서 투자를 철수하고, 지지부진한 전쟁의 영향으로 러시아의 할 수 있는 보복 조치가 지식재산권까지 넓혀진 것으로 본다. 추가적으로 러시아의 국영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일부 상표, 저작권에 대하여도 제재를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이러한 제재는 특정 상품과 소프트웨어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미국을 포함한 서방을 겨낭한 것이다.
상표권에 대한 제재가 포함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러시아의 전매장을 셧다운하여 이슈가 되었던 맥도날드와 같은 브랜드를 러시아에서 아무나 도용하여 매장을 열더라도 상표권에 대한 사용 금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중에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도시락’ 라면이다.
러시아에서 누구나 도시락 라면을 가짜 상표를 부탁하며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러한 극단적인 조치가 서방과의 협상카드 내지 나름의 성공적인 제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나 결코 현명한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으며, 구소련연방 이전의 경제적 수준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국가’들이 어디인지 살펴보자. 러시아가 규정한 47개의 비우호적인 국가는 ‘알바니아, 안도라, 앵귈라, 호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캐나다, 유럽 연합 회원국, 지브롤터, 영국, 아이슬란드, 일본, 리히텐슈타인, 미크로네시아, 모나코, 몬테네그로, 뉴질랜드, 북마케도니아, 노르웨이, 산마리노, 싱가포르, 대한민국, 스위스, 대만, 우크라이나, 미국’을 포함한다.
대한민국의 기업들 중 러시아에서 현재 특허 분쟁이 진행 중인 곳이 있다면, 소송에서는 이기더라도 과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로 앞으로도 러시아에서 특허권을 확보하여 사업을 직접 전개할 대한민국의 기업들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법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에서 미래의 사업 계획을 그리는 기업이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식재산권 보장되지 않는 국가에 외국 자본 투입될 수 없어
과거부터 전문가들은 러시아에서 특허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효적인 행사가 쉽지 않음을 러시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해왔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보호를 문제로 꾸준히 지적되어왔던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미국 등의 압박으로 중국 정부는 어쩔 수 없는 개선을 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의 자국 산업의 질적 개선을 위한 내부적인 결단도 없지는 않다. 아무튼 지식재산권이 보장이 되지 않는 국가에는 외국의 자본이 제대로 투입될 수가 없다.
앞서가는 기술을 만들고, 이에 대한 특허권을 보장받아 수익을 극대화하기 될 수 있는 환경에서, 기업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한다. 그런데 이러한 노력이 결집된 무시되는, 핵심 기술이 그대로 도용되는 환경에서는, 상당히 저렴한 비용으로 카피 제품의 생산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기술개발에 노력한 회사는 경쟁력을 잃어 도태될 수 있다. 따라서 특허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는 쉽지 않다.
안 그래도 불안한 지식재산권의 보호 수준을 보여준 러시아에 금번 법개정은 결국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안정되지 못한 지식재산권 체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비우호적인 국가들이 소유한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니, 어떤 기업도 러시아에서 사업을 쉽게 전개할 수 없을 것이고, 러시아에 대한 투자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은 뻔하다.
사실 전쟁에 따른 특허권 효력의 철폐 내지 몰수는 과거부터 꾸준히 있었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 금융자산의 몰수와 별도로 지식재산권의 효력상실 내지 몰수도 함께 취해지던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유명한 사례가 독일의 바이엘사에 대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바이엘(Friedrich Bayer)과 요한 프리드리히 베스코트(Johann Friedrich Weskott)는 1863년 8월 1일, 지금의 부퍼탈 지역에 지금의 바이엘사의 전신을 설립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1914년에 발발하면서 외국 자산과 시장에 의존도가 컸던 바이엘은 염료와 제약부문의 판매가 급감하여 큰 타격을 받게 된다.
나아가 바이엘의 러시아 자회사는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몰수를 당했으며 미국에서는 1917년 특허권 및 상표권을 몰수당한다. 전쟁이 개시되면서 영국과 독일의 무역은 중단되었으며, 1914년 8월부터 영국은 자국 내에 남아 있던 독일 기업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몰수하였다.
그러나 금번 러시아의 조치는 전세계를 상대로 한 철없는 조치로 보여진다.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러시아에서 더 이상 코카콜라와 맥도날드가 없고, 유투브 내지 넷플릭스 서비스가 안된다면? 러시아는 이제 누구에게도 흥미있는 국가가 아닐 것 같다.
[프로필] 황성필 만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파트너 변리사
•(현)이엠컨설팅 대표
•(현)LESI YMC Korea Chair, INTA Trademark Office Practices Committee
•(현)서울시, 연세생활건강, 레페리, 아이스크림키즈, 스냅테그, SBSCH 고문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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