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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한국경제 비화 ⑤] 세계화와 환란Ⅰ(1997)

1999년 10월 25일 하오 강경식(姜慶植) 부총리 집무실.
홍콩증시 폭락으로 외환·주식시장이 붕괴되고 외국자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던 때였다. 윤증현(尹增鉉) 금융정책실장, 이윤재(李允宰) 경제정책국장 등 재정경제원 간부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야기는 주로 두 사람이 했고 주제는 환율로 모아졌다.


“시장 불안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당국이 적극 개입해야 한다”, “가수요만 부추길 뿐이다. 자칫하면 금융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 하루 환율반등폭을 확대해야 한다.” 설전이 계속됐다. 강 부총리는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었다. 시장경제론자를 자처하는 그로서는 ‘시장 불개입’쪽.


재경원 모국장의 회고. “10월들어 환율문제로 경제정책국과 금융정책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 자리가 처음이었다. 그전까지는 별도로 보고했다.


여기서 재경원의 금정실과 정책국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금정실은 구 재무부출신들이 핵을 이루고 정책국은 구 경제기획원 출신의 아성이었다. 기획원출신인 강 부총리는 금정실의 의견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재무부 출신 모국장의 고백, “강 부총리는 간부 간담회를 하다가도 윤 실장이 들어서면 화제를 바꾸곤 했다. 금정실 과장들에게 따듯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금정실이란 기획원출신들에겐 관치금융의 소굴정도로 비쳤을 뿐이다.


같은 날 한국은행 회의실. 이경식(李經植) 총재와 최연종(崔然宗) 부총재가 번갈아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외환사정이 심각하다”, “환율정책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대외지급 제한,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자금조달 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칼자루는 재경원이 쥐고 있었다.


그후 재경원의 회의는 자주 열렸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재경원 고위간부 모씨의 설명. “강 부총리는 환율에 관해 명확한 입장이 없었다. 처음에는 시장에 맡기자고 했다가 나중엔 개입 쪽으로, 그 뒤엔 아에 손을 놓았다.” 외환사정은 갈수록 악화됐고, 간부들은 저마다 답답하다는 표정뿐이었다.


10월 27일 상호 9시 30분, 재경원 5층 외화자금과.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간간이 흘러나오는 목소리. “도와 주셔야 합니다” 금융기관과 대기업에 달러 매입 자제를 요청하는 전화공세였다. 재경원의 ‘반위협’에 외환시장은 잠시 안정되는 듯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환율은 이튿날 가격제한폭까지 올라 거래자체가 중단됐다.


심리적 마지노선이라던 주가 500선도 붕괴됐다. 하오 9시 30분 강 부총리, 이 총재 등이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채권시장 조기개방과 현금차관확대, 외환매입 제한조치를 골자로 하는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다음날 29일 발표됐다.


10월 30일. 외환시장은 또 거래가 중단됐다. 연 3일째, 개장 8분만이었다. 재경원 금정실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930원선을 넘었을 때 강력히 틀어쥐어야 하는 건데.”


상오 11시. 외환실무과장이 외환시장에 선전포고를 했다. “강 부총리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다. 지금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유효하고 강력한수단을 동원, 불안심리를 잠재우겠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공식개입’쪽으로의 급선회였다.


재경원간부 모씨의 증언. “금정실은 최소한 11월 3일까지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외환딜러들은 급작스런 정책변경에 아연실색했다. 한은의 반응은 한마디로 “현재 외환보유액으로는 무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강행됐다. 외환매입제한조치도 이날로 앞당겨졌다. 환전창구마다 북새통을 이뤘다. 전날 재경원은 외환예금이나 달러화를 매입하는 것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으나, 한은은 1만달러 이상 환전시 실수요증명서를 제출 받도록 은행들에 조치했다가 뒤늦게 철회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난파위기에 핵심당국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재경원과 한은은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둘러싸고도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강 부총리가 취임직후 금융개혁위원회에 개혁안을 조기에 마련해 달라고 주문한 3월 11일 이후 관련법안이 통과된 12월 29일까지, 어느 때 보다 자주 만났으면서도 결론이 뒤쳐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 부총리와 김인호(金仁浩) 청와대경제수석 등은 한국의 외환위기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며, 금융개혁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은 정치권에도 책임을 돌리고 있다. 과연 그럴까.


IMF나 금융전문가등은 지적은 다르다.
한국의 외화자금조달 상황은 10월 23일 홍콩증시 폭락과 함께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사가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10월말 이후 급속히 악화됐다. 동남아사태 영향도 있었지만 위기의 규모와 속도는 상당부분 한국의 금융 및 기업부분의 근본적인 취약성에서 비롯됐다. 당국의 정책은 부분적인 대응에 그쳤고 시장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했다. 1997년 8월 25일 외환자금 조달의 어려움에 대응해 정부는 금융기관의 대외채무를 보증한다는 공식선언을 했다.


그러나 정부보증에 따른 법적인 절차와 국회승인이 없었기 때문에 보증의법적 지위가 불확실했다. 결국 이러한 정책들은 시장의 신뢰를 전혀 회복하지 못했다. 시장신뢰는 금융개혁위원회의 건의를 토대로 만들어진 금융개혁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최근의 통화정책은 외환시장을 더욱 악화시켰다.


10월말 외환수급시장이 급속히 악화했는데도 불구하고 당국은 11월 21일까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음으로써 시장분위기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외환보유고의 상당부분은 사용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국내은행 해외지점과 현지법인에 예치했고, 이는 만기연장이 되지 않는 단기부채를 갚는데 활용됐으며 결국 외환보유고의급격한 고갈로 이어졌다.


11월 2일 하오. 홍재형(洪在馨) 전 경제부총리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각하, 외환부문이 심각합니다. 위기상황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왜 현직도 아닌 홍 전 부총리는 김 대통령에게 외환위기의 경보를 다급하게 보고했을까. 홍 전 부총리는 YS정권에서 경제관료로선 유일무이한 총아였다. YS정권의 첫 재무장관과 첫 재경원부총리를 지냈다. 그리고 YS의최대 치적인 금융실명제를 극비리에 마련했다.


그는 재무부시절 외환분야만을 돌았고 70년대 말과 80년대 초 외환위기를 몸으로 막았던 국제금융통이다. 외환위기에 관한 한 본능적인 감각이 있었다.


홍 전부총리는 대통령에게 전화한 후 청주고교 후배이자 재무부에서 같이 근무했던 윤진식(尹鎭植) 청와대 조세금융담당비서관에게 그 내용(IMF행)을 이야기했다. 윤 비서관은 빅3의 회동 자리에서 건의했지만 한마디로 묵살 당했던 그로선 직속상관인 수석을 제치고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할 수도 없었다.


다른 라인을 통하기로 했다. 김광일(金光一) 정치담당특별보좌관을 찾았다. 김 특보는 주위사람들에게 “디폴트(Default) 무엇이냐. 우리경제가 큰일 났다는데, 경제팀이 잡고 있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다. 김 특보는 김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직접 불러 물어 보십시오.”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김 대통령은 윤 비서관을 불러 독대했다. 11월 12일이었다.


11월 3일 밤. 경제정책을 주무르던 빅 3인 강경식 부총리, 김인호 청와대경제수석, 이경식 한은 총재가 시내 음식점에 모였다.


이날은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된 첫날이었다. 기아사태에 이어 홍콩증시 폭락까지 겹치자 외국자본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 단기외채의 연장(roll-over)도 급격히 막혔다. 은행마다 오버나이트물(하루 짜리 해외콜머니)을 막느라 밤을 새웠다. 사실상의부도직전상황이었다.


그래서 한도확대 조치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이 자리엔 윤진식(尹鎭植) 비서관도 참석했다. 윤 비서관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수밖에 없다”고 건의했다. 순간 강 부총리가 벌꺽 화를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앞으로 IMF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마라”며 얼굴이 붉혔다.


왜 윤 비서관은 단도직입적으로 IMF이야기를 꺼냈을까. 그리고 강 부총리는 왜 대노했을까.
외환위기 상황은 오래 전부터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정부는 1년내내 외환유입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사실 강 부총리와 김 수석도 이미 10월 하순께 만나 외환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IMF를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심하다. 다른 방안을 찾아보자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 청와대 모비서관의 증언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우려는 이미 언론에서도 식상할 정도로 다루고 있었다. 정부의 반응은 ‘그게 아니다’는 것뿐이었다.


11월 5일 경제전문인 미국의 블룸버그통신이 ‘한국 금융위기 심각성과 IMF 자금지원 요청 가능성을’ 보도했다. 다음날에는 세계 유수의 신문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 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이 같은 내용으로 뒤를 이었다.


정부는 국내 언론에 그랬듯이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내심 무척 당황했다. “위기감을 느꼈다”고재경원 모국장은 털어놨다. 그래서 재경원과 한은이 각자 상황을 판단 분석해 청와대에서 논의키로 했다.


11월 7일 하오 청와대 경제수석실. 재경원 윤증현 금융정책실장과 한은 최연종 부총재가 가져온 보고서는 결론이 같았다. IMF지원요청이었다. 정부문서에 나타나기는 처음이다.


잠시 후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김 수석은 금융개혁법안을 중심으로 경제현안을 보고하면서 IMF이야기를 꺼냈다. 최초의 공식보고였다.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다. 다섯 가지 보고 가운데 외환위기는 뒷부분이었다. 이날 주가는 최대폭락을 기록했고 김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대통령은 담담하게 말했다. “다른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잘해봐라.”


[이국영 프로필]

• 효도실버신문 편집국장·시니어라이프 연구소 소장
• 전) 한국은행 은행감독원 은행검사역
• 전) 한국은행 사정과장과 심의실장
• 전) 월간 금융계 편집위원
• 저서 「금융기관 자점감사론(1994년)」,
「해방후 금융사고총관(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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